꼬마 선생님의 가르침



     오늘도 저는 전과 다름없이 주일 2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를 향해 자동차를 몰았다. 예배 시작 20분 전 쯤 Orangetree 길에서 교회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를 우회전하는 순간 나의 눈앞에는 오랜지색 조끼를 입고 교통 정리 하는 어린이가 보였다.



여느 때는 집사님 두 분이 그곳에 기다리다가, 처음으로 우리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을 환영도 하고 주차장의 혼잡을 막기 위해 안내했었는데, 오늘은 10대 초반의 어린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하면서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틀림없는 어린이 교통 정리였다. 물론 전에도 그 어린이가 집사님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은 몇 차례 본적은 있었다.



     우리 교회는 개척한지 1년 반 된 나이 어린 교회지만, 교역자를 중심으로 모든 집사님들이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믿음의 형제들에게 봉사하는 수준은 다른 교회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기틀 잡힌 교회인 것을 늘 보아왔었다. 그런 교회이기 때문에 항상 모든 집사님들이 먼저 1부 예배를 드린 다음, 곧 바로 2부 예배를 드리기 위한 준비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저는 늘 보아왔다.



     저는 차에서 내려 예배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보니, 예배당 밖에서는 예배 후에 있을 친교 준비 때문에 많은 집사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예배당 문에는 안내하는 두 분이 환영하면서 주보를 나누어주고 있었으며, 또 안에서는 10명의 찬양 팀 요원, 3명의 영상팀 요원, 그리고 좌석 준비 등으로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말씀 준비에 바쁘신 목사님,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준비 등 모든 분야에서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은, 소망 있는 교회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뚜렷한 사실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왜 제가 오늘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되었을까? 오늘 예배 시간 박현식 목사님께서, 삼상 3장 1-10절까지의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여호와여 말씀 하옵소서"라는 제목의 설교 말씀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어릴 때부터 믿는 조부모님과 믿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나면서 교회를 위해 충성할 것과 봉사할 것을 수 없이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젊을 때는 먹고 사느라, 먼저 해야 할 우선 순위가 전도되었었고, 인생 황혼기에 이르러서는 지력과 체력과 재력 등의 모든 것이 위축됨으로서 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 충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껄 껄" 소리를 내면서, 만지시탄을 거듭하는 후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배운다는 것은 가르치는 자가 어떤 사람이 되었든, 또 그 방법이 어떻든 상관없다. 다시 말해서 선생이 가르치든, 어른이 가르치든, 아이가 가르치든, 자연 법칙의 돌아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깨닫게 되든 사람은 항상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도 말로 가르치든, 행동으로 가르치든, 글로 표현하든 그 외 다른 어떤 방법이 되었든 상관없는 것이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라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렸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그 시간 주차 정리하던 어린 꼬마가 저의 머리 속을 꽉 메우게 되었던 것이다.



     불민한 저는 건망증도 있고, 눈쌀미도 없고 해서, 그 어린이의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며,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어린이가 10대 초반의 어린아이지만, 나이만 먹은 저보다 훨씬 이른 아침 시간부터 교회에 나와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있는 봉사의 직무를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마음속에서는 나를 향해 왜치는 "너는 헛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그 어린이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주님의 사역자들이 전해 주는 말씀에 따라 주님의 전에 나와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과, 또 부모님이 가르쳐 준 것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는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어린이는 사무엘이 대성한 것처럼 장차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 교회의 부흥을 기할 수 있는 촉진제, 사회에 필요한 인물, 가정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분명 될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



     그래서 저는 남은 생을 최선을 다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옳은 삶, 바른 삶, 참된 삶,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 바 있었기에 질책을 달게 받을 각오를 가지고 몇 자 올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