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를 뒷간에서 시식한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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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정의 새색시가 시집 온 다음 날, 처음 만난 친구에게 말하기를


"나는 시 자 든 사람이 재일 싫다" "왜냐고?" "시 자가 든 사람과 대화만 하면


괜시리 나에게 스트레스가 오니까" 그 말 뒤에, 새색시는 거침없이 말하기를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등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들은 적 있다


옛 사람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아주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먼 사이"라면서


"고부간은 어쩔 수 없는 앙숙"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리인 것 같이 전해오고 있었다


아무리 옛 말이 그렇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 하지만 그 말은 결코 진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룻과 같은 효부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으며 또


세상의 많은 며느리 중에는 효부 며느리가 더 많이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부 갈등이 생기고 안 생기고는 서로가 상대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 "그 아비에 그 아들" "그 어미에 그 딸"이라는 옛 말에 주목하고


지금 내가 부모를 잘 공경하면 자식이 자라나서 배운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고부간에 넘치는 사랑으로 화목하게 지낸 실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 실화 ----------------------------------------


     때는 1943년 경북 지방의 농촌 마을에 남편을 사별한 60대 시어머니와 그의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 여럿이 사는 대 가족이 있었다. 그 때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고, 일본이 일으킨 2차 세계 대전의 전황이 일본의 패전쪽으로 기울어지자, 일본은 전세 만회를 위해 총력을 전쟁 수행에 쏟아 부었던 관계로,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백성들의 생활상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어려웠다.


   


     식탁 위에 오르는 것은 농사 지어 얻은 쌀 약간에다 많은 양의 잡곡을 섞어서, 겨우 허기만 면할 정도로 밥을 만들었고, 찬이라고는 농사 지은 채소로 만든 것 한 두 가지가 전부였다. 생선이나 육류는 먹어 본지 너무나 오래 되어, 그 이름조차 잊을 정도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삼복이 되어야, 온 식구가 함께 보신용으로 쓸 수 있고,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는 알은 힘든 농사일을 하는 남편과 나이 많으신 시어머니 밥상에만 겨우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집에서 키우는 닭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닭을 잡으면 첫째는 계란 생산이 중단되고, 두 번째는 아주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쓸 유일무이 한 보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날이 밝아 하루 일이 시작되었다. 닭 모이를 들고 "구구 구구"하면서 닭을 불렀는데, 닭이 달려오지를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닭장에 가 보았더니, 닭이 죽어 있지를 않는가? 나는 깜짝 놀랐다. 짐승이 와서 죽였을까? 병들어 죽었을까? 아까운 닭이 죽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사랑방에서 나오시는 시어머니가 그것을 보시고, "어멈아! 할 수 없지 않나, 잡아서 반찬을 만들려무나",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반찬을 만들거든 먼저 내가 먹어 보고, 내가 죽지 않거든, 식구들이 나누어 먹자구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죽은 닭을 가지고 반찬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나는 혼자 생각해 봤다. 병든 닭? 짐승이 죽인 닭? 만약 여기에 독기라도 남아 있으면 사람이 먹었을 때, 틀림없이 문제가 생길 것 아닌가?, 나이 많으신 어른에게 시식하게 할 수는 없지, 죽어도 내가 죽어야지, 나는 냄비를 열고 닭 고기 한 저럼을 꺼내, 조그마한 종지에 담은 다음, 치마폭으로 싸 감추고는, 얼른 뒷간(화장실)으로 들어가서 먹었다.


   


     그 안에서 한참 동안 기다려 보았으나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됐다, 이제는 시어머니에게 들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뒷간에서 나오고 있을 때, 여섯 살 먹은 딸애가 나를 보고서는, "엄마 왜 종지를 들고 뒷간에 갔어? 여기에서 닭 고기 냄새가 나네"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딸아이에게 "아무에게도 엄마가 종지 들고 뒷간에 갔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다음, 부엌으로 와서, 고기를 종지에 담아, 시어머님에게 시식하라고 갖다 드렸다.


   


     시어머님께서 시식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 "어미야, 내가 죽지 않는 것을 보니 먹어도 괜찮구나, 이제 모두 먹어라"고 말씀하신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끼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끔찍이 생각하는 가정,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 거기에서 평화가 넘치고, 기쁨이 용소슴쳤으며, 그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가 다시 어른이 되어, 효성심 있는 며느리가 된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그와 같이 아름다운 가정 풍습이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 가는 것을 나는 감동 스럽게 보았기에 여기에 소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