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기행 #4 (육로 관광으로 전환)


 


1. 육로 관광의 시발점 Skagway


 


   A. Skagway는 옛 도시


    Skagway의 중심가인 Broadway 거리를 따라 가다 보면, 옛날 Gold Rush 시대인 1890년 말부터 1910년 경에 건축한 옛집들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비어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건물들이 옛날에는 주점과 식당, 그리고 금광과 관계 깊은 사람들이 살던 집, 다시 말하면 모두가 Gold Rush와 관련 깊은 건물들인 것이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시내를 돌아 다니면서 옛집들을 구경하였는데, 그 중 주점으로 사용하던 집들을 보고 생각난 것은, 옛날 이 집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의론도 하고, 협상도 하고, 대립도 하다가, 의견이 상치되면 총을 빼 들고 싸우는 서부 활극이 생각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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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agway 시가 지도


    또 사람들이 걸어가는 보도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옛날 우리가 한국에 살 때, 국민학교(소학교)와 목욕탕 같은 곳에서 나무로 만든 발판이 있었는데, 그와 비슷하게 나무 판자를 이어 만든 곳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집에서는 옛 시대 의상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있는 곳도 있었고, 미국 국립공원 관리단 소속 Klondike Gold Rush 국립 역사 공원에서 옛날 건물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 시킨 건물도 있으니, 그야 말로 Skagway의 거리에서는 옛 도시의 향기가 물씬하게 풍겨 나왔다. 그리고 이 곳에 비어 있는 옛날 건물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금광이 성황을 이룰 때 많은 사람들이 한탕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여왔다가, 호황 시기가 지나가자, 헌신짝 버리듯이 떠나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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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시인 Skagway 항구에 두 척의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


    Gold Rush가 지나간  오늘날의 Skagway는 옛날과는 전혀 다르게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이 관광업으로 변하였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많은 관광 버스가 육로를 통해 들어오고, 또 해상으로는 연 400회 이상의 유람선들이 많은 관광객을 싣고 이곳을 찾아오고 있어, 매우 붐비는 관광 도시로 변하였다. 관광 성수기가 되었을 때는, 많을 때는 하루 다섯 척의 유람선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와 같은 날에는 들어오는 관광객 수가 무려 8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 날은 이곳 인구의 열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몰려 들게 된다는 셈이다. 


  


  B. Skagway의 특별한 사정


    알래스카는 광활한 곳이지만, 인구 밀도는 아주 낮고, 또 날씨가 추워 사람들이 살기에도 불편하고 얼어붙은 땅들도  많이 있는 곳이다. 그런 관계로 사람들은 도시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게 되었고, 도시와 도시와의 거리는 자연 멀어지게 되었으며, 도시와 도시 중간 지역은 자연 사람이 거이 살지 않는 곳이 되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알래스카의 교통 수단은, 같은 도시 내에서는 자동차를 이용하고, 도시와 도시 사이를 왕래할 때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비행기나, 기차를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특히 내수로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Skagway나 Jeneau와 같은 도시는 선박 아니면 비행기를 이용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Skagway만은 유일하게 Klondike Gold Rush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때, 그들이 일터로 나가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넘어 나가는 어려운 실정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노동자 수송 문제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Whitepass와 Yukon을 잇는 철도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그 문제를 기필코 해결해야 된다는 이유 때문에, 험산준령이 가로놓여 있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철도를 놓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도저히 철도가 들어갈 수 없는 Skagway에 철도가 들어가게 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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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pass와 Yukon을 잇는 철도에 사용되던 증기 기관차


    이와 같이 이 세상에는 도저히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 있다.  예를 들면 회교국가와 같은 곳은 복음 전도가 박해나 반대 때문에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만난을 극복하고 그들에게 복음의 씨를 심어 주면, 언젠가는 그 씨가 자라나 멸망으로 가는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된다. 옛날 우리 조상들도 그랫다. 유교 사상에 홈빡 빶어 있었던 까닭에, 처음 기독교가 우리 나라를 찾아 왔을 때, "서양 종교" 니 "예수쟁이"니, 이와 같이 비하하고 반대하면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였고 심지어는 핍박까지 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방의 나라 조선 땅에 복음을 심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충성한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복 받는 오늘의 우리 조국이 되어,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게 된 복 받는 나라가 되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조국 땅에는 기독교를 가리켜 "개독교"라 비하 하면서 복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거기에는 기독교 신자들 중에,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말씀대로 살면 그는 죽지 않고 살 것이고, 받아 들이지 않고 욕하고 비웃고 핍박하는 자들은 결국에 가서는 멸망하고 만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C. 육로 관광을 위해 편성 된 조


    2015년 7월 11일 아침 7시, 필자 일행이 탄 유람선은 Skagway 부두에 계류 하였다. 여행 상품 계약이 약정한 바에 따라, 오전에는 Skagway 시내로 자유롭게 외출하여 구경하다가, 낮 12시가 되면 기차 역에 집결하여 육로 관광으로 전환한다는 통보를 이미 받은 바 있었다. 육로 관광을 위해 편성된 조에는 가이드가 배치되어 있어, 그의 인솔로 육로 관광을 진행하게 된다고 했다. 필자 일행은 Y3C-A조에 편성 되어 있었으며, 가이드는 미국 중부 지방에 사는 Kaylyn Foehring라는 젊은 여성이었다. 각 조의 가이드들은 자기가 책임질 승객들을 쉽게 그리고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조 마다 다른 사양으로 만든 목걸이 명찰을 배부하여 항상 목에 걸게 하였기에, 우리 모두는 여행 기간 내내 그것을 목에 걸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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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지만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는 Skagway 거리


 


 2. Alaska 양대 철도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양대 철도는 Alaska 철도와 Whitepass-Yukon 철도이다. 이 양대 철도에는 각각 아래에 적은 바와 같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으니, 알래스카 여행을 한층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이 양대 철도를 모두 이용해 봐야, 알래스카 여행의 진미를 알게 된다고 한다. 이 양대 철도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알래스카 오지를 운행하면서 안전하고 편리한 여행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A. 유리 기차라고 말하는 Alaska 철도(개요)


    Alaska 철도는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다.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좌석으로 꾸며져 있고, 천정 전부를 유리로 덮어 씌웠기 때문에 유리 기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유리 기차는 Seward와 Fairbanks 구간을 운행하면서, Anchorage, Wasilla, Talkeetna, Denali 국립공원 등지로 많은 관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특히 이 열차는 지붕을 유리로 씌웠기 때문에 열차 안에서 외부를 잘 내다 볼 수 있는 것이 그 특징이고, 또 서비스가 가장 우수하다고 이름난 철도다. 


(Alaska 철도에 대하여는 다음 해당 철도에 대한 것을 언급할 때 상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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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ska 철도의 운행 구간도


 


   B. 험산준령을 넘나드는 Whitepass-Yukon 철도


    Whitepass-Yukon 철도는 Skagway에서 Fraser를 거쳐 Whithorse까지 총 길이 110.4 마일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이 철도는 1890년대 말 경, Klondike Gold Rush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이다. 1900년 7월 29일 개통될 당시에는 증기 기관차를 사용하던 시절이라, 많은 광부와 장비를 실은 열차가 힘에 부치기는 했지만 광부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가파를 경사지를 오르내리면서 광부들이 당하고 있던 어려운 문제들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었다. 그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던 기차가 금광이 폐광된 오늘에 이르러서는 보다 더 힘 좋은 디젤 기관차로 대체 되었기 때문에, 가파를 험산을 거침 없이 오르내리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험준한 산악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묘미도 보여 주고, 또 울창한 나무 사이를 헤치기도 하고, 긴 교량 위를 달리기도 하며, 또 굴을 빠저나가면서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신기함과 아름다운 풍경들을 유감 없이 선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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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pass-Yukon 철도의 시공된 노선 약도


    이 철도는 해발 2865 피트(873 미터)의 높은 곳까지 3.9%의 가파를 경사를 단 20.4 마일이라는 짧은 거리를 거치면서 올라가는 철도이다. 아래 도표는 해발 고도 0인 Skagway를 출발한 기차가 주행을 하면서 얼마나 높게 올라갔는지 그 상관 관계를 나타낸 도표이다.


 





거 리(마일)


지점 이름


해발 고도(피트) 해발고도(미터)
5.8 Denver 402 123
8.8 Buchanan Rock 894 272
11.5 Brudal Veil Falls 1334 407
14.0 Glacier 역 1871 670
17.0 Inspiration Point 2413 735
20.4 White Pass 2865 873

 


    Whitepass-Yukon 철도는 깎아지른 듯한 커브 길로 인하여 넓은 레일을 깔지 못하고 좁은 레일을 깔게 되었다고 한다. 이 철도는 1898년 7월 21일 건설을 시작하여 1900년 7월 29일 완공하였는데, 연 동원 인력은 35000 여명, 450톤의 화약, 그리고 2000만 달러의 자원은 영국이, 공사 설계는 미국이, 그리고 계약 진행은 캐나다가 힘을 모아 만든 산물로, 현재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넘나들며 관광객을 수송하는 유명한 철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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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pass-Yukon 철도의 운행 구간(검은색 점선으로 표시한 것이 철도)


     


3. 철도와 관련 있는 한국의 옛 이야기


    Whitepass-Yukon 철도가 급경사진 정상을 짧은 거리를 지나면서 올라가는 것을 본 필자는 옛날 한국에서 군대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묵호에서 열차로 도계와 영주를 거쳐 다니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생각나는 내용을 여기에 기록하게 되었다. 


 


    필자는 1954년, 함정 근무를 마치고 다시 육상 근무를 하기 위해 묵호경비부로 배속 되었었다. 그 때 사적이거나 공적이든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는, 돈이 적게 드는 철도를 거이 이용하였다. 묵호를 떠난 열차가 도계 지역에 이르면 전진하던 기차가 갑자기 섰다가 후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와 같은 일을 처음 본 필자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시 그 기차는 전진하면서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올라간 기차는 모든 승객을 열차에서 내리게 한 다음 걸어서 올라가라고 했다, 1.1km의 급 경사진 언덕 길을 걸어서 올라가서 위쪽 역에 대기하고 있는 기차를 타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래 쪽에 있는 기차 가운데 객차를 제외한 것만 골라 1.1km의 급 경사진 언덕 위에서 쇠줄로 끌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강원도 장성 도계라고 하면 석탄이 많이 생산되던 광산 지역이다. 그런 관계로 석탄 수송을 위한 운송 수단이 절대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험산준령이 뻗치고 있는 오지 산중으로 도계에서 철암으로 가려면 느릅령(楡峴, 楡嶺)이라는 통리 고개를 꼭 넘어야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해발 고도의 차이가 무려 435m나 되는 그와 같은 산중 벽지에 험한 산을 넘고 철도가 들어갔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으로 특별한 공법을 사용했던 산물인 것이다.


  


    그러면 그 특별한 방법이란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첫 째 심포리역과 통리역 사이는 외부에서 가하는 물리적 힘으로 열차를 목적 장소까지 이동 시키는 방법으로 예를 들면 쇠줄로 끌어 옮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가리켜 강삭철도 방법(Incline) 이라고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열차가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 후퇴를 거듭 하면서, 지그재그로 한 단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하는 방법이다. 이를 가리켜 Switchback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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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 통리 사이의 옛 철도 노선은 도면에서 꼬불꼬불하게 그린 선


  A. 심포리역과 통리역 사이의 강삭철도(Incline) 방법


         사람이 탄 객차는 안전 문제의 이유로 이 방법을 적용하지 않고 화물 차량에만 적용하였다. 그런 관계로 묵호쪽에서 태백으로 가는 승객은 심포리 역으로부터 통리 역까지 1.1km의 급 경사 구간을 걸어서 올라갔고, 태백쪽에서 묵호로 갈 때는 걸어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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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리역에서 통리역쪽으로 올려다 본 강삭철도


    물론 열차는 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었지만, 수요 보다 공급이 턱 없이 부족한 관계로 항상 만원(滿員)으로 운행 되었다. 그리고 좌석제를 시행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처음부터 좌석을 잡지 못하면 몇 시간이 되든 서서 갈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열차가 통리역이나 심포리역에 도착하면, 빨리 다음 역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는 기차에서 좌석을 잡기 위해, 뛰어 오르거나 뛰어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관계로 한 번이라도 이 열차를 타 본 사람들의 입에서는 1.1 km의 급경사 구간을 옮겨가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에, "보리 고개 넘기가 힘 든다고 하지만 그 보다 더 힘든 고개는 통리 고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래서 짐이 있는 사람, 부녀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들과 허약한 사람들에게는 이 언덕길이 고난의 길이 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편법으로 생겨난 것이 짐꾼, 지게꾼이었다. 돈만 주면 지게꾼들이 어린아이와 부녀자, 노인들을 지개 위에 올려 앉게 한 다음, 짊어지고 고개 길을 오르 내리는 진풍경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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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하고 있는 기차에 타기 위해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


  B. 도계역과 통리역 사이의 Switchback


    도계역(해발 245m)과 통리역(680m) 사이는 해발 고도차가 435m나 되었다. 그렇지만 그 거리는 불과 6.3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였다. 그리고 경사율은 무려 69%에 이르고 있었으니, 수평 거리 1,000m에 수직 거리 69m를 올라가야 하는 경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계역(245m)에서 나한정역(315m)까지 해발 고도 70m를 높게 올라간 기차는, 다시 흥전역(349m)까지 1.12km의 거리를 후진으로 약 5분 정도 올라가면서 34m의 고도를 더 높인다. 거기에서 기차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전진으로 심포리역(471m)으로 올라 감으로 고도 122m를 더 높게 올라간다. 심포리역까지 올라간 기차는 위에서 언급한 강상철도 방식으로 쇠줄에 끌려 통리역으로 올라갔었다.  


     


기사 관련 사진


    그럼으로 스윗치빽 방법이란 기차가 "之(한문 글자 갈지자)" 글자 모양처럼 전진 후진을 거듭 하면서 경사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당시는 증기 기관차를 사용했던 관계로,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지만 때로는 힘이 부쳐 진퇴를 거듭하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이 겪기도 했다. 그리고 기차가 험한 언덕길에서 후진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성을 안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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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back을 위한 레일 (위 왼쪽 길은 내려가는 길, 위 오른쪽 길은 올라가는 길) 


 


  C. 현재의 이 구간은?


    1954년. 필자가 이 구간 철도를 자주 이용할 때만 해도, 통리역과 도계역 사이에는 강삭철도 방식과 스윗치백 두 방식이 혼용된 상태로 운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61년 철도 개량 사업 시행으로, 강삭철도 방식을 없애기 위해 통리역과 심포리역 구간에 7.7km의 우회 철로를 만들기 시작하여, 드디어 그 공사가 1963년 5월 30일 준공 됨으로써, 급한 경사 길 1.1km를 빨리 가고자 뛰어 다녀야 하는 어려움은 없어졌다. 그 후 힘 좋은 디젤 기관차가 주종을 이루게 되었고, 또 건설 기술도 극도로 발달 함에 따라, 굴의 길이가 무려 16.24km에 이르는 "솔안 터널"을 뚫었다. 그런데 이 터널은 철로가 산속을 파서 만든 굴을 지나가는 동안 큰 원을 그리면서 선로의 고도를 높여 주는 터널이었다. 이 공사가 2012년 6월 27일 준공 됨에 따라 70년 이상 사용하던 스윗치백 방법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구 시대에 사용하던 철도시설이 폐지되면서 선로 모두를 철거한 바 있었으나, 그 후 그것을 복원하고서는 현재 한국의 열차 관광지로 지정 되어 사람들에게 관람 시키고 있다. 


   


4. 기차로 시작된 육로 관광


     육로 관광을 시작하기 위해 역으로 갈 시간 다가오고 있어, 필자 일행은 시내 구경을 끝내고 기차 역으로 이동해 갔다. 역에는 이미 많은 관관 객들이 모여 있었고, 우리 조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인원 파악을 하면서, 좌석이 지정된 승차권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드디어 기차가 플랫트 홈으로 들어오자 모든 관광객들은 각자 지정된 좌석을 찾아 앉았고, 잠시 후 기차는 기적 소리 울리면서 서서히 Skagway를 등지고 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들의 육로 관광은 막을 올렸는데, 기차는 급경사 진 높은 산을 넘기 위해 언덕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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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agway에서 출발한 기차는 산허리를 구비 구비 돌면서 언덕을 올라가다 


    주위를 돌아 보니 험한 산세가 눈 앞에 보이는데, 그 모습은 마치 1954년 휴가를 얻어 강릉에서 대화를 거쳐 집으로 가려는 묵호 경비부 소속 해군 수병 한 사람이 화물 자동차 짐 위에 올라 앉아 대궐령(大闕嶺) 고개 길을 넘으면서 보던 광경..........지금 Skagway를 떠나 언덕을 넘으려고 올라가는 기차에서 보는 광경, 어쩌면 그렇게도 흡사할까? 창 밖을 내다 보니, 달려가는 기차는 때로는 산 허리를 돌고, 때로는 대궐령의 이흔 아홉 고개와 같은 모퉁이를 돌면서 올라갔고, 때로는 굴을 지나고 다리를 건네면서 마침내 정상 가까운 곳 평지인 국경 검문소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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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agway를 떠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기차


 


    우리들의 인생 길도 이와 같다. 고난을 극복하고 바른 인생 길을 따라가면 성공의 길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가는 길에는 어려움도 있고, 고달픔도 많이 있으며, 반대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가고 있는 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방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가는 길을 절대 멈추지 않고 인내 하면서 꿋꿋하게 가노라면, 그에게는 반드시 승리의 개가를 부를 날이 있다는 것을 꼭 믿고 달려가야 할 것이다.


5. 국경을 넘어 카나다 땅 Whitehorse


    기차에서 내린 우리 모두는 개찰구를 빠져 나와 앞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5대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 되는 관광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필자가 편성된 Y3C-A조에 속한 사람들이 타고 갈 관광 버스를 찾아 승차하려고 버스로 다가갔다. 아내는 휠췌어를 타고 있었고, 필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으니, 승차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관광객들이 우리를 향하여 먼저 올라타라고 양보하는 것이었다. 차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버스 제일 앞 자리 노약자 보호석 자리에 Reserve라는 표지가 놓여 있었는데, 가이드는 우리 부부를 보고 그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릴 때도 제일 먼저 내리게 하였고, 또 하차하면 바로 눈 앞에 휠췌어를 펼쳐주었으니, 참으로 협조해 주신 많은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Fraser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버스는 Klondike Highway(2번)을 타고 Yukon 준주의 주도인 Whitehorse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Carcross 사막도 있었고, 또 해발 700m 정도에 이르는 상당히 높은 지역이지만 길게 펼쳐져 있는 Bennett Lake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많은 호수(Tagish Lake, Tutshi Lake, Shallow Lake)들이 있어 이 지역을 가리켜 South Lakes Area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들을 흔들어대던 버스는 오후 늦게서야 Yukon준주의 주도인 Whitehorse에 도착하여 Westmark라는 호텔 앞에 차를 세운 다음, 피곤한 우리들을 버스에서 풀어주는 것이었다. 배정 받은 객실 261호실로 들어가 보니 유람선을 떠나던 전날 밤, 유람선 복도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복도에 내놓았던 그 짐이 우리 보다 먼저 와서 호텔 방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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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mark Whitehorse Hotel


 


    우리가 탔던 유람선 소속 회사는 Holland America Line이었고, 또 우리를 태워 온 관광 버스 역시 Holland America Tour 소속이었다. 그리고 유숙하게 된 호텔은 Westmark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로, 호텔에서 사용하는 모든 소모품에는 Holland America Line이라는 상표가 붙은 것을 쓰고 있었다. 그 후 전 여행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결 같이 유숙한 호텔은 Westmark, 승차한 관광 버스의 90% 이상이 Holland America Tour라는 회사였다는 점으로 보아, 유람선, 버스, 호텔 모두를 같은 재벌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짐작되나 확인된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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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horse는 캐나다에서 가장 숨 막히는 듯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캐나다 북부지방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며, Yukon 준주의 주도로 인구는 약 26000명 정도이다. 그런데 Yukon 준주의 약 60%의 인구가 주도인 Whitehorse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Whitehorse 주변에는 유명하고 큰 호수들이 주위를 둘러 쌓고 있음으로, 이 도시의 경치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평판 받는 곳이다. 그래서 황야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는 이유로 "황야 도시"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또 Miles Canyon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하이킹을 즐기는 명소 중 하나이고, Emerald Lake는 밝은 파랑과 녹색의 색조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환상적인 언덕과 700km 이상의 길로 된 크로스 컨트리 스키(Cross country ski)를 자랑한다고 하길래, 이 "700km"라는 숫자에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도시 주변에는 65개의 공원과 35개의 관광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 여행을 택하여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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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ald Lake


 


     이 지역의 광광 명물을 든다면 첫째는 야생 동물과 온천을 들겠다. Yukon 야생 동물 보존 지역에 가면 야생 동물을 직접 볼 수 있고, 또 노천 온천을 즐기면서 여독을 풀기도 하며, 오로라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스노우 슈잉 신발을 신고 북극 유목민처럼 눈 덮인 자연을 걷으면서, Whitehorse 지역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허스키(북부 지방에서 개썰매를 끄는 개의 종류)들이 끄는 개 썰매를 타고 Whitehorse 지역의 야생을 구석구석 탐험하며 Yukon 자연의 위엄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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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썰매를 전문적으로 끄는 시베리야 산 개 허스키


 


    또 겨울철에는 민물송어 낚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두꺼운 호수 얼음을 드릴로 깨고 구멍을 내어 낚시를 내려 즐거운 가운데서 낚아올린 송어를,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는 즐거움도 가질 수 있다는 곳이다. 그와 같이 경치 좋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는 하나, 다음 날 새벽 다시 이곳을 떠나기로 되어 있으니, 상상 속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6. 처음으로 금이 발견되자


    Yukon 주로 들어온 개척자들은 1896년 금이 처음으로 발견되자, 금을 수송하기 위해 담을 수 있는 모든 용기들을 다 동원하여 캐낸 금을 담고, Seattle과 San Francisco 등지로 금을 처분하기 위해 처음으로 나갔던 날이 1897년 여름이었기에, Yukon 주에서는 금이 처음으로 발견 되었다는1897년 8월 16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공휴일로 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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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지고 눈 쌓인 산을 넘는 금광 노동자들


    이 Klondike Gold Rush 이후 세계는 이전 세계와 구분될 정도로 바뀌어졌다. 북미 대륙 전역은 물론 유럽 등지에서도 한탕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개척자들이 이곳 Yukon 준주로 몰려들었다. 처음 이들은 가장 가까운 통로인 Whitepass를 집중 공략하다가, 차츰 그 범위를 넓혀 Dyea, Chilkoot Pass 등지를 공략했고, 그 다음에는 장비와 노동자와 물자 등을 수송하기 위한 철도 건설에 힘을 쏟아 마침내 Skagway로부터 높은 산 넘어에 있는 Bennett Lake까지 철로를 놓게 되었다. 그러자 인력과 장비와 물자 등이 철도를 통해 운반되기 시작하여 그 활동이 증대 되자 개발자들은 다시 Yukon 강에 배를 띄워 Klondike강 어구까지 퍼져나간 관계로, Glod Rush 이전까지는 사람이 전혀 살지 않던 Dawson 지역에 급격히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Dawson City인 것이다. 그리하여 증폭된 수송 문제 해결을 위해 Glod Rush 2년 만인 1899년 Dawson City의 인구가 3만 명에 이르자, 급격히 늘어난 수송 문제의 해결을 위해 1900년 Whitepass-Yukon 철도가 Whitehorse까지 연장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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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초창기에 다니던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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