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1년이 되는 날입니다. 


동영상을 보시고 6.25 한국전쟁의 진실과


그 때의 참상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No. 1   동영상


6.25 한국전쟁


14분 51초


 


 


 


No. 2   동영상 


한국전쟁의 진실 


19분 43초


 


 


 


No. 3   동영상 


상기하자 6.25


11분 47초




지나간 61년을 회고해 보며


      1950년 6월 그 때 저는 영월공업고급중학교 5학년 생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서 영월읍으로부터 가까운 시골로 피난 나가 있었는데, 7월 4일 영월읍이 인민군 수중에 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침략한 인민군이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청년들과 학생들을 잡으려고 나섰기 때문에,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잠시 부모님 옆을 떠나 숨었는데, 전세가 불리함에 따라 밀리고 밀린 것이 부산까지 단신으로 남하하게 되었습니다. 


 


      전세가 불리하여 경남 일부만 남고 모두 인민군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으니, 조국을 구출하기 위해 한 목숨 버리기로 각오하고 8월 15일 만 17세의 소년으로 해군에 입대하여, 원산, 청진, 북청, 단청, 성진, 그리고 진남포, 해주 근해(동해 서해 바다)를 날아오는 적의 포탄을 피해가며 군함을 타고 싸웠습니다.



      저의 많은 동기생들이 통영, 여수, 인천, 흥남 상륙작전에서 유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목숨을 연장 하게 하셨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휴전이 성립된 다음에도 북한의 재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쉽사리 전역이 이루어 지지 않음으로, 서해 백령도 근해와 동해 간성 앞 바다에서 계속 밤을 세워가면서 나라를 지키다가, 만6년 10개월의 해군 생활을 마치고 만 24세 때, 폐허가 된 영월 땅으로 제대 귀향 하였습니다.


 


      재대하고 보니 순풍의 때는 다 지나가고 역풍 속에서 살 때가 되었지요. 거기에다 가정을 이루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으니, 생활 전선에 뛰어 들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가난과의 전쟁을 시작하였으나, 아무 것도 없는 밑 바닥부터 일어서야 하니 앞이 막막했던 것입니다.


 


      피 눈물 나는 노력과 고생을 70년대 초까지 계속하여, 낙농사업(젖소 사육)을 시작 함으로써, 밑 바닥 인생을 벗어나게 되었지요, 너무나 늦었지만 그 때 가서 자력으로 못다한 공부를 시작하여 공부의 지각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6. 25 전쟁, 생각만 해도 비통하고 눈물이 납니다. 돌이켜 보면 끔찍하고, 너무나 기가 찹니다. 김일성으로 인하여 나(我)라는 인생은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밑 바닥으로 떨어졌었는데, 하나님께서 삶의 길을 열어 주셨기에 오늘 나라는 존재가 있게 되었으니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남은 생애를 주님에게 쓰임 받는 삶을 원하나 모든 면에 퇴화하여 만시지 탄만 나올 뿐입니다. 기도로 도와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