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기행 #8  (기습공격을 받아 입은 피해)


  주 : 다음 "하와이 기행 #9  (하와이 섬의 활화산)"은 이미 "사랑게시판 제330호"에 올린 바 있음으로 건너 뜁니다. 보시기 원하시는 분은 다음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랑게시판 제330호 보기 ]


  


 


 


8. 진주만(Pearl Bay)에 도착하여 


    진주만(Pearl Bay)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미 하와이 기행06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에서 많은 것을 언급한 바 있어, 중복되는 내용은 피하려고 한다. 진주만은 미국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유일한 해군 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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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aii 주 Oahu 섬 지도, 진주만(Pearl Bay)의 정확한 위치가 지도상에 나타나 있음



    유람선에서 상륙한 우리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진주만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버스 정류소 가까이 있는 Pearl Harbor Historic Sites로 가서 Visitor Center를 통하여 경내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곳을 일컬어 Pacific Historic Parks라고 말하고 있는데, 필자는 그 곳에서 1941년 12월 8일(미국에서는 12월 7일),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 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태평양 전쟁에 관한 역사적인 많은 자료들을 눈 여겨 볼 수 있었다.


    인근에는 태평양전쟁과 관계된 다음 이름을 가진 여러 기념관 박물관 등이 세워져 있었다.


        (가) USS Bowfin Submarine Museum & Park (잠수함 보우핀호 박물관),


        (나) USS Arizona Memorial (전함 아리조나호 기념관),


        (다) World War II Valor in the Pacific National Monument (세계 제2차 대전 중 태평양에서 있었던 무공 기념관),


        (라) Battleship Missouri Memorial (전함 미주리호 기념관),


        (마) USS Oklahoma Memorial (전함 오크라호마호 기념관), 


        (바) Pacific Aviation Museum Pearl Harbor (태평양 항공 박물관). 등, 의미 심장 하게 살펴본 것 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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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Bowfin Submarin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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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Arizona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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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W II Valor in the Pacific National Mon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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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ship Missouri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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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Oklahoma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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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Aviation Museum Pearl Harbor



 


    필자 일행은 USS Arizona Memorial을 먼저 살펴보려고 입장권 구입 창구로 갔다. 그곳에는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서 있는 사람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음으로, 바로 옆에 있는 World War II Valor in the Pacific National Monument(세계 제2차 태평양 무공 기념관)으로 먼저 들어가 태평양 전쟁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부터 살핀 다음, USS Arizona Memorial로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여기에서 잠간 USS Arizona Memorial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언급하려고 한다. USS Arizona Memorial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기습 공격을 받고 침몰한 미국 전함 Alizona함(BB-39=32100톤)에 관한 것을, 자라나는 후세들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함과 동시, 방문하는 사람들이 쉽게 그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념관이다. USS Arizona함이 침몰되어 있는 물 위에 침몰된 함정과 교차되게 새로운 건물을 세워, Arizona 전함 기념관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방문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침몰된 함정을 직접 내려다 보면서, 영원히 기념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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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Arizona (전함 아리조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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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물 속에 침몰한 USS Arizona 전함의 윤곽이 보인다 



    그런데 필자는 World War II Valor in the Pacific National Monument(세계 제2차 태평양 무공 기념관)으로 들어가서 모든 내용들을 자세하게 살펴본 다음, Arizona 기념관 입장권을 사려고 오후 3시가 약간 넘은 시각에 그곳으로 갔더니, 입장권이 매진되어 창구가 닫혔다(오후 3시). 그래서 Arizona 기념관은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는 Arizona 기념관으로 가기 위해 "한 우물을 계속 파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길게 늘어진 줄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던 관계로, 우리 일행 중 오직 혼자 Arizona 기념관으로 가서 침몰된 함정을 살펴 보고 돌아 왔다. 필자는  Arizona 기념관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Pacific Historic Parks 구석 구석을 살펴 보았다. 바닷가에 있는 이 공원에는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피해를 당한 내용들이 돌 판에 상세하게 새겨져 있음으로, 방문객들이 그 진상을 쉽게 읽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미국 함정들의 피해 입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침몰된 미국 함정   (6척) 


(함정 별 피해 인원수는 파악하지 못했음) 



USS Oklahoma


전함


BB-37


27500톤


USS Alizona


전함


BB-39


32100톤


USS California


전함


BB-44


37000톤


USS West Virginia


전함


BB-48


32600톤


USS Oglala


기뢰 부설함


CM-4


  3746톤


USS Utah


표적함


AG-16


21825톤


      2)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파손 당한 미국 함정   (12척)



USS Pennsylvania 


전함


BB-38


31400톤


USS Tennessee


전함


BB-43


37000톤


USS Maryland


전함


BB-46


32600톤


USS Nevada


전함


BB-36


27500톤


USS Rall


경순양함


CL-7


  7450톤


USS Honolulu


경순양함


CL-48


10000톤


USS Helena


경순양함


CL-50


10500톤


USS Cassin


구축함


DD-372


  1500톤


USS Shaw 


구축함


DD-373


  1500톤


USS Downes


구축함


DD-375


  1500톤


USS Curtiss 


수상기 모함


AV-4


  8625톤


USS Vestal


공작함


AR-4


 8100톤


    일본이 기습 공격을 가함으로 미국이 피해 입은 내용들을 필자는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침몰된 함정들의 피해사항을 읽어내려 가다 보니, 함정과 함께 희생된 장병들의 이름과 사진들이 돌판에 새겨져 있는 것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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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할 내용들이 새겨져 있는 Pacific Historic Parks의 돌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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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피해 입은 내용들이 돌판에 새겨져 있다



      


  가. 전사자들의 명단을 보는 순간


    전사자들의 명단을 보는 순간 필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면서, 지난 날 필자가 탄 함정이 위험한 적전 해상을 수 없이 누볐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 들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갔고, 우리 해군 함정 가운데도,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되어 많은 전우가 한꺼번에 전사한 사건도 있었으며, 또 함정이 납북 당하여 사랑하는 전우들이 생지옥 북한으로 끌려 간 사실도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기억 속에 다시금 떠 올랐다.


 


    1941년 12월 7일 주일 새벽, 이곳 Hawaii주 Oahu섬에서는 고요히 잠들고 있는 평화의 동산에 침략을 좋아하는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위에 적은 내용과 같은 미국의 많은 함정들이 침몰 또는 파괴 되면서, 미쳐 피어나지도 못한 꽃 봉우리들이 시들게 된 슬픈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처럼 한국 땅에서도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고요히 잠 자고 있는 우리 나라를, 북한이 242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기습 공격을 가해옴으로 평화롭던 우리 나라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슬픈 사건이 일어났었다. 필자의 머리 속에는 일본이 Hawaii 진주만을 기습공격 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 25 전쟁이 일어난 영상들이 필자의 기억 속으로 스쳐가기 시작했다.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난을 피해 남하 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필자는 직접 보았고, 또 필자가 해군에 입대하여 북한 해역을 누비는 동안, 많은 전우들이 함정과 함께 전사하는 사건을 직접 보기도 하였으며, 또 듣기도 하였으며, 여러 가지 경로들을 통하여 알게도 되었는데, 그 것들을 모두 수합하여, 그 중에서 해상에서 일어난 사건과, 함정과 관계 있는 사건만을 선별하여, 생각나는 대로 여기에 소개하려는 것이다.


 


    먼저 6 25 전쟁과 관계된 동영상 몇 편을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1) 625 전쟁 동영상 (10분13초)


     (2) 625 전쟁 동영상 (2분31초)


     (3) 625 전쟁 동영상 (5분26초)


     (4) 625 전쟁 동영상 (1시간25분6초)


     (5) 625 전쟁 동영상 (13분56초)


  나.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 해군 함정이 입은 피해


    1) PC-704함 기뢰 접촉으로 침몰


대한민국 해군과 유엔 해군은 1951년 2월 14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될 때까지 원산항만 봉쇄작전을 실시하였는데, 이 때 우리 해군 함정도 이 봉쇄 작전에 직접 참여했었다, 더욱 필자는 PC-705함(한라산호)을 타고 오랫동안 최전선에서 원산항만 봉쇄작전을 수행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704함(지리산호)이 침몰한 해역이다. 그리고 침몰된 704함은 필자가 승무했던 705함과 같은 종류의 함정이기 때문에 더욱 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704함에 대한 내용부터 먼저 여기에 기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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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함으로 활동할 때의 704함 (지리산호)



    704함이 침몰한 원산항만을 우리 해군이 봉쇄하고 있었는데, 원산항만을 봉쇄 함으로 우리 나라가 얻는 작전상 이득부터 먼저 설명하겠다.


         (가) 원산항만 안에 산재해 있는 여러 섬(려도, 신도, 대도, 황토도 등)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 해병 첩보 요원들을 안전하게 지켜 줌으로써, 적군의 정보를 용이하게 입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소련으로부터 철도편과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으로 지원되어 오는 군수 보급 물자의 수송을 차단 할 수 있었으며,


         (다) 북한 공산군 입장에서는 UN군과 한국군이 언제 원산 또는 흥남 지역으로 상륙할지 알 수 없어, 원산 지역에 인민군 보병 3개 사단과 포병 2개 여단을 묶어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관계로 지상전 최전방에 많은 병력을 보내지 못함으로, 우리 육군의 지상 작전에 유리함을 얻게 했다.


  


    1951년 12월 24일 704함은 동해안 봉쇄작전을 위해 출동하라는 작전명령을 받고, 같은 날 24일 10시 부산항을 출항하였다. 12월 25일 원산 해역에서 703함과 임무 교대를 마치고, 우리 해군 다른 함정들, 그리고 유엔군 함정들과 함께 북한 해안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원산 인근 낭성리로부터 날아오는 박격포와 야포, 그리고 갈마반도(葛麻半島)와 호도반도(虎島半島)에서 날아오는 직사포 등의 공격으로, 한층 전운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 때 704함은 영흥만(永興灣) 내, 호도반도와 가까운 해역, 해안 가까운 곳까지 들어가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적 포탄이 심하게 날아오자 유엔군 함정과 다른 우리 해군 함정들은 안전 해역으로 이동해 나갔는데, 704함은 단독으로 적진을 향해 나아가면서, 부여 받은 정보에 따라 포격할 목표물을 찾아 3인치, 40㎜, 20㎜ 기관포로 타격을 가한 후, 안전 해역으로 빠져 나오는데, 적이 쏜 포탄이 704함 가까운 해상에 떨어져, 함정보다 훨씬 높은 물기둥이 치솟았지만, 두려워 하지 않고 안전 해역으로 이동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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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전쟁 당시 우리 해병 첩보부대가 원산 항만에 점령한 도서들



  


    1951년 12월 26일, 이날 따라 도저히 함정이 항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폭설과 풍파가 심하였지만, 704함은 폭설과 풍파와 싸우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원산 서북방 성남리라는 곳에 기뢰 및 지뢰 등을 은폐해 두고, 야간을 이용하여 트럭으로 원산항 부근으로 운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704함은 결사적인 각오로 원산항 가까운 곳까지 접근하여, 목표지점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여, 기뢰 부설을 계획하고 있는 북한군의 작전을 깨트린 다음, 육지로부터 먼 해역으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칠흑 같이 어둔 밤 기상 상태가 매우 험악한 관계로, 적군이 부설한 기뢰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기뢰에 접촉 됨으로써,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애석하게도 침몰하고 말았다. 


 


    한 밤중에 큰 폭음을 들은 인근 도서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들은, 날씨가 너무 험악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이른 새벽 시간에 해안을 순찰하던 중, 전파(全破)된 704함의 부유물을 발견 하고, 인근 해역을 수색하여 30 여 구의 시체를, 그리고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 추운 날씨지만 혹시나 생존자가 있으면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던 중, 돌섬 인근에서 승조원 셋이 한 조가 되어 로프로 연결한 채 표류하면서 시체가 된 것을 수습하였고, 또 나무 조각으로 표류하다 얼어 죽은 자, 어떤 이는 바위 위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갔지만 역시 모진 추위로 얼어 죽은 자를 발견하는 등, 모두 50여 구의 시체를 수습하였다. 704함은 6 25 전쟁이 발발한 직후 한국 해군의 주력함으로 활동하다가, 1951년 12월 26일 밤, 애석하게 적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함으로써, 전 승조원 58명이 애함과 함께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주 : 여기에서 기뢰의 종류를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기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구분할 때는 통기뢰, 부유기뢰, 계류기뢰, 및 해저기뢰로 구분하고, 또 폭발 원인에 따라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자기(磁氣) 감응 기뢰는 자석의 힘으로 기뢰가 함정을 찾아가고, 음향(音響) 감응  기뢰는 함정에서 나오는 소리를 기뢰가 찾아 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압력(壓力) 감응 기뢰는 기뢰에 가해지는 압력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어서 수압이나 접촉하는 물체가 가하는 압력에 따라 폭발하는 기뢰다. 그 외에도 다른 구분 방법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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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뢰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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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에 떠도는 부유 기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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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뢰가 폭발했을 때 일어나는 물기둥



              


    2) YMS 516정 등 기뢰 접촉으로 침몰


     한국 해군은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많은 군함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동해는 미국 함정들이, 서해는 영국과 카나다 함정이 작전의 중심이 되어, 소형 함정을 가진 한국군과 함께 초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서남해에 대한 제해권을 UN군 측이 장악하게 되었다.


해상에서는 막강한 UN군 해군의 기동력과 화력에 밀려 북한군은 적극적인 해상 작전을 포기한 상태로 있었다. 그렇지만 지상전에서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UN군이 북한 땅을 비워주고 후퇴하게 되자, 북한에서는 원산, 흥남, 진남포 등지로 한국군과 UN군이 다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거부작전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해안 고지대나 동굴, 계곡 같은 곳에는 중공제 장사정포를 배치하기에 이르렀고, 항구와 바다에는 소련제 기뢰를 부설하게 되었다.


 


    유엔군과 우리 해군은 기뢰 접촉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대비하고는 있었지만, 북한 땅과 인접한 소련 땅 부라지보스토크(Vladivosdok)에 기지를 둔 소련 잠수함 부대가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해상 작전의 위험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소련 함정은 미군 함정과는 달리 모든 함정에 기뢰를 부설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해군은 소련의 기술 제휴를 받아 짧은 기간에 많은 기뢰를 쉽게 부설하게 되었다. 그래서 1.4 후퇴 후에 우리 해군에게 부여된 중대 임무는 아군 함정들이 동서남해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하는 통행로 확보가 급선무였다. 그래서 대대적인 소해(掃海) 작전을 수행하면서, 북한 선박의 통행을 봉쇄 차단하는 작전 등을 병행하게 되었다. 


    1950년 10월 18일 원산 영흥만에서 소해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해군 YMS 516정(공주정)이 적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되어 폭파되었다. 그리고 서해 진남포 앞 바다에서는 JMS 306정, JMS 302정, YMS 502정, PF 61함 등이 적의 기뢰에 접촉되어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 기뢰로 인한 피해는 미 해군 함정도 여러 척이 당했었다. 1951년 2월 2일에는 동해 양양 앞 바다에서 소해 작전을 수행하던 미 해군 패트리지함이 기뢰에 접촉되어 침몰하였고, 1952년 6월 12일에는 미 구축함 워크호가 흥남 근해에서 기뢰에 부딪쳐 26명이 전사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1952년 9월 16일에는 원산 동쪽 80마일 해역에서 미 구축함 바톤호가 기뢰에 접촉하여 5명이 실종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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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S 516정이 기뢰 접촉으로 침몰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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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S 516정과 동일한 유형의 소해정 (한국 해군 퇴역함정 YMS 520 모습)



   주 : 여기에서 소해정(掃海艇)에 관한 설명을 잠간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소해정을 다른 말로는 소뢰정(掃雷艇), 또는 소해선(掃海船)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이 소해정은 일반적으로 해군의 작전 임무를 전개하기 전에 먼저 바다에 설치되어 있는 기뢰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지상군의 공격로 화보를 위해, 땅속에 매설되어 있는 지뢰를 제거하는 작전과 같은 것이다. 처음에 고안된 소해 방식은 바다 밑에 닻을 내린 촉발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2척의 소해정이 톱날 같은 날카로운 장치가 달린 강철 밧줄을 양쪽에서 끌고 가면서, 기뢰를 고정하고 있는 철선을 잘라 기뢰가 해상으로 떠오르게 한 후, 그 것을 함포로 폭발 시키는 방법으로 소해를 했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공산군에 의하여 방류한 기뢰들은 자기(磁氣) 기뢰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관계로, 선체를 나무로 만든 소해정이 주로 동원되었다. 이 배는 합판으로 만든 선체와 스테인리스강 합금으로 만든 엔진, 그리고 알루미늄이나 놋쇠 또는 마그네슘으로 만든 금속 부품들을 사용하여 기뢰가 지니고 있는 자장에 들어가도 기뢰가 딸려오지 않도록 고안된 소행정이었다.


  다. 납북(拉北)된 해군 함정


    이 항목의 사건들은 필자가 해군에 입대하기 이전, 그리고 6 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광복 직후,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우리가 살던 남한 각처에 북쪽의 지령을 받은 좌익 세력들이 세포 망을 구축 하였는데, 그들은 해안 경비대 안에도 예외 없이 침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일으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해군 함정과 관계 있는 사건만 생각나는 대로 여기에 쓰려고 한다. 


해방 직후 우리 나라에는 대형 함정은 없었고 모두가 소형 함정 몇 척 뿐이었다. 다음 설면에서 앞에 J자가 붙은 함정은 일본이 사용하다가 버리고 간 소해 함정이고, Y자 붙은 함정은 미국이 태평양 전쟁 때 쓰다가 퇴역한 것을 무상으로 원조하여 인수한 함정들이다. 그리고 이 함정들은 모두가 소형으로 그 무게는 200톤 내외, 승조 인원수는 불과 20-30명 정도였다.


 


    1) JMS 통천정(일본제 소해정) 납북


1948년 5월 7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를 사흘 앞둔 날이었다. JMS 통천정이 북한으로 납북됐다는 급보가 해안경비대 사령부에 날아들었다. 묵호 기지에 배속되어 있던 통천정은 주문진 부근 해상에서 38선 인접 해역 경비를 마치고 귀항 중이었다. 북한에서 심은 좌익 승조원들이 정장 김원배 소위와 부장(副長) 백경천 병조장을 사살하고, 배를 속초(당시는 속초가 북한 땅) 항으로 몰고 갔다.


 


    2) YMS 고원정(미국제 소해정) 납북


통천정이 납북된 지 8일이 지난 1948년 5월 15일, 또 다시 YMS 고원정이 납북되었다. 고원정은 제주도 근해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JMS 통천정이 납북 당함으로 비어 있는 경비 구역을 메꾸기 위해, 묵호 배속 명령을 받고 묵호항으로 항해 중, 좌익 승조원에게 납북 당한 것이다.


 


    3) YMS 강화정(508정 미국제 소해정) 납북


육군 2개 대대가 집단으로 월북한지 일주일이 지난 1949년 5월 11일, 또 다시 YMS 508(강화정)이 납북 당하였다는 급보가 해군본부에 날아들었다. 강화정을 타고 전선을 시찰하기 위해 출동한 정대사령(艇隊司令) 황운수 중령과 정장 이기종 소령을, 북한으로부터 밀파된 강화함 부장이 두 상관을 사살하고, 배를 몰고 월북한 것이다. 


 


    4) JMS 통영정(302정 일본제 소해정) 납북 미수


1949년 5월 20일에는 JMS 302정(통영정) 납북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해군 고위 간부가 희생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 JMS 302정(통영정)이 묵호 해역 경비임무를 마치고 부산항으로 귀항하여 제3 부두에 정박한 1949년 5월 20일이었다. 정장이 상륙하고 없는 사이, 북한으로부터 밀파된 부장 김점복 소위가, 510정 부장 서문걸 소위와 다른 동조자 3명을 불러들인 다음, 그들이 공모하여 밤 10시경 기관사들을 무기로 협박하면서 엔진을 가동시켜, 월북을 기도 하였으나, 낌새를 눈치챈 기관장 황명호 병조장 등 6명이 고의로 기관을 고장 나게 만들어, 출항이 불가능 하게 만들고, 당국에 이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월북을 막았다.


 


  라. 휴전 후 우리 해군 함정이 당한 피해


    이 항목의 사건들은 필자가 해군에서 제대한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더우기 휴전이 성립된 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 해군 함정 PCEC-56함(당포함) 북한군 해안포 공격으로 침몰


휴전 후인 1967년 1월 19일이었다. 56함(당포함)은 한국함대 동해경비분대 소속으로 동해 휴전선 근해에서 우리 측 명태잡이 어로 선단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날 갑자기 풀린 날씨 탓인지 오전부터 속초와 대진, 거진 등 동해 북부 어장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200 여 척의 어선들이 분주하게 조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민들은 명태 떼를 쫓아 정신 없이 어로저지선 인근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이 때 56함은 어선들의 월경을 막고 있었는데, 오후 1시 30분 북한 수원단 동쪽 6마일 해상까지 접근한 우리 어선단을 납치 하려고 장전항(금강산 관광을 위해 현대 상선이 광광객을 싣고 들어가던 항구)에서 출항한 북한 해군 초계정 2척이 20 노트의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북한 함정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어선단과 경비정 사이로 56함이 끼어 드는 순간, 북측 해안포대가 불을 뿜었다.


 


    그러자 우리 해군 56함은 북한군 해안포대를 향해 응사 하였으나, 56함의 주포인 3인치 포 1문으로서는 북한 해안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포하는 화력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후 1시 57분, 북한에서 날아온 첫 번째 포탄이 56함 조타실에 명중되었고, 다시 후부 기관실에 적중되자, 가동할 수 있는 엔진 하나로 비틀거리며, 남하하고 있을 때, 남은 엔진마저 피격을 당하여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때 56함을 예인 하기 위해 53함이 접근 하였지만, 2시 25분 경 이미 280여 발의 포탄을 얻어맞아 만신창이 된 56함은 가라앉기 시작 함으로써, 함장은 생존 승조원들에게 퇴함(退艦) 명령을 내림으로 승조원들은 물속에 뛰어들었다. 53함과 65함이 물에 뛰어 든 승조원들을 구조하는 사이, 56함은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56함 승조원 79명 중 실종자 28명을 제외한 51명이 구조되었다. 그렇지만 구조된 자 중 11명이 부상의 정도가 심한 관계로 사망 함으로써 39명의 장병이 56함 피격으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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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안포에 피격 당하여 침몰하고 있는 56함 (당포함)의 최후 모습



    


    2)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북한이 포격을 가함으로 일어난 해전 (제1차 연평해전)


이 사건은 1999년 6월 초, 북한 경비정 6척이 꽃게잡이 어선을 앞세우고,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왔을 때, 우리 해군 함정이 경고를 가하면 퇴각하기를 무려 9일 동안 계속 반복했다. 1999년 6월 7일 다시 연평도 서방 10㎞ 해상을 통해 침범함으로써 우리 해군 함정이 "충돌식 밀어내기" 전술로 저지하기에 이르자, 북한경비정이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선제사격을 가해옴으로, 남북 함정간의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후세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고, 한국 해군은, 충돌식 밀어내기 식으로 대응하였다고 하니 미련한 짓이 아닌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좌경 인사가 집권하고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함정 교전 수칙이 “북한이 선제공격을 가해올 때만 교전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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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기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


    이 교전에서 북한 해군은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경비정 4척이 대파되었으며 북한군 20-30여명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반해 우리 해군은 경비정 몇 척이 경한 상태의 파손을 입었고, 또 해군 7명이 부상 당하였다. 이 충돌로 망신을 당한 북한 해군은 일단 북쪽으로 퇴각한 후, 다시 도발을 해오지 않음으로 당시 상황은 일단 끝이 났다. 이 때 한계선을 무단 침범한 것은 "정전 협정"의 정신과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한 구역을 인정"키로 한 바 있는 "남북 기본합의서"(1992년)에 합의된 사항을 위반한 범법 행위였다. 북한이 이 사건을 일으킨 목적은 대북 포용정책 하에서의 한국 정부의 국방 의지가 어떠한지?, 그리고 북방 한계선을 무시함으로써 정전 협정체제를 무력화 시켜보겠다는 의도와, 또 향후 남북 협상에서 실익을 취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보겠다는 점, 그리고 유고 패전에 따라 위축되어 있는 북한내부 결속을 목적한 긴장 조성용, 마지막으로 꽃게 새우 조기 등 고급 어종이 풍부한 서해 5도 인근 황금어장 확보 등 다목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전쟁에서 북한이 우리 해군과의 교전에서 참패를 당함으로써 "선군 정치"와 "필승 불패"를 선전해 온 그들의 무력함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노출시키게 되었고, 한국 측에서는 북한에 대하여 포용정책을 실시하면서도,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 해군의 전투력이 북한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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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2차 연평 해전이 벌어진 해역



    3) 우리 해군 참수리호가 북한의 포격으로 침몰 됨 (제2차 연평해전)


    연평도 근해는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고기들을 많이 잡을 수 있는 어장의 보고이다. 그래서 제2 함대는 5-6월 꽃게잡이 철을 맞이하면 서해 경계 태세를 곱절로 강화하여, 최전방에는 고속정을 배치하고 그 후방에 초계함과 호위함(1500t)들이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2002년 6월 29일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은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때만 교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1차 연평해전 때처럼 역시 밀어내기 전법을 시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함정에게 선제 포격을 가함으로써 참수리 357호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 때부터 양측 함정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어, 곧 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교전에 합류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진해함은 장착된 전자광학 망원경(EOTS)에 의지하여 적함을 향해 포격을 가하니, 명중되었다는 확인 신호가 떠올랐다. 진해함은 적 함대를 섬멸하기 위해 5인치(76㎜) 함포 3발을 더 발포하였더니, 10시 43분 경 북한 경비정 1척이 화염에 싸이게 되었다. 그러자 북한 경비정은 10시 50분 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함으로써 교전은 25분만에 끝났다. 한편 우리 해군은 피격된 357호와 같은 종류의 함정 358호가 357호를 예인 하였으나 357호는 끝내 침몰함으로써, 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은 애함과 함께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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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되었던 우리 고속정 357호(참수리호)가 인양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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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연평해전 때 전사한 6명에 대한 추모



  


    4) 우리 해군 함정 천안함이 북한이 어뢰로 가격하여 침몰 됨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해군 1천200톤급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북진하는데, 몰래 침투한 북한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하여 침몰되었다. 이로 인하여 승조하고 있던 우리 해군 104명 중 58명은 구조되고, 나머지 46명은 전사하였으며, 천안함 피해사건을 해중에서 조사하던 한주호 준위도 전사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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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고 있을 때의 초계함 772함(천안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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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두 동강이 된 상태로 침몰되었다가 먼저 인양된 천안함의 함수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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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뢰에 피폭되어 전사한 천안함 장병 46명과, 사건 원인 조사 중 전사한 한주호 준위



 


    이에 대한 침몰 원인을 놓고 유언비어와 더불어 많은 억칙들이 나돌고 있었으나, 민군 합동조사단을 국내 10개 전문기관에서 전문가 25명, 군 전문가 22명, 국회 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이 참여하여,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증거물,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의 진술내용, 사체 검안결과, 지진파  공중음파 분석결과, 수중 폭발의 시뮬레이션 결과, 백령도 근해 조류 분석 결과, 수집한 어뢰 부품들의 분석, 북한 함정 동태 정보 등, 모든 것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종합한 후 다음과 같은 점들을 근거로 북한에 의하여 격침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1)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절단 되어 침몰되었고,


      2) 폭발 위치는 가스 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며,


      3) 무기 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어뢰로 확인되었다.


      4) 아울러 지난 5월 4일부터 운영해 온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 5개국의 "다국적 연합 정보 분석 TF"에 의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가) 북한군은 로미오급 잠수함(1,800톤급) 20여척, 상어급 잠수함 (300톤급) 40여척과 연어급(130톤급)을 포함한 소형 잠수정 10여척 등 총 70여척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천안함에게 피해를 가한 동일한 규모의 폭발량(약 200-300kg 규모)을 가진 직주 어뢰와, 음향 및 항적 유도어뢰 등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음도 확인 되었다. (아래 그림과 도표 참조 : 그림-잠수함정이 있는 북한 해군 기지, 도표-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 그림-북한산 직주 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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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군 서해 잠수함 기지


  



구   분


골프- II급


폭스트롯급


로미오급


위스키급


상어급


무게(배수량)


2300톤


1952톤


1390톤


1045톤


275톤


길       이


99m


90m


76m


76m


34m


최대 속도


24km/h


28km/h


24km/h


25km/h


13km/h


항속 거리


7408km


611km


14400km


15756km


2778km


잠수 깊이


300m


296m


150m


150m


150m


무장 능력


어뢰 22발


미사일  3발


어뢰 22발


기뢰 44발


어뢰 14발


기뢰 28발


어뢰 12발


기뢰 20발


어뢰 4발


승무 인원


83명


66명


51명


61명


20명


 



구   분


P-4급


연어급


(MS-29)


유고급


반잠수정


 


무게(배수량)


190톤


130톤


76톤


10.5톤


 


길       이


29m


29m


20m


12.8m


 


최대 속도


20km/h2


18.5km/h


14km/h


85km/h


 


항속 거리


740km


140km


474km


 


잠수 깊이


120m


120m


20m


 


무장 능력


어뢰 2발


폭뢰 8발


어뢰   2발


또는 기뢰 10발


어뢰 2발


어뢰 2발


 


승무 인원


12명


3명


9명


8명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



 


        나) 이와 같은 사실과 사건 발생 해역의 작전 환경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작전 환경 조건에서 운용하는 수중 무기체계는 소형 잠수함정으로 판단된다.


        다) 또 서해의 북한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 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전에 서해 북한 해군 기지를 이탈 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되었다.


        라) 그리고 다른 주변국의 잠수 함정은 모두 자국의 모기지 또는 그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마) 5월 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 이는 각각 5개의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 장치는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 소개 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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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 지역 인근 해저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북한산 어뢰의 잔해품들 (외 다수)



        바)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 번" 이라는 한글 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 방법과도 일치하고 있다. 러시아산 어뢰나 중국산 어뢰는 각기 그들 나라의 언어로 표기하고 있다. 북한산 CHT-02D 어뢰는 음향 항적 및 음향 수동 추적방식을 사용하며 직경이 21인치이고 무게가 1.7톤으로 폭발장약이 250Kg에 달하는 중(重)어뢰이다. (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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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C 772함(천안함)을 폭파하여 침몰 시킨 북한 직주 어뢰



    이러한 모든 관련사실과 비밀자료 분석에 근거하여,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의 결과로 침몰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또한 이상의 증거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어뢰는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되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려진 바 있었다.


  


  마. 치열한 전쟁을 거친 필자


    필자는 6 25 전쟁 당시 705함에 배속되어 매월 한 차례씩 함정에 몸을 싣고 북한 동해안으로 올라가 치열한 전투를 수행한 바 있다. 이 항목에 대하여는 "하와이 기행 #2  (추억 속의 뱃길 7년)"에서 이미 자세하게 언급한 바 있음으로 여기에서는 생략코자 한다.


 


  바. 치열한 전쟁을 겪었음에도 생명을 보존 하였음은 하나님의 은혜


    해군은 서로가 도우면서 각자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할 때, 함정이 지닌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고, 또 적의 공격을 봉쇄 함으로써 타고 있는 모두가 살 수 있게 된다.  그 많은 승무원 중 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맡은 일을 태만히 한다면, 함정이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 당할 수도 있고, 또 적의 포탄에 맞아 깨어질 수도 있다. 또 조직 속에 침투한 적군을 색출해 내지 못하면, 바로 자신이 타고 있는 함정이 북한으로 끌려가는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 승무원은 항상 마음을 같이 하여 성실하게 근무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타고 있는 함정이 전쟁에서 이기느냐, 패하느냐가 달라질 것이다. 일직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교훈하길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 는 그 말이, 바로 해군 군인들에게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나아 가서는 함정이 살기 위해 꼭 지켜야 할 뜻 깊은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전쟁이 계속되고 있은 때는 오늘 날과 같이 화력이 강한 무기도 없었고, 명중률이 높은 성능 좋은 무기가 탑재 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당시 군함의 무장 상태를 오늘 날 군함과 비교해 본다면, 마치 어른과 어린 아이와 같은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필자는 장난감과 같은 소형 함정에 몸을 싣고, 적진으로부터 해안포가 날아오고, 적이 방류한 기뢰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원산, 흥남, 단천, 북청, 성진, 등의 인근 해상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소형 함정을 타고 전투에 임했었다. 내가 먼저 적을 발견하고 함포를 쏘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태만히 하거나 직무를 유기 한다면 타고 있는 승조원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방 직후 북한으로 납치되어 간 함정이나, 북한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함정 가운데는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었거나, 아니면 순간적이지만 방심하였거나, 실수, 태만 또는 직무 유기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함정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침몰 하거나,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에는, 타고 있던 많은 군인들이 한꺼번에 전사 당하거나, 본의 아니게 북한으로 끌려 가기 마련이다. 얼마 전 한국 정치에 입문하려는 사람과, 또 정치인 중 한 사람이 "한국 해군을 해적"이라고 말한 자도 있었고, "북한에서 하는 것은 모두 애국적이고, 남한에서 하는 일은 모두 반역적"이라고 말한 자도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 급에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와 같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고,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당시 필자가 승조하고 있던 함정에 한 사람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오늘의 필자는 존재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해군에 복무하는 7년 동안 최전선을 누비면서, 조국을 수호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위험한 기뢰 바다를 지나기도 했으며, 적 비행기와의 대치도 하였고, 또 포격을 주고 받으면서 작전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주님께서 방패가 되어 지켜 주셨기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고, 또 노년에 이르러서는 사회 복지가 잘 되어 있고,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로 인도하여 편히 쉴 수 있게 인도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보훈처)에서는 필자를 한국 전쟁 참전 유공자로 지정하여, 명예를 선양해 주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하기 그지 없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기에, 작은 입을 벌려,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바이다........... 


    (사진과 동영상은 이해를 돕기 위해 연결 하였습니다)


 


주 : "하와이 기행 #9  (하와이 섬의 활화산)"은 이미 "사랑게시판 제330호"에 올린 바 있습니다. 보시고자 하시는 분은 다음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사랑게시판 제330호 보기 ]


 


      (다음에 계속되는 것은 "하와이 기행 #10 (하와이의 훌러 댄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