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기행 #3  (유람선에서 배멀미)

필자 주 :

1. "하와이 기행 #4  (항해중에 맞은 결혼기념일)"은 이미 "사랑게시판 제347호"에서 "결혼 생활 57년 중에 있었던 희비 쌍곡선"이란 제목으로 올린 바 있습니다. 보시고자 하시는 분은 다음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사랑게시판 제347호 보기]


2. "하와이 기행 #5  (유람선에서 맞은 주일)"은 너무 졸필이 되어 게시하지 않습니다.

3. "하와이 기행 #6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은 이미 "사랑게시판 제326호"에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란 제목으로 올린 바 있습니다. 보시고자 하시는 분은 다음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사랑게시판 제326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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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람선에서 배 멀미


    필자 부부와 두 딸이 탄 유람선은 San Diego 항구를 떠나 252도 방위로, 시속 18 놋트(18 Knots=매 시간 1852mX18의 속도)로, 항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탄 배가 항해하고 있는 바다는 태평양(太平洋)이었는데, 그 이름 대로 처음에는 태평한 바다였는데, 몇 시간 항해하고 가다 보니 점점 강한 서북풍이 불기 시작하여, 바람을 안고 가는 탓에 점점 물결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필자 주 :


   1. 놋트(Knots)는 항해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1 해리(Nautical Mile)는 1852m이다. 해리는 육리 보다 조금 더 더 길다)


    2. 필자가 해군에 복무하고 있을 때는 우리 나라가 해방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관계로 함정에서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이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로 혼용 사용했었다. 당시 용어 그대로 표현한 것이 많이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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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여행 때 타고 갔던 Century호의 모습


    물결이 높아지자 아내는 배 멀미를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필자는 옛날 군함을 타고 전선으로 나갈 때 심한 풍랑을 만났던 일과, 또 배 멀미하던 것이 머리에서 떠 올랐으나, 모든 선박에는 내파성(耐波性)과 복원성(復原性)이 있음으로 풍랑이 높게 인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바로 머리에 떠올랐다. 내파성이란 선박이 파도를 견디어 내는 힘을 말하는 것이고, 복원성은 선박이 외력으로 인하여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도 오뚝이처럼 수평으로 유지하려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비행기는 양력으로 하늘로 떠 올라가고, 배는 부력으로 물위에 뜰 수 있다. 그런데 물위를 떠다니는 선박이 화물을 균형 있게 적재하지 않으면, 자연 그 배는 기울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선박은 자연 내파성과 복원성이 약해져 안정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선박 밑바닥에는 격실로 된 여러 개의 평형수(平衡水=Ballast Water) 탱크라는 것이 있어, 거기에 바다 물을 채워 줌으로써, 복원력을 바로잡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상선과 군함의 복원력을 비교해 보면 군함 쪽이 더 뛰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군함은 국방의 임무를 잠시도 중단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몸을 싣고 있는 유람선은 항상 3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면서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박이고, 또 강한 풍랑이 자주 일어나는 태평양 횡단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유람선이기 때문에, 풍랑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파선이나 배 멀미로 인하여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필자는 염려하지 않았다.


 


가. 선박의 흔들림을 표현하는 용어 


    선박이 항해하고 나아갈 때 풍랑의 작용으로 인하여 선박이 흔들리게 된다. 그 흔들림을 나타내는 용어는 주로 다음과 같은 말로 나타내고 있다.


    Rolling = 선박의 중심(重心)을 기준으로 좌현(Port)과 우현(Starboard)이 상반되게 상하로 흔들리는 것,


    Pitching = 선박의 중심(重心)을 기준으로 선수와 선미가 상반되게 상하로 흔들리는 것,


    Heaving = 선박 전체가 상하로 흔들리는 것, 


    Yawing = 선수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 이와 같은 용어로 표현한다. 이 외에도 다른 용어 몇 가지가 더 있으나 별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겠다. 


 


    선박의 흔들림을 자세히 설명하면, 선체가 어떠한 외력의 영향을 받아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그 선박이 지니고 있는 복원력으로 인하여, 오뚝이처럼 수직의 위치로 되돌아 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되돌아 가는 과정에는 관성도 함께 작용하고 있음으로, 복원 하려던 수직선을 넘어 반대 방향까지 기울어진다. 그러면 다시 복원 하려는 운동이 반복되어 이와 같은 운동이 계속 반복된다. 그러나 가해지는 외력이 단 1회로 끝나면 그 흔들림의 크기는 점점 감쇠 하다가 멈추어 진다. 그렇지만 풍랑이라는 외력이 계속하여 선박에 가하게 되면 선박의 흔들림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풍랑의 크기라는 변수에 따라 계속 흔들리거나 흔들림이 점차 커지거나, 또는 점차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와 같은 흔들림의 현상은 롤링(Rolling)은 물론 핏칭(Pitching) 등 모든 흔들림에 공히 적용된다.  


    선박의 흔들림의 중심점은 선박의 중심(中心)이 아니고, 선박의 중심(重心)을 축으로 하여 흔들린다. 그러므로 흔들림의 크기는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정도가 커지기 마련이다. 선박의 Screw(추진기)를 구동하기 위한 Engine(기관)은 배 아래 층 뒤쪽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이유는 Engine에서 만들어 낸 동력의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 선박의 중심(重心)은 중심(中心) 보다 약간 뒤쪽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화물이나 장비 등을 선수쪽에 많이 적재 또는 설치 하였을 경우에는 약간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아래 그림 중 첫번째 선박과 두 번째 선박 사이에 횡으로 그은 선이 있는데, 그 선에는 10등분 한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그 선의 중간 지점이 바로 상하 양 선박의 Engine(기관)과 굴뚝이 있는 곳이다. 선박의 Engine은 무거운 쇠 덩어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선박의 중심(重心)은 항상 선박의 중심(中心) 보다 약간 뒤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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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의 Screw와 기관이 뒤쪽 가까운 곳에 있음으로 선박의 중심(重心)은 중심(中心) 보다 뒤쪽에 있기 마련이다 


나. 아내가 배 멀미를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된 원인


    우리 부부가 사용한 객실은 9030호실이었고, 두 딸이 사용한 객실은 8098호실이었다. 9030호실은 9층에 있는데, 4줄로 되어 있는 객실 중 우현(右舷=Starboard)으로부터 첫번째 줄 선수로부터 8번째에 있는 30호실이었다. 그리고 딸들이 유숙한 8098호실은 8층에 있는데, 우현(右舷)으로부터 두 번째 줄, 선수로부터 19번째에 있는 98호실이었다. 그러므로 배의 길이, 배의 넓이 그리고 배의 높이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딸들의 객실 보다 우리 부부의 객실이 중심(重心)으로부터 더 멀기 때문에 당연히 흔들림의 도가 클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내가 제일 먼저 배 멀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9030호실은 바다를 내다 볼 수 있는 창이 있음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비싼 방이고, 8098호실은 좌우현(左右舷=Port and Starboard) 중간에 있는 방이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창이 없음으로 값이 더 싼 방이다. 그런 관계로 두 딸들은 좋은 방을 부모가 사용토록 한 것임으로, 그들의 효성과 호의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장단점이 있었다.


다. 배 멀미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


    출항한지 몇 시간이 지난 후부터 아내는 속이 메스껍다고 말하더니 드디어 먹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온 방안은 시큼한 냄새가 가득하고 아내는 침대에 누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필자는 아내에게 "하루만 지나면 자연 흔들림에 적응하게 되어 좋아질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아내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배 타는 여행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옛날 필자도 함정 생활 초기에는 진해를 출항하여 낙동강 하류를 지나 부산 앞 오륙도 근처를 지날 때부터 울산 방어진 근처에 이르기까지는 속이 몹시 불편한 몸으로 근무에 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작전 해역에 진입한 후, 태풍 또는 폭풍경보가 발령하였을 경우에는 함정이 금방 물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어려움 속에 이른 적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었다. 그렇지만 그곳은 적전 해역이기 때문에 대피할 곳도 없고, 그렇다고 대피하기 위해 작전 해역을 떠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48도의 롤링(Rolling)과, 33도의 핏칭(Pitching)이 계속 됨으로 이를 견디지 못하여, 먹은 음식물을 다 토해내다 나올 것이 더 없어 누런 X물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근무에 임해야만 했다. 


    만약 파도를 정면으로 안고 항진해야 할 때는 선체 보다 더 높고 큰 풍랑을 뚫고 전진하기 때문에, 마치 잠수함과 같이 물속을 뚫고 나갔다. 밀려오는 풍랑을 헤치느라 함수(艦首)가 물속으로 곤두박질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몇 초 동안 계속 되다가, 다시 함수가 하늘로 치솟는 느낌을 주는 핏칭(Pitching)이 반복되기 때문에, 간장이 다 녹아 내리는 고통이 계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심한 핏칭(Pitching)으로 함정이 파도를 타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배가 깨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까지 들려온다. 그러므로 3푼(3分)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철판(鐵板)에 생명을 의지하고 해상을 떠 다니는 사람으로, 어찌 그와 같은 소리를 들을 때,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아도 20세 전후의 철부지가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움을 잘도 견디었구나, 그 때를 생각하면서 자화자찬이 나오기도 했다.


 


라.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높은 풍랑이 계속 일어남으로 심한 고통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각자가 맡은 근무 시간은 빼먹을 수 없다. 더구나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직무는 함정의 신경 역할을 하는 통신 업무였기 때문이다. 언제 해군 본부나 연합군 함정들로부터 작전 연락을 위한 호출이 있을지도 알 수 없고, 또 언제 적함이 불쑥 나타날지도 알 수 없으며, 언제 다른 함정이나 선박에서 조난 신호를 발령할지도 알 수 없음으로, 아무리 심한 풍랑으로 함체가 요동친다 하더라도, 메스꺼움과, 먹지 못함 등의 고통 때문에 직무를 소홀히 할 수 없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근무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풍랑이 심한 관계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수신기 Speaker에서 우리 함정을 호출하는 모르스 신호 (Morse code)가 들려오면 바로 송신기 전원을 올린 후, 전건(Key)을 조작하여 모르스 부호로  "._. " (R= 알았다는 뜻)의 신호를 송신하고서는 곧 상대방의 호출 부호와 우리 함정의 호출 부호를 입력한 후 교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상대국에서 보내오는 전문을 수신하여, 암호문의 해독을 거친 다음, 작전관, 부장 함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당시 필자에게 부여되어 있던 임무였다. 


    또 인근에 있는 함정이나 민간 선박이 조난을 당하여 무선전신(모르스 부호 사용)으로  SOS SOS SOS(조난 신호)를 발한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선전화로  Mayday mayday mayday(조난 신호)를 발령하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담당 통신사가 풍랑을 이기기 힘들다 하여 근무 장소를 이탈하거나, 태만히 하여 조난 신호를 감지 못한 관계로, 조난 당한 함정이나 선박이 위기에서 구조 받지 못하거나, 구조가 지연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말할 것 없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영창에 들어가는 신세가 될 것임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


마. 배 멀미로 인한 고통 때문에 생겨난 특수 용어


    배 멀미로 인한 극심한 고통은 몇 시간 내지 며칠이 지나면 자연 거기에 적응하게 된다. 그래서 해군 군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옛말이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날 때는 뱃놈이고,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할 때는 뱃양반"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풍랑이 심할 때는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함으로 그 때는 쌍놈이 되고,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할 때는 신선놀음과 같음으로 양반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풍랑이 심할 때의 고통이 어떠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뼈 있는 말이다. 


  


바. 배 멀미에 대한 실화 한 토막


    휴전 후 어느 해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해군의 스마-트 함을 홍보하여 많은 지원병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필자가 승조(일본어 のりくみ= 乘組, 우리나라 말로는 승무) 하고 있는 함정이 주문진 읍민들에게 보여주는 특별 행사가 있었다. 진해를 떠나 목적지인 주문진 항을 향해 가는 동안, 함정 구석 구석에 대한 대청소도 실시하였고, 또 각자의 침대에는 깨끗하게 세탁한 이불 커버와 메트리스 커버, 그리고 깨끗한 베갯잎을 씌웠으며, 전 승조원은 작업복으로부터 정복으로 갈아 입은 다음, 주문진 외항에 닻을 내렸다. 사전 행정기관과의 조율이 되어 있었기에, 200명이 채 안 되는 시민들이지만, 관함(觀艦) 하기 위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관함 할 손님들이 모두 승함한 다음, 약 40분 동안 작전부, 갑판부, 기관부 각기 분야 별로, 책임지고 있는 장교들이 그들을 인솔하여 함정 관람이 진행 되었다. 그 다음 약 1시간 동안은 갑판 상에서 병사들이 발표하는 장기자랑을 보여 주었다. 군인들이 모여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각양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두루 모여 있는 곳이기에, 어떤 병사는 "I went to your wedding" 이라는 제목의 양곡을 멋지게 불러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고, 또 어떤 군인은 자작 가사를 유행가 곡에 맞추어 불렀는데, 그 내용은 "해군의 수병에게 연애를 걸어라, 연애를 걸면 행복이 온다, 양양한 태평양에 태극기를 날리는, 씩씩한 해군 수병 아내 되어라 마누라 되어라" 이와 같은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 어떤 이는 탭 댄스, 어떤 이는 만담, 어떤 이는 가곡, 사교 댄스 등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내는 순서가 진행되었었다.


   


    이제 마지막 순서는 실제 전투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시간이어서, 닻을 올린 다음 육지가 먼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관함 하기 위해 오신 분들 중에는 000교회 교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함정이 닻을 올리고 항진을 시작할 때는 모두가 갑판상에 처 있는 데스리(일본어 "手すり", 우리 말로 난간을 뜻함)를 잡고서는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였었다. 그런데 출항 후 약간의 시간이 흐를 때부터 멀미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하나 둘 셋 넷 ..... 갑판 위에 쓰러지는 손님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 했다. 그러자 함장님은 쓰러진 손님들을 해수 기포(氣泡)가 날아오는 곳에 그대로 계속 있게 할 수 없음으로, 갑판상에서 근무하는 수병들로 하여금 내무반 침대로 모두 인도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많은 관함객들이 내무반으로 옮겨져 내려갔다.


 


    드디어 전투 경보가 울리면서 모든 승조원은 전투태세로 배치되어, 하늘 높은 곳으로 조명탄을 발사한 다음, 낙하하는 조명탄을 향하여 3 inch 주포와, 40mm 기관포 그리고 20mm 2연장 기관포로부터 포탄들이 날아갔는데, 관함객으로 하여금 날아가는 포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광탄을 섞어서 발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날아가서 명중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관함객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의 무기는 오늘날의 무기와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무기들이었다. 그렇지만 Fire Control로 표적을 조준하기 때문에 명중율이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적 잠수함이 나타났을 때를 가상하여 폭뢰(暴雷)를 발사하였는데, 그곳 수심에 맞추어 폭발 할 수 있도록 심관을 조정하여 발사하였더니, 물속으로 내려가던 폭뢰는 조정한 수압을 받자 폭발하였다. 폭뢰가 폭발함에 따라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과 물기둥이 하늘로 솓구치는 모습, 그리고 바다 위에 떠오른 물고기 등은 정말 구경꺼리였다.


 


    모든 실전 모습을 보여 준 다음 주문진 외항으로 되돌아가서 닻을 내리고는 관함객들을 상륙 시키려고 준비하였는데, 침실로 들어간 많은 손님들이 나오지를 않는다. "상륙하라"고 기별하기 위해 내무반으로 내려갔던 수병이 깜짝 놀라 올라와서 "내무반이 엉망이 되었다"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내무반으로 내려가 보니, 침대는 토사물로 얼룩져 있고,내무실  3 곳은 모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3단 또는 4단 층층대로 매달려 설치되어 있는 침대는 오늘 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Twin Size 침대 보다 그 규격이 약간 좁은 것이었다. 그것도 전 승조원이 70 여명이기 때문에 침대 역시 70 여개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것으로 100 여명의 손님들을 수용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침대에는 2명이 함께 누어 침대 밖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누워서 서로 꼭 껴안고 있는 곳도 있었으며, 심지어 어떤 침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정신을 잃고 서로가 껴안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자신의 겉옷이 올라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반나의 상태가 되어 있음에도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등, 평소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이상한 광경들이 목격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일들은 의식적인 상태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배 멀미로 인하여 정신을 잃고, 남들 보기에 좋지 못한 현상을 나타내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술에 취한 노아가 하체를 드러내고 정신 없이 잠에 빠져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그 때까지 우리 나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 바고 있던 시절이기에, 오늘날과 같이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대두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관함 행사를 마친 우리 함정은 귀항하기 위해 항해하고 있을 때, 어떤 병사가 함내 식당에서 자랑 삼아 이야기 한 것이 큰 화제꺼리로 떠 올랐다. 그 내용인즉 금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눈앞에, "정신을 잃고 쓸어진 사람들을 부축하여 침대로 모셔가라"는 함장의 명령이 내려졌으니,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아가씨들만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부축하여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주 강하고 밀착된 스킨 쉽(성추행)을 해보았다고 자랑 삼아 말하는 것이었다. 이 모두가 배 멀미와 관련하여 일어난 것으로, 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범죄를 자행하였고, 또 한 사람은 배 멀미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가운데 본의 아니면 방조한데서 발생한 결과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객선이 출항하기 전까지는 남녀가 내외하고, 노유가 분명하고, 상하 간의 예의가 존재하나, 일단 여객선이 출항하여 풍랑이 일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자연 엄격하던 그 질서가 무너진다고 말하는 것을 필자는 들은 바 있다. 배 멀미가 시작되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도 모르고, 생면부지의 남녀가 서로 부등켜 안고 고통을 달래기도 하며, 시아버지의 코 앞에 며느리의 꼬랑내 나는 발이 가 있음에도 치울 생각조차 못하는 정도로, 무질서한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악이 넘칠 정도로 뒤덮고 있으니,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이 세대를 본받거나 휩쓸려 따라가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고 푯대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우는 사자의 밥이 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 배 멀미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아내


    엄마가 배 멀미로 너무 고통 당하는 것을 본 두 딸들은 방을 바꾸자고 제안해 왔다. 그러나 아내는 주님을 의지 하고서는 밀려오는 고통을 참고 견딤으로 결국은 그 고통을 이겨냈다. 예상했던 대로 하루가 지난 다음부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더니,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다음, 11층 Pool장으로 올라가서 수영도 즐겼고, 또 SPA실로 올라가서 냉탕과 온탕을 드나들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Pool장 가에 있는 간이 침대에 엎드려 당일 읽어야 할 맥체인 성경 읽기 계획표에 따라 밀린 성경 통독을 햇볕 아래에서 모두 읽다가, 등을 비롯한 여러 곳에 태양열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자 아내는 선박 의무실에서 주는 선인장 연고(Aloe Gel)를 화상 입은 곳에 바른 다음 쉬지 않고 배 안을 돌아다니면서, 바다 바람도 쒜면서 신선한 공기도 마셨고, 또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찾아 먹으면서, 저녁 시간에는 극장에서 열리는 마술, 춤, 쑈 등을 관람하는 등으로 즐기는 것을 필자는 보고 무척 기뻐했다.  


    그런데 배 멀미에 대한 적응 현상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배 멀미를 이겨내는 사람도 있고, 또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해군에 복무할 때 어떤 전탐사(電探士)는 배가 항구 안에서 이동하는 경우에도 침대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필자는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작전 명령을 받고 출동한 함정이 작전 임무를 모두 마치고 진해 모항으로 귀할 할 때까지 근 20일을 계속 일어나지 못하고 죽는다고 아우성 치다가, 결국은 육상 관서로 전속되는 것을 필자는 본 적 있다.


아. 멀미는 왜 일어나는가? 


    멀미는 불규칙한 움직임에 대한 신체반응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 몸이 불규칙하게 움직일 때 그와 같은 현상을 감지한 신체 여러 기관의 보고가 뇌로 들어가는데, 그 보고 내용이 서로 달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예 1 : 배를 타고 가면서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보고 느낌으로 뇌에 전하는 보고와, 


       내이(內耳)의 세반고리관내 림프액으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뇌에 보고한 내용, 그리고 


       육체가 진동을 받고 있다는 것을 팔의 관절과 인대가 감지하고 뇌에 전하는 보고 등이 서로 다르게 나타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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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2. 또 세반고리관과 시각적 차이인데, 


      달리는 차 안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세반고리관은 진동을 감지하고 몸이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지만, 


      시각은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뇌에서는 눈이 보고한 내용과, 귀에서 보고한 내용에 차이가 있음으로 멀미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판단들이 부딪히면서 뇌에 혼란을 가함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멀미가 생겨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은 메스꺼움, 어지러움, 구토인 것이다. 


자. 멀미를 나지 않게 하거나 고통을 줄이려면


    지금까지 멀미 나는 것을 방지하거나 줄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왔는데, 그 방법을 적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흔들림이 적은 좌석으로 옮겨간다. 선박인 경우 중심(重心)이 가까울수록 멀미가 적어진다. 쉽게 말해서 이물(선수)이나 고물(선미)로 가지 말고 선박의 중간으로 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2) 기관실과 같이 기름 냄새가 나는 곳 또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곳에는 되도록 가지 않는 것이 좋다.


      3) 외부 경치를 바라볼 때는 가까운 경치 보다 먼 경치를 보는 것이 좋다. 선박인 경우 변화가 적은 수평선과 같은 원경을 바라 보라는 것이다.


      4) 과음과 과식을 절대 피한다. 그러나 여행 직전이나 여행 중에는 가벼운 음식(예 : 과자류, 사탕, 껌 등)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먹을 수도 없고, 또 먹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5) 숙면을 취하여야 한다.


      6) 귀 뒤에 붙이는 패치형으로 된 멀미 예방제를 정한 곳에 붙인다거나, 최근 개발된 "멀미 방지 시계"를 착용하라고 한다. "멀미 방지 시계"의 기능은 손목에 미세한 전자 자극을 주어 멀미를 막아 준다고 한다.  


      7) 복장은 편안한 것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꼭 끼는 옷, 특히 가슴 부분을 꽉 조이는 옷은 피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짙은 색이 있는 썬 글라스를 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8) 민간 요법의 활용


        가) 생강을 씹으면 좋다고 한다. 생강은 위산의 과다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부작용이 거의 없고 기존의 화학 약품보다 2배나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날 생강은 어른들도 쉽게 먹지 못할 만큼 매운 맛을 가지고 있다. 생강은 날것이나 열을 가했을 때나 그 영양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니, 생강을 말린 후에 가루로 내거나, 익혀서 먹으면, 매운 맛을 적어 먹기가 쉽다는 점을 기억하면 유용할 것이다. 


        나) 배에 오르기 전에 한쪽 귀를 휴지 등으로 막는다.


9) 그런데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배 멀미를 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을 졸이지 말고 가벼운 운동이나 즐거운 대화에 동참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예방 법과 억제하는 방법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멀미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동 중에 있을 때는 큰 변화가 없는 먼 곳을 응시하고, 찬 바람을 쐬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한다. 증세가 심해졌을 경우에는 똑바로 반듯하게 누우면 나아지긴 하지만 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있을 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나타난 것이 화학 약품들이 많이 개발 되었는데 그 약품이 바로 사람의 부교감신경을 억제하는 "스코폴라민(scopolamine)" 성분이라고 하여 한 때 그것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성분과 관련된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면서 이용량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코폴라민"이 부교감신경을 억제하는 동안 생길 수 있는 일시적 시력 감퇴, 착시증상, 인식 장애 등이 있는데, 이 부작용들은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특히 많이 발생된다고 한다. 


차. 고통 뒤에 오는 즐거움


    멀미를 시작할 때, "다시는 선박 여행을 하지 않겠다"던 아내는 멀미가 멈추어지자 그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일시적으로 당한 고통 보다 그 후의 얻은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 된다. 여기에서 저의 어머님 이귀순 권사님의 간증 수기에 기록된 내용 중에서 그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여기에 소개하려고 한다. 간증 내용 중에서 제 1인칭인 "저"는 이귀순 권사님으로, 권사님은 92세 때인 2001년 2월 5일 소천하셨고. "큰 아이"는 필자의 형님 한수로, 그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세웠던 뜻을 전쟁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고, 장로님으로 교회에 충성하시다가 79세 때인 2008년 7월 2일 소천하셨다. 그리고 간증 내용 중에 나오는 "둘 째 아이"는 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간증 내용

    1950년 한국 동란이 일어났을 때 저는 강원도 영월에 살고 있었습니다. 동란을 피하여 가까운 농촌인 남면 광천리 굴골로 피난하였는데, 인민군이 찾아와 "예수 믿느냐?"고 묻기에, 저는 옹기종기 앉아 있는 어린 자식들을 둘러보면서 "주님 저 아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속으로 이렇게 기도한 후 "나는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하였더니, 나를 당장 죽일 줄 알았던 인민군은 수첩을 꺼내 무엇인가 적은 다음, 나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나의 심정은 "죽으면 죽으리라"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 거짓 말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기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인민군이 간 다음 나의 가슴은 쿵쿵 뜁니다. 혹시나 오늘 밤이라도 인민군이 찾아오면 우리는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 아닌가? 둘 째 아이는 인민군에 잡혀가지 않으려고 벌써 저의 옆을 떠난지 오래 되어, 그 아이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지금 그 어린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걱정을 가지고 있는데다, 주의 종이 되려고 서울 가서 신학 공부하던 큰 아이 마자, 위험한 이곳으로 내려와서 함께 있는데, 만약 인민군에게 그 아이가 잡혀갈 것 같으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주여! 지금 뒷밭에 서 있는 짚 가래 속에 그 아이를 숨겨 두었으니, 주님께서 꼭 지켜 주셔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갈아 앉기는 하나, 그래도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저의 믿음이 약한 탓이겠지요, "주님 믿음 없는 것을 용서해 주시고, 강한 믿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 날 밤 야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을 참을 길 없어서, 철 모르는 어린 아이 다섯 하고 짚 가래 속에 숨겨 두었던 큰 아이까지 모두를 데리고, 거기에서 다른 동리 빈 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는데, 국군이 진격해 오자 인민군의 도망가는 꼴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선 달라면 주시는 분이시고, 의지하고 맡기면 지켜 주시는 분이시니, 참으로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신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

  

타.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40세의 권사님은 전쟁 난리를 피하기 위해 농촌 한적한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공산군이 철 모르는 어린 자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곳에 느닷없이 찾아왔으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심히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당신 예수 믿느냐?" 하고 질문을 가해 왔으니, 이젠 나의 대답 여하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될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하면 어린 것들과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고, "믿지 않는다고 부인 하면 영생으로 가던 길을 중도에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권사님은 그 순간 주저함 없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예수 믿는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당장 당할 죽음 보다 영원한 영생이 중하기 때문이었다. 주님을 시인하는 권사님의 대답이 나오자, 우리 주님께서 공산군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기에, 그는 수첩을 꺼내 무엇인가를 기록한 후 그대로 돌아가게 주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그런 다음 국군으로 하여금 반격을 가하도록 하심으로, 권사님이 당하고 있던 어려운 문제를 주님께서 말끔히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순경이든 역경이든 언제나 주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찬송과 기도로 주님께 전적 매어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한시적인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통은 매우 크다. 아무리 크고 무섭고 어렵다 하더라도, 장차 우리에게 임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영생하는 희락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환난이 닥친다 하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믿는 자의 당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유에서 유로 바꾸는 변형이나 변질을 어찌 못하시겠는가? 주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풍랑도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보리 떡 다섯 개와 물 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우리 모두 철저히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인간의 불가능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드시게 된다는 믿고, 의지하는 자가 꼭 되어, 주님이 주시는 크신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림은 연결한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