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기행 #5 (폐허처럼 변한 Dawson)


 


1. Whitehorse로부터 Dawson으로


    2015년 7월 12일 아침, 우리를 태운 관광 버스는 Whitehorse를 출발하여 Dawson이라는 곳을 향해 출발하였다. 도대체 Dawson이 어떤 곳이기에 그곳에서 2일씩이나 숙박하도록 계획되어 있는지 아주 궁금하기도 했다. 떠나자 마자 관광 버스 오른편 창밖에는 큰 호수가 보였는데, 그것은 흘러가는 Yukon 강이  Lake Laberge를 통과해 가는 호수라고 한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에는 좌편에 큰 호수가 보였는데 그것은 Fox Lake라는 호수였고, 버스가 더 달려가다 보니 좌편 창밖에 작은 호수가 수도 없이 많이 보이더니, 또 다시 큰 호수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Little Fox Lake라고 한다. Klondike Highway(2번) 고속 도로를 달려가면서 보이는 곳에 때로는 울창한 숲이, 때로는 푸른 들판이 그리고 호수와 강이 번갈라 가면서 보인다는 것은 이 지방에 비가 많이 오고 있다는 것을 쉬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물의 제한을 받는 캘리포니아 주민으로서는 어찌 물의 넉넉함이 부럽지 아니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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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son은 Yukon 준주 중서부에 잇고, Whitehorse는 남부 중앙에 있다.


 


    계속 달려가는 버스가 낮 11시 반이 조금 지나자, 고속도로에서 왼쪽 사이 길로 빠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전 배부된 계획서를 살펴 보니 오늘 점심은 특별히 관광 회사 측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기에, 숲 속에서 점심을 먹게 되리라고 짐작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숲 속에 펼쳐져 있는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관광 버스가 주차하고 있었고, 또 그곳에 있는 간이 식당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숲 속에 마련된 간이 화장실을 다녀온 여행객들은 상을 찌프리고 나온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릴 때 사용하던 재래식 화장실이라 악취도 심하고, 무척 더러웠기 때문이다.  


 


    잠시 자유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간이 식당 앞에 줄을 지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준비되어 있는 음식은 빵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야채들인데, 각자의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가져와서 섞어 먹는 것이니, 비록 고급 식사는 아니지만, "시장에 반찬, 가갈에 감식"이란 옛말처럼 시장하면 좋은 반찬이 되고, 배 고프면 맛 있는 음식이 된다"는 옛말이 틀림 없는 말이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 잠간 동안 자유 시간을 가졌고, 그 후 식당 앞뜰에서 육로 여행을 같이 하게 된 우리 조(Y3C-A) 여행객 전원의 기념 촬영이 있었다. 


 


    주 : 각 관광 버스 가이드들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관광객들이 줄 지어 들어가면, 가이드들이 직접 배식 요원으로 일하는 것을 필자는 목격하였다. 그런 점으로 보아 관광회사에서 직영하는 식당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탄 관광 버스는 잔뜩 찌프린 궂은 날씨 속에서도 Klondike Highway를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달려 Yukon Crossing을 지나고, Minto와, Pelly Crossing 등지를 지나 장장 332 마일의 장거리를 모두 주파하여 오후 6시경  목적한 Dawson 시내 Westmark Inn Dowson에 도착하였다. 필자에게 배정된 150호 객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우리들의 짐이 도착해 있었다. 이번 여행 내내 낮 시간 필요 없는 짐은 지정된 시간까지 호텔 방문 앞에 내 놓으면, 관광 회사 측에서 책임 지고 다음 숙박할 호텔 객실까지 운반해 주니, 힘이 부친 사람으로서는 큰 어려움 없도록 배려해 준 것이 매우 감사할 일 중의 하나였다.


 


2. Dawson을 본 첫 인상


    필자 일행 4명은 여행 계약을 체결할 때,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육로 여행 중에는 식사는 각자가 해결 하겠다는 조건으로 식대 $2000(1인 당 $500 X 4)을 부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식사 문제 해결을 위해 비를 맞으면서 Market를 찾아 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가가 우리가 살고 있는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보다 배 내지 3배 정도 더 비싼 것을 보았다. 모든 용무를 마친 다음, 호텔로 돌아가는데, 비가 많이 내린 탓인지 보도(步道)라고 만들어 놓은 길은 진흙탕이 되어 있고, 또 곳곳에 흙탕물이 넘쳐 나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아내가 타고 있는 휠췌어 바퀴가 돌지를 않음으로, 하는 수 없이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차도로 나가 호텔로 돌아왔다. 시가지의 크기는 한국의 읍 사무소 소재지 정도이고, 자동차의 움직임은 한산하였다. 그리고 집들은 많이 서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확인 되었다. 그러니 옛날에는 번창하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한가한 곳, 폐허에 가까운 촌락 같은 작은 도시로 변하였음을 쉬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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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son 시내 지도


 


3. 폐허처럼 변한 Dawson에서 외출


 


  A. 인구 3만이었던 도시가 2천명인 촌락으로


    1896년 Yukon 지역에서 처음으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처에서 금을 캐겠다는 엄청난 사람들이 속속 Dawson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관계로 불과 몇 년 사이에 보잘 것 없던 촌락이 인구 3 만명에 이르는 큰 도시로 변하여, 북미 Seattle 이북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기 때문에, 드디어 Yukon 준주의 주도의 자리까지 올랐던  Dawson이다. 그러다가 1953년 경부터 알래스카 Nome 등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금광의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 되면서, Dawson 시의 금광은 쇠퇴 일로의 길로 들어가기 시작 하였다. 계속 축소되다가 마침내 준주의 주도의 자리도 Whitehorse로 넘겨주었고, 오늘 날에 이르러서는 남아 있는 인구가 불과 20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촌락으로 전락 하고 말았으니, 현재의 Dawson을 보고 죽은 도시 또는 폐허와 같은 유령 도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현재 도시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옛날 서부 활극에서나 볼 수 있는 초라한 건물들이 나열한 촌락,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페허 처럼 된 고도(옛날 도시)라고 사람들은 말하는 것이다.


 


  B. 캐나다 국립 유적지


    2015년 7월 13일 아침이 되었다. 오전 중에는 시내를 돌면서 고적을 관람하는 자유 시간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비를 맞으면서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적지를 찾아 다녔다. 시내가 원래 좁은 곳이라 거이 모든 유적지가 가까운 곳에 있고, 주로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들은 길게는 100 여년 전, 짧게는 80 여년 전에 지은 건물로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고적 건물로 지정되어 관람료를 받고 입장 시키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이 건물들은 모두가 금광과 관계 있는 것으로, 당시 사람이 살던 집이거나, 주점. 사진 전시장, 박물관, 그리고 장의사 등이었다. 그리고 대개의 고적들이 옛날 금광이 한창일 때 사용하던 물건과 기구 그리고 여러 가지 사진과 설명서 등이 전시 보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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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ondike National Historic Sites of Canada 


  C. 한국인 정서 맞지 않는 이야기


    장의사에서 입수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옛날 폭설이 내리는 혹한 속에서 광산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불의 사고로 죽었는데, 그를 구조하던 광부도 여러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구조 작업을 벌리지 않고, 해동될 때까지 시체를 눈 가운데 그냥 두었다가 해동 후 시체를 수습하여 합동 장례식을 거행했다"는 이야기였다. 


  D. 발가락 칵테일에 대한 이야기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으나, Dawson 시내에는 사람의 발가락을 잘라 절여서 만든 술을 있는데, 그 술을 마시면, 행복을 얻게 된다는 소문을 퍼트려 많은 회원을 모집하는 사우어토 칵테일(Sourtoe Cocktail) 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유래는 살펴 보았더니 다음과 같다고 한다. Gold Rush 때 큰 눈 산 사태가 발생하여 한꺼번에 몇 백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눈 속에 파묻혀 죽었다고 한다.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은 사람을 산 속에서 꺼내와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시 정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고를 내걸었다고 한다. 죽은 사람 찾아서 땅에 묻어 주면 몇 구의 시신을 묻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죽은 사람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을 잘라오면 그 수만큼 보상금을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잘려진 엄지 발가락이 점점 많아졌다고 한다. 


  


    이에 편승하여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 그 발가락을 절여서 만든 술이라면서 이 술을 마시는 사람은 행운이 찾아와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퍼트려 술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칵테일 점을 열었다는 것이다. 지금 Dawson City에 있는 한 호텔의 바 샤워도 쌀룬(Sourdough Saloon)에서는 소금에 절인 사람의 발가락을 샴페인에 넣고, 그 술 한 잔에 $5.00 식 받고 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는데, 술만 파는 것이고, 반드시 발가락에 마시는 사람의 입술이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술만 마시지 않고 발가락을 삼킨다면 상당한 벌금을 물어야 하고, 입술에 닿지 않으면 행운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돈을 벌기 위한 쑈? 비즈니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기에다 발가락 클럽이라는 글럽을 만들어 이 클럽에 가입하고 술을 마시면, 평생 발가락 클럽 회원이 되어, 평생 동안 행운 속에서 살게 된다면서, 회원권 한 장 매입이 $5.00 라고 한다는데, 매일 가입하려는 사람이 줄을 지어 늘어 선다는 것이다.


 


  E. 금광 초기의 불상했던 노동자들


    1896년 금광 개발의 성황을 일어나자,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Yukon 지역으로 몰려왔다. 그런데 그들은 소문만 듣고 한탕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왔던 것임으로, 거이 가족은 고향에 두고 홀로 찾아왔었다. 그들이 돈을 벌어 보겠다고 시작한 금 캐는 일은, 기차도 없었고, 자동차 길도 없었으니, 무거운 관산 장비를 등에 짊어지고 험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가야 일하는 광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하는 일은 땅을 파고 굴을 뚫어야 하는 중노동이었으니 그들의 고통이 오죽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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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넘어 일터로 가고 있는 광산 노동자들


    거기에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 관계로 잘 집이 부족하였다. 그런 관계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천막을 치고 그 속에서 새우 잠을 자야만 했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생긴 신흥 도시라 물가는 왜 그렇게 비싼지? 그리고 북극 가까운 지역의 천막 속에서 기거하고 있으니, 심한 노동 일로 흘린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있지만 목욕도 할 수 없었고, 옷을 제 때 갈아 입을 형편도 아니었으며, 꽁꽁 얼어붙는 한대 지방에서 빨래는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몸에 생긴 이로 어찌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 이것이 그들이 매일 매일 반복하고 있는 생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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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 Rush 바람 타고 몰려온 사람으로 숙소가 부족하여 천막에서 사는 노동자들


    다른 사람 보다 먼저 금을 많이 캐낸 기업은 자금 순환이 잘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급여가 순조롭게 지급 되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급여 체불로 노사 모두 멍이 들었고, 업주 노동자 모두가 빚더미라는 어려움 속에서 허덕일 수 밖에....... 그런 관계로 금을 팔아 들어온 수입은 돈 많은 대금업자에게 먼저 들어갔고, 남은 돈에서 들어간 비용부터 공제한 다음에야, 광산 경영주가 일정한 비율로 챙기고 남은 것에서, 일한 만큼의 임급을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었으니, 그들의 수입이 정말 때 돈을 벌 정도까지 되었을까?.........


 


    피땀 흘리면서 벌어 들인 급여에서 비싼 식대, 비싼 방세, 비싼 생필품을 사고 나면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고 통계와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독신 남자들이 많은 곳이라, 매춘 여성들도 상당 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많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을 흘린 대가를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는 기 현상 속에서, 솟구치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헛된 곳에 그냥 버리는 경우도 성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돈 가진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약자가 희생되는 약육강식의 세상, 배 고픔을 참지 못하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헌 신짝 버리듯이 팽게치던 세상, 소돔 고무라성과 같이 범죄가 난무하던 세상, 이것이 약 100년 전 Gold Rush가 성행할 때의 Yukon 지역에서 일어났던 생활 실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4. 노다지가 도시의 운명을 바꾸었다


  A. 노다지가 나타나자 도시가 생성


    1896년 광맥 탐험가인 George Camac, Skookum Jim Mason, Dawson Charlie 등 세 사람이 Bonanza Creek 근처에서 많은 금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서 Yukon에 Gold Rush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금광 개발에 참여하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Dawson 지역으로 몰려 들게 되자,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경찰대도 조직되었고, 1897년에 이르러서는 Gold Rush라는 더 큰 폭풍까지 몰고 왔다. 세계 곳곳에서 수천 명의 투자자, 탐험가, 노동자들이 북극 지방으로 모이게 되어, 촌락에 불과하였던 조그마한 Dawson을 큰 도시로 바꾸어 놓았고, 신흥 도시 Dawson의 힘이 더욱 강해지면서, 1898년에는 Yukon 지역의 정치적 지위까지 장악하게 만들어, 드디어 Yukon 지역이 Northwest 준주에서 분리 독립되어, 준주의 자리까지 오르게 만드는 큰 위력까지 발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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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금이 발견 되었다는 Bonanza Creek


 


  B. 노다지 생산이 줄자 도시가 쇠퇴 


    1903년 Gold Rush가 한창일 때는 연간 9,500만 달러 이상의 금을 Yukon 강 유역에서 채취하여 수출 함으로써 Yukon주의 호황은 한 동안 지속되었으나, Klondike 강 유역의 급속한 개발은 그리 오래가지를 않았다. 1900년도 중반을 넘기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게 되어, 대부분의 개인 광산업자들은 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떠나게 되었고, 그 대신 대규모의 기계적인 광산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의 개발만이 진행 되었다. 드디어 1921년 경에는 Dawson 시의 인구도 급속히 줄어 겨우 4,157명이 되었다. 그러자 주에서는 금 은 납 아연 구리 석면 석탄 등 다른 광업 개발에 주력하게 되었고,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캐나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힘 입어 일시 광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는 듯했으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쇠퇴하기 시작하여 현재 이르러서는, 이 지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광업이 아닌 관광업으로 바뀌는 자리까지 금광업은 몰락하고 말았다. 물론 지금도 금 매장량이 옛날처럼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부 Yukon 사람들은 사금 채취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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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혼합되어 있는 광물을 땅에서 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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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포함되어 있는 광물체에서 금을 분리하고 있는 사람들


   


  C. 여행 중 있었던 실화 한 토막


    일행 중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분은 미지의 세계를 개발하고 탐구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다. 평소 체력 단련을 위해 지금까지 매일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 몇 시간씩 구보도 하고 또 걷는 운동을 계속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Klondike Gold Rush의 발원지인 Dawson에 도착한 날(2015년 7월 12일)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저녁 먹은 것이 어느 정도 소화도 되었으니, 밖에 나가 운동하고 들어오겠다고 동행한 가족에게 말한 후, 호텔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호텔에서 나온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이곳까지 여행을 왔는데, 옛날 금이 처음 개발된 곳이 이 근처에 있다고 하니, 운동 겸 그곳을 답사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북극 가까운 지역의 여름 밤이라 지척을 구분 못할 정도로 캄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밤인데, 혼자 처음 금광이 개발되었던 곳(Bonanza Creek 인 듯)을 향해 간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어두운 밤 외딴 낯선 길을 혼자 약 3시간 반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은 하였는데, 밤 시간이라 아무 사람도 보이지 않음으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볼 수 없으니, 헛탕만 친 셈이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체력의 한계점을 넘은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졌으니,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 무척 걱정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먼데서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이 보이더니, 잠시 후 그분 옆에 서는 것을 보니 Canada Police의 차였다. 깊은 밤 시간 임으로 경찰관은 신분증을 보자고 요구하였다. 그런데 운동하려고 나왔다가 거기까지 왔으니,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자세히 구두로 밝혔으나, 경찰관의 입장에서는 그 진술을 100% 믿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경찰관에게 호텔까지 태워주면 좋겠다고 사정하였더니, 경찰관의 도움으로 경찰차는 약 30분 정도 달린 끝에 그가 유숙하고 있는 호텔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여행 온 가족은 애간장을 녹이면서 밤 3시가 지난 그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던 차에, 소식이 끊어졌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왔으니, 순식간에 근심이 변하면서 기쁨의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 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밤에 무인지경 길을 혼자 가다가 행여나 곰이라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무사히 돌아왔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자, "곰은 아닌 것 같고 사슴인지 들소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큰 짐승이 움직이는 것은 보았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관에게 "사례 하고 싶다"고 하였더니, 경찰관은 "우리 여왕님께서 매월 꼬박 꼬박 사례해 주신다"는 말만 남기고 경찰관은 돌아갔다고 한다. "야생 동물이 활보하는 지역인데 무사하게 돌아온 것은 분명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이라고 그는 간증하고 있는 것을 필자는 보았다.


 


  D. 금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금, 금이란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구하기 힘든 것이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 받는 것이 바로 금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귀한 금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들고, 금을 입수하기 어려워지면 모였던 사람도 떠나가고 만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바로 Dawson이라는 지역에 적용되어, 금이 나타나자 작은 촌락이 급격하게 큰 도시가 되었다가, 금이 사라지자 폐허와 같은 촌락으로 변한 것을 필자는 이번 여행을 통해 실감나게 보고 느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100년도 안 되는 이 세상에 한시적으로 사는 동안 행복을 누리고자, 거기에 필요한 금을 구하는데는 열을 내면서도, 영원한 내세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금 보다 더 귀한 믿음을 구하는데는 소홀히 하면서 눈길도 주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국이 일본에게 강점 당하여 민족 전체가 억압 당하고 있을 때는, 그래도 복음을 접한 사람들만은 믿음을 금 보다 귀하게 여기면서 살았었다. 그리고 광복 직후에는 분단의 아픔과 6 25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였고, 또 받아 들인 복음을 금 보다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날로 교회가 부흥 되던 것을 필자는 보았었다. 그런데 조국의 산업이 발전되면서 국민 소득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무엇 보다 귀한 믿음을 경히 여기면서, 배금 사상 쪽으로 사람들의 심리가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매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세상이 편해졌고, 아무리 즐거운 환경 속에서 산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누리는 편함과 즐거움은, 육신의 종말이 나를 찾아오면,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누리던 것이라 하더라도, 떠나가고 만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영원한 내세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금 보다 더 귀한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장 슬기로운 사람일 것이다.


 


5. Yukon 강에서 탄 Cruise


    2015년 7월 13일 오후 4시부터 Yukon강에서 운항하는 Cruise를 타고 유람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3시 반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관광객 모두는 호텔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 버스에 올랐다.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에 이르러, 관광객 모두는 버스에서 내려 유람선으로 올라갔다.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강을 따라 물살을 가르면서 앞으로 나가는데, 강 양쪽은 온통 녹색으로 도배되어 있어, 비가 많은 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어떤 곳에는 녹색의 산중 높은 곳 외딴 자리에 외롭게 서 있는 현대식 건물이 보일 때도 있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100년 전에 지은 것 같은 초라한 건물이 보이면서 신구 세대의 문화를 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현대식 2층 건물이 보이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움막집이 보였고, 그리고 강물 위에는 수상 비행기가 곡예를 부리면서 미끄러져 가다가 하늘로 치솟는 것도 보았으며, 조그마한 보트를 젓는 사람이 우리들을 보고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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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on River에서 운항하는 Cruise


 


  [동영상 보기 #1] 


              Yukon River에서 운항하는 유람선 Klondike Spirit      (2분 3초)


 


  [동영상 보기 #2] : 


              History of Yukon River Dawson City Yukon      (3분 2초)


    강물을 따라 한참 동안 올라가던 유람선은 강물 폭이 좀 넓은 곳에 이르더니 뱃머리를 돌려 다시 강물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드디어 오후 6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선착장에 도착 함으로써 오늘의 유람선 여행은 마치게 되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옛날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우리 일행은 어제 낮 비를 맞으면서 시내 관광을 할 때, 옛날 원주민들이 살던 움막 집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목격한 바 있었기에, 오늘 배를 타고 가면서 비록 먼 곳에 있었지만 그것이 바로 움막 집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의 머리 속에는 옛날 우리들의 선조들도 고생하면서 사셨던 것은 틀림 없다. 그렇지만 옛날 이곳 원주민들은 추운 북극 가까운 지역에서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았다니, 참으로 그들은 가엽게 어렵게 살았었구나, 이와 같은 상상 속 깊이 곳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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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이 살던 움막 집


 


6. 원주민들의 생활 실태


 


         [이 6항 자료를 퍼온 곳


 


    오늘 날 통계에 따르면, 북극 가까운 지방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수는 그 지방 인구의 10-16% 정도라고 추정하는데, 대개 그들은 4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1) The Eyak, Tlingit, Haida, Tsimshian을 포함한 북서 연안 인디언들, 


        2) 알류트들, 


        3) 애서배스컨들, 


        4) The Yup'ik, Cup'ik, Inupiaq를 포함한 에스키모들로 분류된다. 


    각 그룹은 모두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 등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들의 생활 실태는 대략 다음과 같다.


 


  A. 북서 연안 인디언


    Tlingit 와 Haida 부족은 오랜 옛날, 빙하로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연결 되어 있을 때, 시베리아로부터 이주한 첫 번째 그룹이라고 한다. 그들은 British Columbia 남동부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살고 있다. 그들은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어로 생활을 하면서 풍부한 수목들을 이용해 주거 시설과 생활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고 긴 통나무 배를 만들어 어로와 교역에 사용하면서 이름을 날리면서 살았다고 한다. 바다에서는 연어와 대구를 잡았고, 또 해초류를 채취하면서, 육지에서는 사슴과 산양을 사냥하며 살았다. 사회 구조는 복잡한 편으로 부족의 분포 비율은 반 반 정도, 그리고 모계 사회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엄마들에 의하여 자녀가 양육되고 교육 되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은 전통적으로 타 부족들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Tlingit 부족과 Haida 부족은 겨울동안 식량과 물 등을 보존하기 위해 해안이나 강가에 널빤지 등으로 집들을 짓고, 50 여명에 이르는 가족들이 집단 거주했다. 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다양한 기념품들과 식기와 바구니, 바닥 매트 등의 생활 도구로 만들어 사용했었다고 한다.


 


  B. 알류트 부족


    알류트들은 약 3,000 년 전에 집단으로 이주해 온 유럽인들, 그 보다 더 앞서 이주한 사람들의 친척이 되는 종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알래스카 남부 및 남서쪽의 1,300 마일에 이르는 알류산 열도에 많이 거주한 관계로 알류트라 불리어진 것이다. 주로 섬에 살게 된 그들은 식량을 연어와 광어, 조개, 바다 사자, 문어, 그리고 사냥한 사슴과 캐리부 등을 찾아 강가와 해안을 돌아 다니면서 살았다. 그런 과계로 그들의 옷가지는 물에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촘촘히 바느질 해서 입었다고 한다. 알류트들은 타원형의 반지하 움막에 나무나 고래 뼈로 서까래를 얹고 풀로 지붕을 덮어 거주하였고, 사다리를 이용해서 지붕에 낸 구멍으로 출입했었다. 거주지는 전형적인 해안 촌으로 배를 이용하기에 편리한 해변을 따라서 삶의 터전를 구축했다. 그리고 알류트들은 짐승의 깃털과 가죽을 이용해 사냥 복장에 꽤 정성을 들였다. 뾰족한 나무 모자와 장식된 바다사자의 수염은 그의 신분과 사냥에서의 용맹스러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C. 애서배스컨


    애서배스컨들은 유목민이면서도 어로 생활을 하는 부족으로 북서 연안 인디언들과 같은 시기에 이주해 왔다. 그들은 주로 Fairbanks 와 Anchorage 등의 알래스카 내륙 및 중앙 지역에 거주했다. 그들은 20-40명 정도의 그룹으로 나뉘어 여름 어로 캠프 및 겨울 사냥 캠프를 지으며 옮겨 다녔다. 모계 사회인 그들은 부족의 연장자가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으며, 후손들에게 전통과 문화를 가르쳤다. 계절적인 식생활 문화로 인해 타 집단과의 교역에 비중을 두고 있었으며, 카누와 개썰매 등의 다양한 이동 수단을 갖고 있었다. 의복은 사슴류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었다.


 


  D. 에스키모


    가장 유명한 에스키모 족은 Yup'ik / Cup'ik 와 Inupiaq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에스키모들은 주로 알래스카의 남쪽부터 북극해까지 연안을 따라 거주해 왔다. 그리고 많은 에스키모들은 아직도 전통 방식에 따라 동물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생존을 위해 식량을 저장하고, 또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원을 활용하면서 생활하면서, 다른 집단들과 물자를 교역을 이루면서 살았다. 부족에 따라 다양한 주거 형태와 건축 재료들이 보이기는 하나, 북쪽으로 갈수록 반지하의 움막과 터널로 된 주거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면서, 가족을 위한 공헌도와 기술에 따라 각기 서열이 정해졌고, 샤머니즘은 건강과 풍요를 위한 중요한 행사였다.


    


    또한 인종적으로 보아 에스키모는 인디언 족과는 달리 몽고 족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로서 어린아이 궁둥이에 있는 푸른 몽고반점, 납작한 코, 높고 넓은 광대뼈, 둥근 얼굴, 검은 머리, 황색 피부 등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들 수 있다. 에스키모 인들이 사는 지역은 그린란드, 캐나다, 알래스카, 그리고 시베리아로 되어 있다.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는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섬으로, 그 섬의 대부분이 북극권에 들어가 있어 극한의 기후를 갖고 있다. 그린란드의 에스키모 인들은 긴 해안을 따라 살고 있는데, 대부분 서해안에 몰려 있고, 동해안 쪽으로는 불과 몇몇 부락이 있을 뿐이다.


    유픽 에스키모는 주로 세인트 로렌스 섬에 모여 살고, 이뉴잇 에스키모는 알래스카 북부부터 캐나다 북극권을 거쳐 덴마크령 그린란드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살고 있다. 캐나다 동북부의 이뉴잇 족은 1994년 4월 누나붓 자치주로 독립해 자치권을 얻었다. 캐나다 전체 영토의 5분의1이나 되는 넓은 땅에 세계에서 가장 큰 원주민 자치주가 등장한 것이다. 


    에스키모는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이 이들을 "Eskimantsik(날고기를 먹는 자)"라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1611년 한 예수회 수도사가 "에스키모"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에스키모"라는 말에 유럽인들은 다른 문화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북극권에서는 날고기를 먹는 것이 당연한 생존 방식이었다. 엄청난 추위 속에서 방금 잡은 포유류의 따뜻한 살코기를 날로 먹지 않으면 곧바로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야채류를 먹고 싶어도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날고기는 비타민을 섭취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기를 익히면 그만큼 비타민이 파괴된다. 고기를 익힐 수 있는 연료의 부족도 문제였다. 사방이 온통 눈과 얼음뿐인 툰드라 지대에서 어떻게 땔감을 구할 수 있겠는가? 사냥감에서 짜낸 기름은 18 시간 이상 지속되는 겨울 긴긴밤의 등화용으로 쓰기에도 모자란다.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뉴잇" 이라고 불러 주기를 원한다. "날고기 먹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보편적인 사람"으로 대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이들은 동양인들을 "잉우알렉" 이라고 부른다. "사람같이 생긴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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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피를 간조하고 잇는 모습 


    고대부터 Yukon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아시아 땅으로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학설에 의하면 고대에는 아시아와 미국 대륙이 이어져 있었다는데, 그 때 그들은 육지를 밟고 이 지역으로 건너왔다고 하며, 정착하기 위해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가 생활하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지역을 만난 것이 바로 Dawson 북쪽에 있는 Old Crow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맘모스, 들소, 말, 카리부 등을 사냥하여, 유콘의 혹독한 기후를 견디면서 정착 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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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의 먹이깜




원주민들의 이동 수단은 개썰매와 보행으로


 


7. Air North 비행기로 미국 땅으로 


    2014년 7월 14일 Dawson 땅의 아침이 왔다. 휴대용 가방 등을 제외한 모든 짐은 8시 전까지 복도에 내어놓고, 다음 관광지로 떠나기 위해 모이는 시간은 9시라는 통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9시 호텔 정문 앞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모든 관광객이 승차하자 버스는 호텔을 뒤로 하고 Dawson Air Port를 향해 출발했다. 10시 정각 Fairbanks를 향해가는 Ait North 특별기 3711편을 타기 위해서다.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 국가 어디이던 휠췌어를 타고 있는 자에 대한 특별 대우가 여기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 됨으로 아내와 필자는 제일 먼저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하늘 높이 떠오랐던 항공기는 드디어 387 마일(이 거리는 육로의 측정 거리이다. 버스를 이동할 경우 9시간 5분이 소요되는 구간)의 전 코-스를 무사히 날아가 목적하던  Fairbanks 공항에 도착하였다. 또 다시 국경을 넘었기에 캐나다로부터 미국으로 입국하는 입국 신고서를 작성 제출하고 공항을 빠져 나오니, 우리들의 짐이 비행기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관광회사 직원들이 그것을 찾아 관광 버스에 옮겨 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작업이 끝나자 관광 버스는 그곳을 떠나, 오늘 밤 우리들이 꿈을 꾸면서 쉴 수 있는 곳 Westmark Inn Fairbanks로 달려왔다. 드디어 필자는 지정된 9층에 있는 객실로 들어가서 피곤을 풀면서 낯선 곳 Fairbanks에 여장을 풀었다. 


 


An Air North 737 takes off from the Whitehorse Airport. The airline is projecting a $1.5 million profit this year after posting operating losses for years.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