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기행 #8 (유리 기차에 몸을 싣고)


1. 알래스카 철도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양대 철도는 Alaska 철도와 Whitepass-Yukon 철도이다. 이 양대 철도에는 각각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음으로 알래스카 여행을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즐기고 싶다면, 양대 철도 모두를 이용해 봐야, Alaska 여행의 진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Alaska 철도는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1층은 식당이고, 2층은 좌석으로 꾸며져 있다. 특히 이 열차는 지붕을 유리로 씌웠기 때문에 열차 안에서 외부를 잘 내다 볼 수 있는 것이 그 특징이고, 또 서비스가 가장 우수하다고 이름난 철도이다. 이 기차는 Seward와 Fairbanks 구간을 운행하면서, Anchorage, Wasilla, Talkeetna, Denali 국립공원 등지로 많은 관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 철도는 남쪽의 Seward와 Whittier가 있는 알래스카 만으로부터 북쪽에 있는 Fairbanks까지 470.3 mi(760km) 구간을 승객 수송과 화물 수송까지 취급하고 있다. 1914년에 설립된 이 알래스카 철도는 연방 정부가 직접 운행하다가, 1985년에 알래스카 주가 매입하여 현재까지 주가 운행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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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ska Railroad Map


 


    알래스카 철도의 역사를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903 : Alaska Central Railway가 Seward 에 첫 번째 철도를 건설.


1907-1910 : 가) 1907년 알래스카 Alaska Central Railway가 파산, 


               나) Alaska Northern Railway Co. 재편성, 


               다) Seward 에서 Kern Creek 까지 철도 확장.


1914 : 미국 국회가 Seward에서 Fairbanks까지 건설과 운영을 위한 기금 조성 동의. 


1915 : Ship Creek을 끼고 Anchorage가 철도 건설 마을로 선정.


1917 : 철도 노동자들의 수가 4,500여 명에 달함.


1940-1943 :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군수 물지 수송, 큰 수익을 올림.


1943 : Whittier행 2개의 터널이 Chugach 산맥 통과 건설, Anchorage 정류장 신설.


1944 : Whittier 두 번째 철도 창구로 개장. 디젤 기관차로 대체 시작. 1966 대체 완성.


1947 : Anchorage와 Fairbanks 사이 품질이 향상된 승객 서비스 개시.


1964 : 지진으로 철도 피해에서 복구.


1985 : 알래스카 철도가 알래스카 주의 재산이 됨.


1993 : 비용 절감을 위해 200개의 노후 된 궤도차 퇴역.


 


2. 여행의 마지막 구간을 유리 기차로


    2015년 7월 17일 Denali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7시 30분까지 짐을 내어놓고, 9시 15분까지 관광 버스에 승차하라는 통보가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9시 15분 전에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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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동안 우리들의 발이었던 Hollancd America Tour사의 버스 중 하나 


    9시 15분이 되자 우리를 태운 버스는 이틀 동안 우리가 묵었던 숩 속에 서 있는 호텔을 뒤로 하고  Anchorage 행 Mckinley Explorer(알래스카 철도=별명: 유리 기차)에 우리들을 태워주기 위해 Denali 국립공원에 있는 기차 정거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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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nali 에 있는 조그마한 기차 정거장


 


    9시 30분 경 정거장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에서 모두 내려 기차 승강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기다리자 우리가 타고 갈 Rail Car 1051호 기차가 도착 하였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보던 기차와는 전혀 그 모습과 차원이 달랐다. 어찌 된 일인지 기차 높이가 굉장히 높을 뿐만이 아니라, 연결된 객차의 수도 많았다. 


     [알래스카 철도 여행에 대한 동영상 보기]   (7분 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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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기차의 외형


    승강장으로 올라온 다음, 접었던 휠췌어를 펴고 아내를 태우고, 통로를 따라 객차 안으로 들어가니, 큰 홀에 많은 탁자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1층은 식당과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이 객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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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기차 1층에 있는 식당


    2층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기둥을 중심으로 해서 뱅뱅 돌아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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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기차 안에 있는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모든 사람들이 올라가기에, 아내가 타고 있는 휠췌어를 접으려고 하였더니, 승무원이 필자 부부를 인도하여 계단 옆에 있는 공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문을 닫은 다음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승강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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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기차 안에 있는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리는 승강기


 


    객실로 들어간 우리 부부는 Y3C-A조가 탈 객차에서 지정된 좌석 21C와 21D 를 찾아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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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이 유리로 만들어진 기차 2층 승객 좌석들


3. 유리 기차(Mckinley Explorer)의 출발


    2015년 7월 17일 오전 9시 45분 우리가 탄 Mckinley Explorer는 Anchorage를 향해 출발하였다. Denali로부터 Anchorage까지의 거리는 233.4 mi(자동차 도로는 265 mi)인데, 승용차로는 약 4시간 반, 버스로는 약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구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탄 기차는 7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계획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과속도 하자 않았고, 또 기차 주변에 짐승이 보인다거나, 구경할 만한 것이 보이면, 관광객의 편의를 최대로 도모하기 위해 서행할 때가 자주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땅에서 고속 도로를 타고 자동차를 운전 하노라면, 차창에 보이는 나무와 풀들은 모두 붉게 탄 모습들만 보았었는데, 이곳은 푸른 나무들이 꽉 우거진 모습이 끊어지지 않으니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실로 전개되는 모든 풍경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느낄 수 있는 귀한 순간들이 계속 되었다.


    


Anchorage Denali Train


 숲이 우거진 사이를 빠져 달려가는 기차


 


    필자가 육로로 전환한 다음, 처음에 탔던 기차는 Skagway에서 출발한 Whitepass-Yukon 철도인데, 이 기차는 험한 산을 넘기 위해 산허리를 구불 구불 돌고 돌면서 굴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면서 언덕 길을 힘들게 올라 가는 기차였다. 그런데 알래스카 철도는 흘러가는 시내 물가를 따라 구불 구불 돌고 돌면서 많은 객차를 달고도 거참 없이 달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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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돌고 돌면서 평지를 달려가는 기차


 


    달려가는 객차 2층 좌석에 앉아 창문을 통해 보이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유리로 만든 지붕을 통하여 보이는 이슬비는 소리도 없이 내리면서 먼 곳의 풍경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고 보여 주고 있으니, 비록 비 오는 날의 여행이지만 짜증스러운 생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평생 처음 갖는 일로 이와 같은 여행은 죽을 때까지 잊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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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용골이 있는 부분을 제외한 곳은 모두 투명 유리로 된 기차


    Denali를 떠난 기차가 목적지인 Anchorage까지 사이에는, 12개의 역을 지나간다. 그렇지만 우리가 탄 기차는 특별 열차인 관계로 도중에 단 한번만 잠간 쉬었을 뿐 계속 달렸다. 워낙 기차의 폼세가 훌륭했고, 소문난 대로 창 밖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이 즐거운 여행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음에 다시 알래스카로 여행하는 경우가 있다면, 또 다시 이 기차를 타고 즐기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필자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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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지붕이 투명체로 되어 있어서 상쾌하기 그지 없다


   


    물론 관광 버스를 타고 갈 때에도 창밖에 이상한 것이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방향을 창 밖으로 고정 시키고는 금방 일어나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창문을 가로 막고 섰던 것처럼, 기차 안에서도 카메라와 캠코더를 든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창을 가로 막고 서 있다. 달려가는 가차 창 밖에는 알래스카의 멋진 풍경들이 철로를 따라 계속 앞으로부터 들어왔다가 뒤로 빠져 나가는데,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열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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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서서 카메라와 켐코더는 쉬지 않고 작동 시키는 승객들


 


4. Anchorage로 가는 철도 연변의 여러 경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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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연변 경관 1 - 강을 따라 달려가는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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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연변 경관 2 - 300 ft 높이에 918 ft 의 Hurricane Ghlch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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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연변 경관 3 - Hurricane Ghlch를 지나가면서 보인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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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연변 경관 4 - 철도 연변에 우거진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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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연변 경관 5 - 호수 옆을 지나는 유리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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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 연변 경관 6 - 평지를 달리는 유리 기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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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 연변 경관 7 - 산을 깎아 만든 철로가 강을 따라 도는 모습 


Denail Park Anchorage Train


철도 연변 경관 8 - 한국의 시골과 흡사


  


Talkeetna Anchorage Train


철도 연변 경관 9 - Anchorage 가까운 곳의 모습


  


5. 여행 종착지 Anchorage


    Denali를 출발한 유리 기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Anchorage 가까이에 이른 것 같았다. 한 줄이던 철로가 두 줄이 되더니 또 얼마를 지나자 여러 줄로 갈라졌고, 또 창가에는 큰 호수가 보이더니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침 9시 45분 Denali 국립공원 역을 출발한 유리 기차는, 장장 7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목적지인 Anchorage 역에 도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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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horage 기차 정거장


 


    이제 종착역인 Anchorage에 도착하였으니, 하루 밤만 묵으면 이번 여행의 모든 순서가 끝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역 앞으로 나오니 우리를 태우기 위해 관광 버스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버스에 올라 타고, 여행 중의 마지막 밤을 보낼 Westmark Anchorage Hotel로 옮겨갔다. 배정 받은 객실 311호실에 여장을 풀고 나니, 호텔 측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손님께서는 내일(18일) 아침 7시 Seattle로 가는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으니, 아침 4시 50분에 깨워 드리겠습니다"라는 연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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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여행 중 마지막 쉬었던 호텔 방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가 가까운 곳에 있는 백화점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Fast Food 점으로 들어가서, 시장한 배를 채우고, 호텔로 돌아와 여행 기간 동안 있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여행도 시작하면 끝남이 있음 같이, 우리 인생도 출생이 있었으니 반드시 종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서, 그에 대한 내용을 기록 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다음 편인 알래스카 기행 #9 (여행 중에 생각난 것)에서 생각했던 내용들을 쓰려고 한다.  


6. 기차 탄 일과 얽혀 있는 추억 속의 이야기


    이번 알래스카와 캐나다 일대를 여행 하는 동안, 처음에는 Skagway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가는 Whitepass-Yukon 철도를 탔고, 그 다음에는 Fairbanks에서 금광으로 들어가는 작업용 기차를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탄적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Denali에서 Anchorage까지 유리 기차라는 별명을 가진 Mckinley Explorer를 타면서 이번 여행을 끝맺게 되었다.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여러 가자 종류의 기차를 타다 보니, 지난 날 필자가 탄 여러 가지 기차들이 추억 속에서 떠 오르기에, 특별히 기억에 떠오르는 것 몇 가지를 더듬으면서 그 때 벌어진 일들을 다음에 기록하는 것이다.


  A. 1946년 7월 4일 태어나서 처음 탄 기차


    1945년 8월 15일 우리 조국이 일본이 채운 쇠사슬에서 풀려나는 뜻 깊은 해방의 날을 맞았었다. 그 때 필자는 국민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는데, 해방이 되자 미 군정청에서 학년 초를 4월로부터 9월로 변경한 관계로, 필자는 이듬 해인 1946년 6월 15일 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찌들렸던 가정 경제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이 좌절 되어, 지게를 짊어지고 농사 일을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가 서울에 있는 사립중학교에 진학 시킨다는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1946년 7월 4일 입학 원서를 손에 들고 중학교 입시를 치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화물 자동차 짐칸에 올라타고 36 km 떨어진 제천 역으로 나가 서울 가는 기차에 올랐는데, 객차라고는 하지만, 화물 칸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라, 시설도 좋지 않았고, 더운 여름인데 콩나물 시루와 같은 곳에 올라 탔으니, 온 몸은 땀 범벅이 되었고, 발도 옮길 수 없는 좁은 틈에서, 해가 넘어갈 무렵 망우리 역에 도착할 때까지 서서 뻗혔다.


 


    타고 가는 기차는 완행 열차인지라 역마다 정차 했다가 출발하니, 기차가 정차할 때와 출발할 때 마다, 미숙한 운전 기술로 많은 사람들은 넘어지는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해질 무렵 종착 역도 아닌 망우리 역에 도착 하였다. 그 이유는 청량리 역과 망우리 역 사이에 있는 철교가 장마로 인하여 위험하다면서, 승객 모두를 망우리 역에서 내려 놓았다. 내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많은 굴을 통과 하면서 석탄 연기로 인하여 얼굴이 흑인처럼 검게 되었으니 기차 타고 가는 여행이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국민학교 졸업으로 학교 공부가 모두 끝날 줄 알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큰 희망을 가지고 탄 기차이고, 또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탄 기차이니, 너무나 신기한 가운데서 솟아 오르는 기쁨이 넘쳤기에, 그 정도의 고통은 고통으로 생각되지를 않았다. 당시 우리 조국의 철도 사정이 이와 같이 어린아이들 장난하는 것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그 때의 모습이, 지금까지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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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우리 조국 땅을 달린 기차로, 그 이름은 "조선 해방자호(朝鮮解放者號)"


 


  B. 1950년 7월 5일 죽령 역에서 무임 승차한 피난 길 기차


    1950년 6월 25일 6 25 전쟁이 일어났다. 38선 전역에서 탱크를 앞 세운 인민군의 급습으로 38선을 지키던 국군은 총 한번 쏘아 보지 못하고 후퇴하게 됨으로써, 전쟁이 일어난 지 열흘도 되지 않은 7월 4일 필자가 살고 있던 영월 땅도 인민군에게 유린 당하고야 말았다. 영월을 점령한 인민군들이 병력 보충을 위해 영월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과 학생들을 잡기 위해 조를 편성하고 수색에 나섰다는 무서운 소식을 듣게 된 필자는, 7월 4일 오후 2시 경 17세의 소년의 몸으로 어머님과 여러 가족들을 뒤로 하고 홀로 남으로 몸을 숨기는 피난 길에 올랐다. 영월 땅을 떠난 필자는 조그마한 봇짐을 짊어지고, 음력 5월 19일의 밝은 달빛을 의지하여 밤이 새도록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충청북도 단양 땅 인근을 지나, 중앙선 철길이 내려다 보이는 죽령 역 가까운 산 위에 이르렀다. 


 


    7월 5일 새벽 6시경, 산에서 내려다 보니 기차 굴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보이고, 또 죽령 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역으로 내려 가 알아보니, 굴에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흑인과 같이 검게 된 것이 보였다. 그 이유는 남행하던 마지막 기차가 동력이 부족하여 죽령 굴 속에서 정차되었기 때문이었다. 1950년 7월 5일 아침 9시경, 죽령 굴 속에 정차 되었던 기차가 빠져 나오자, 역에 기다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 타는 것이었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난민이었고 무임 승차 자이기에, 필자도 무조건 기차에 올라탔다. 드디어 많은 피난민들을 태운 기차는 기적을 울리면서 남쪽을 향해 달려, 풍기, 영주를 거쳐 오후 5시경 안동 역에 이르렀다. 


 


    많은 피난민들이 기차에 올랐기 때문에, 객실 화물칸 할 것 없이, 모두가 콩나물 시루와 같았다. 내려와서 보니 기차 지붕 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차에서 내려 읍내로 나가는데, 승차권을 가진 사람은 여행 자임으로 간단한 검문을 거친 다음 바로 나갈 수 있었으나, 승차권이 없는 사람과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안동경찰서에서 나온 경찰관들로부터 손바닥에 굳은살이 있는지(총기 취급으로 인하여 생긴 굳은살)를 확인하는 등 세밀한 검사를 거친 후, 학교 교실로 인도되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쉬었다가, 다음 날은 경주로. 그 다음 날은 부산으로, 무임 승차한 기차 편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 때 탄 기차는 필자로 하여금 인민군에게 끌려가지 않도록 방패의 역할을 한 기차였으니 고맙기 그지 없는 기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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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지붕 위까지 올라 타고 피란가는 모습


 


  C. 1954년 일본 요코스카 동경 사이를 관광 목적으로 왕복한 기차


    필자가 해군에 복무하고 있을 때인 1954년 봄이었다. 함정 정기 수리 관계로 일본 요코스카(よこすか=橫須賀) 미 해군 기지로 군함을 타고 가서 3개월 여 동안 그 곳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일본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사사로운 상륙이 허가되어, 4명씩 1개조로 팀을 편성하여, 팀 전원이 함께 행동한다는 연대 책임 하에 상륙이 허가 되었다. 


 


    우리 팀은 일본의 수도 도교(東京)를 구경 하기로 합의 함에 따라, 요고스카 쇼센 덴샤(橫須賀 省線 電車) 역에서 전철을 타고 시나가와(しながわ=品川) 역을 거쳐 도교 도성(都城)으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지요다구(ちよだく=千代田區)에 있는 일본 국왕이 사는 규조(宮城)를 구경하였고, 그 다음에는 이름 있는 우에노 공원(うえのこうえん=上野公園), 히비야 공원(ひびやこうえん=日比谷公園), 아사구사 공원(あさくさこうえん=浅草公園)과, 번화하고 화려한 거리라고 이름 있는 긴쟈(ぎんざ=銀座), 그리고 한국 사람들과 인연이 깊다는 와세다(わせだ=早稻田) 대학 등, 여러 곳을 구경하기 위해 쇼센 덴샤(省線 電車)를 이용하여 도교 구석 구석을 돌아 다녔다.


 


    요고스카 쇼센 덴샤 역을 출발한 전차는 시간표에 적혀 있는 시간을 철저히 준수 하면서, 다음 역으로 또 다음 역으로 달려갔고, 역에서 전차가 정차하면 제일 뒤 칸에 달려 있는 객실에 타고 있던 차장이 승객이 타고 내리는 것을 확인한 다음, 호각을 불면, 전차는 바로 문을 닫고 다음 정거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달려가는 전차는 짜여 있는 시간표에 1분 1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준수하면서 운행하고 있었다. 


 


    그 후 약 20년이 지난 후인,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 7.8km가 처음으로 개통 되었다. 일본 도교의 지하철은 1872년에 처음 개통 되었고, 우리 조국 서울의 지하철은 1974년에 개통 되었으니, 일본 보다 100년 정도 뒤에 건설된 수도권 전철이었다. 이처럼 뒤 늦게 개통된 서울의 지하철도, 1분 1초도 어기지 않고 운행하는 것을 본 필자는, 비록 100년 늦게 개통 되었지만, 그 수준은 20년 전 일본이 가지고 있던 수준인 것을 보고 감회가 깊었다. 당시에는 우리 조국의 문화가 일본 보다 2-30년 뒤져 있다고 생각 했었는데, 지금은 도리어 많은 분야에서 일본 보다 앞서 가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 무량 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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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갔을 때(1954) 보다 7년 뒤진 1961년 일본 열도를 달리던 기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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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물자 수송을 위한 기차를 타고 다녔던 일


    이에 대하여는 필자가 쓴 "알래스카 기행 #4 (육로 관광으로 전환)"-"제3항 철도와 관련 있는 한국의 옛 이야기"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은 여기에서 피하려고 한다. 장성 태백지구는 석탄 자원이 풍부한 것이 알려지면서, 지하에서 캐낸 석탄 수송을 위해, 철암선, 태백선, 도계선, 삼척선 등 짧은 철도 지선들이 일찍이는 1940년대부터 시설되어 사용되었다. 지역 특성상 험산 준령을 넘기 위한 철도라 곳에 따라 Incline 방법과 Switchback 방법까지 동원되었던 지역이다. 이 철도는 물자 수송을 위한 철도이지 여객 수송을 위한 목적으로 시설된 철도는 아니었지만, 해방된 우리 나라에서는 그 시설을 사용하여 여객을 수송하다 보니, 급 경사진 1.1km의 감삭 철도(Incline) 구간에 이르면, 여객들은 모두 기차에서 내리게 하여, 급 경사진 길을 뛰게 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었다. 


 


    필자는 1950년대 이 구간을 여행할 때 이 기차를 여러 차례 이용했었다. 사람을 위해 물자가 있는 것이지, 물자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후,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은 조국인지라, 경제적인 기반도 전혀 없었고 기술적인 능력도 없을 때이다. 그렇지만 밀리는 여객 수송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물자 수송용 철도를 여객 수송에 동원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60 여년 전 우리 조국 철도 시설이 이와 같이 취약했었는데, 지금은 그 지역에 있던 Incline 방법과 Switchback 방법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가 하면 불편했던 시설이 모두 개선되어 사람 위주의 철도로 바뀌어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고속철도 건설은 물론, 철도용 차량과 기구의 생산, 그리고 철도에 대한 모든 관리 등 전반 분야를 전산화 하는데 성공하였고, 더 넓은 면에서 보면, 교통 분야 전반적인 면에서, 세계 여러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까지 발전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 2007년 전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 이용한 고속 철도


    2007년 4월 필자 부부는 잠시 짬을 내어 한국을 방문했다. 유교 사상이 꽉 차 있는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의성군 사곡면을 방문하여, 1주일 동안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전도한 적이 있었다. 모든 일을 마친 다음, 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대구로 옮겨 갔다. 물론 필자는 1984년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차를 타고 다녔다. 그렇지만 필자가 타고 다닌 기차 중에서, 가장 좋은 기차를 꼽으라면, 그것은 특급 열차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인천에서 떠나는 비행기 시간도 맞추어야 하고, 또 새로 생긴 고속철도가 어떤 것인지 한 번 타보고 싶기도 하여, 동대구 역으로 가서 고속 철도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동대구 역을 떠난 기차는 293.1 km의 거리를 불과 1시간 4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에, 우리를 태우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 하였으니,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기술이 발전된 것이었다. 필자가 해방 직후 제천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까지 가노라면 하루 종일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발도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콩나물 시루에서 서서 견디어야 하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화물 칸을 개조하여 만든 객차기에 의자에 앉는다 하더라도 의자가 딱딱한 나무로 만든 것이라, 편한 여행은 아니었는데, 고속철도의 의자는 쿳숀이 아주 좋았고, 또 옛 날 기차는 완행 열차라 역마다 다 정차했다가 갔으며, 거기에다 주행 속도까지 느렸고, 또 굴을 지나 갈 때는 석탄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 고생을 감수 하면서 타야 하는 기차였다. 그러나 고속 철도의 환경은 그야 말로 양반 사는 동리 같았다. 고속 철도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더위도 없고, 추위도 없으며, 힘 좋은 디젤 기관차이니, 석탄 타는 냄새도 없을 뿐 아니라, 시속도 250-300 km로 달렸고, 역 마다 다 서지 않고 통과해 가니, 한국의 철도 기술도 이제는 정상급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 하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던 옛날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간단히 여기에 적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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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속 철도


  


    이상에 기록한 사항 외에도 기차를 이용한 적이 많이 있지만, 기차를 이용한 추억의 실 타래 푸는 것은 여기에서 멈추려고 한다.


 


7. Anchorage는 어떤 곳?


    Anchorage는 미국 알래스카 주 남부 중간 지점에 있는 항구 도시로, 주의 상공업과 금융, 문화, 관광의 중심지이며, 알래스카의 가장 큰 도시이자,  알래스카 인구의 40% 이상이 여기에 살고 있다. Anchorage는 전국 도시상(賞)을 두 번씩이나 받았고, 또 1956년, 1965년, 1984/85년, 2002년 국가 시민 연맹으로부터 4번에 걸쳐 전 미국 대표도시 상(像)으로 지명된 영예를 안고 있는 아름답다고 이름난 도시였다. 과연 그런지를 확인하기 위해 거리에 나가 보았더니, 길거리는 모두가 바둑판 눈금 모양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거리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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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는 Anchorage


 


    1914년, 알래스카 땅에 철도 설치 공사가 시작 될 때, 철도 설치 공사 본부지가 Anchorage로 지정되었고, 철도 건설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 항구가 이 곳에 구축 되었다. 그러자 Anchorage의 도시 면모는 크게 발전되면서 틀을 잡기 시작했다. 1920년대 도시의 경제는 철도 주변에 집중되었고, 193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는 항공 운송이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1930년에는 Merrill Field가, 1951년에는 국제 공항이, 그리고 북극권 항공로의 개항 등으로 Anchorage는 비약적으로 발달된 도시이다. 그리고 1940년대에는 Elmendorf Air Force Base와 Richardson 요새가 이 곳에 건설되었으니,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발 돋음 했다. 1968년에는 알래스카 Ptudhoe Bay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오일붐이 일어남으로, 석유 수송을 위한 송유관 건설 등으로 Anchorage는 성장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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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horage 시내 모습


      


    Anchorage는 북위 61° 13′ 59. 52″, 서경 149° 53′ 56. 35″ 일대를 좌표로 하고 있으며, 인구는 30만 명을 약간 상회하고 있고, 전 면적은 5,079 km² 정도이다. 북극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에 비해서는 기후는 비교적 따뜻하여 7월 평균 기온이 13.9도,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10.9도 정도이다. Anchorage는 11월만 되어도 태양이 9시경에 뜨기 시작하다가 12월에는 더 늦어져서 오전 10시 16분에야 해가 뜬다고 한다.


 


8. 집으로 가는 길


    2015년 7월 17일 오후, 우리들의 관광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지금까지 자신이 안내하는 여행은 Anchorage에 도착하면 모두 끝난다"는 말을 한 다음, "그간 협조해 주셨음을 감사한다"는 인사의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모두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로 서로 간에 작별을 나누었다. 


    필자는 18일 아침 5시, 공항으로 출발하는 Shuttle Bus를 타야, 7시 Seattle 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 호텔측에서 아침 4시 50분에 깨워 주겠다는 약속 전화를 이미 받은 바 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호텔 방에 있는 시계의 알람을 4시 50분으로 맞춘 다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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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horage 국제 공항


    18일 새벽 4시 50분, 시계에서 나오는 알람 소리와, 호텔에서 깨워 주기 위해 걸려온 전화 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필자는 짐을 들고 로비로 나갔다. 곧 이어 Shuttle Bus가 도착 하였기에, 그 편으로 Anchorage 공항, Alaska Air Line 터미널까지 가서 차에서 내렸다. 탑승 수속을 마친 다음 비행기에 올라 Seattle을 거쳐, 당일 오후 4시 50분 목적지인 John Wayne 공항에 내림으로 11박 12일의 알래스카 여행의 대 단원의 막을 내렸다. 12일 동안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생활 하였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즐겁게 지나다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다음은 여행 중에 느끼고 생각하게 된 기행문을 끝으로 마감을 하려 합니다. 감사 합니다)


(다음에 계속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