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기행 #9 (여행 중에 생각난 것)


 


1. 여행 중에 느끼고 생각한 사항


    2015년 7월 7일부터 18일까지 12일 동안, 캐나다와 알래스카를 여행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점이 실로 많았다. 그리고 17일 오후 5시 경, 이제 Anchorage 역에 기차가 도착한 후, 하루 밤만 자고 나면 이번 여행이 모두 끝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더 더욱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여행하는 동안 생각하고 느낀 점 등을 지면을 통하여 밝히려는 것이다.


    지난 7월 7일, 사람도 많이 살고, 자동차도 많이 다니며, 또 물도 귀하고, 그와 같은 복잡한 가운데서 살다가 잠시 동안이지만 그 곳을 떠나, 물도 맑고, 공기도 좋으며, 경치도 좋은 곳에서, 세상 것을 다 잊어 버린 가운데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그네 생활 12일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행하는 12일 동안 초음속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 적도 있고, 유람선을 타고 망망한 대평양의 물결도 헤친 적도 있으며, 작은 유람선을 타고 강물에서 즐긴 적도 있었고, 또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철로 주변에 전개되는 아름다운 구경, 그리고는 자동차를 타고 무인지경의 고속 도로를 달리는 등,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여러 곳을 두루 구경 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무사히 지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셨음을 감사 드리는 바이다.


 


2. 인생은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


 


  A. 여행을 마치는 날이 있는 것처럼 인생 길에도 종말이 있다


    지난 12일 동안 캐나다와 알래스카 여러 지역을 여행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는데, 어느덧 예정했던 여행 기간이 모두 끝나 이제는 귀향 길에 오르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의 시작이 있으면 하루의 끝날 때가 있고, 1월 1일 새해 아침을 맞이하였으면 12월 31일 1년의 마지막 날인 세모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우주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날이 되면 없어져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들의 눈 앞에 전개된다고 성경 말씀은 우리들에게 밝혀 주고 있다(요한계시록 21장). 그 뿐만이 아니다, 인생도 출생한 날이 있으니 언제인가는 죽어 본향을 찾아 가는 죽음의 날이 찾아 오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면서(히브리 9장 27절), 인생은 본향을 향해 찾아가는 나그네라고 말씀하고 있다(히브리 11장 13-16절).


 


  B. 호텔이 아무리 좋아도 나그네가 영주할 곳은 아니다


    지난 12일 동안 우리는 북미 서북방 여러 지역을 여행 하였다. 그간 바다 위를 떠돌아 다니는 도시라고 말하는 유람선을 타고, 선내 고급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또 재미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구경하면서 즐기다가, 밤이 되면 깨끗한 객실에서 편히 쉬었다. 그리고 육로 관광에 들어가서는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큰 도시와 이름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보는 특이한 곳을 찾아 구경도 하였고, 또 밤이면 평소에 내가 자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호텔 방에서 편히 쉬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막상 여행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 오자 조금 더 여행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기는 하나, 만약 어떤 분이 필자에게 "아주 이 곳에서 영주하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분명히 "아니오"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이곳은 잠시 동안 즐길 수 있는 곳일 뿐, 영주할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 각자가 오래 오래 마음 놓고 정들이고 살 수 있는 곳은, 정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오손 도손 즐길 수 있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 심령들이 길이길이 살 곳은 우리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이니, 꼭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C. 인생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호텔 방을 전전하는 나그네다


    인생의 일생은 긴 것 같지만 지극히 짧은 것이 인생의 일생이다. 영원한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지극히 짧은 경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일생 동안 이세상에 산다는 


것은, 나그네가 여행을 다니면서 오늘은 Whitehours에 있는 호텔에서 쉬고, 내일은 다시 그곳을 떠나 Dawson에서, 그 다음엔 Fairbanks에서, Denali에서, Anchorage 등지에 있는 여러 호텔을 돌아 다니며 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사람은 세상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오늘은 안동이라는 호텔에서 쉬고, 내일은 영월이라는 호텔에서 쉬고, 또 그 다음은 송탄, 화천, 서울 등지에 있는 여러 지역을 돌아 다니면서 지나다가, 지금은 미국에 있는 Lake Forest에 있는 호텔에서 묵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출생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3만 100일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위에서 언급한 여러 지역의 호텔을 돌아 다니면서 지나온 나그네이다. 그러므로 이번 12일 간의 여행은 바로 그 축소판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다. 그러다가 본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본향을 향해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일생인 것이다.(히브리 11장 13-16절)


 


  D.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


    1920년 대 한국의 유명한 소프라노 성악가로 동경대학 출신 윤심덕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전라도 부호의 아들인 극작가 김우중이라는 동경 유학생을 만나, 연모하며 지내다가 드디어 사랑의 깊은 늪에 빠지고 말았다. 1926년,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처자가 있음으로, 도저히 맺을 수 없는 사랑 임을 비관하고, "사의 찬미"(죽음을 찬양하는 노래) 라는 노래를 남기고는, 일본 しものせき(하관=下關)을 떠나 부산으로 오는 관부 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에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 현해탄(玄海灘)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의 인생관이 어떠하였기에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자살 하였는지?, "사의 찬미"라는 가사를 아래에 적었으니, 읽어 보면 그녀의 인생관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1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를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걸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서름 뿐
       
2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걸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서름 뿐
       
  3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걸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서름 뿐

    


   당시 일본 대판에 있던 일동 축음기 주식회사(日東 蓄音器 株式會社)에서 발행한 윤심덕의 노래집을 보면, 2249-A에는 "사의 찬미"가 실려 있고, 2249-B에는 "부활의 깃붐(기쁨)이란 노래가 실려 있다. 그렇다면 윤심덕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님 부활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 것인가? 아니면 음반을 팔아 먹기 위해 가수의 입장에서 부른 것인가?......, 다른 기록들을 보면 그녀의 부모님은 기독교인이라고 하고, 그녀 역시 기독교계 사립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학창 시절 그녀가 찬송가를 부르면 많은 학생들이 크게 환호했었다는 기록들로 보아, 믿음을 받았던 자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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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이룰 수 없는 잘못된 사랑에는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자살이라는 길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올 바른 신앙을 가지고 영원한 내세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라면 자살로 인하여 사후에 받게 될 영원한 형벌을 어찌 두려워 하지 않고, 그 길을 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그녀는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또 인생관도 바로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 죽으면 그만일걸"이라고 소망 없는 사람임을 피력했던 것이다. 이처럼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에게는 내세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고, 설사 보였다 하더라도 우습게 보이게 되고 또 가볍게 보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막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잘못된 길을 택하여 간 사람이기에, 불상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그리스도 인들, 특히 부모의 자리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들을 "주 안에서 바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실천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신6:4-9. 엡6:1-4, 딤후3:16-17).


   


  E. 또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보는 잘못된 생각은?


    우리 인생들이 영주할 곳은 어디일까? 1960년대 가요계에서 최희준이라는 대중 가요 가수가 "하숙생"이라는 노래를 불러 히트 친 적이 있었다. 


 


  "하숙생"이라는 노래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2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이 노래 가사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이 노래를 즐기면서 부른 많은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떠나온 곳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고 소리 높이 불렀다는 것은, 자신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인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장차 영주할 내세가 어디라고 밝혀주지 아니한 노래를 맹목적으로 즐겨 불렀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삶은 1956년 미국의 팝송 가수 Doris Day가 부른 "퀘 세라 세라"(불어: Que sers sers=한어: 될 대로 되라=영어: Whatever Will Be Will Be)라는 노래처럼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임으로, 지옥에 가든 어디에 가든 상관 없다는 것이니, 그들 역시 소망 없는 헛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F. 성경이 교훈하고 있는 우리들의 본향은?


    그러면 성경은 우리들의 본향이 어디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나라이지, 이 세상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히11:13-16). 본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눈물과 근심과 걱정과 한숨 그리고 죄가 없는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는데, 인간이 범죄 함으로, 그 영주권을 박탈 당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눈물 많고 고통 많고 죄 많은 세상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나그네가 되고 말았다(창세기 2장-3장).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를 믿으면 구원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본향인 천국으로 가야 할 것이다(요한복음 3장 16절)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더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에 합하게 살면서, 아래에 적은 복음성가 가사처럼, 우리들의 환경이 풍랑이 극심한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가 되든, 아무도 없는 쓸쓸한 빈 들이나 사막이 되든 핍박과 환난으로 인하여, 이 몸이 곤한 처지에 이른다 하더라도, 일편단심 열심을 다하여 주의 귀한 복음을 땅끝까지 힘써 전하면서 살아가면, 나그네 인생 길을 마치고 주님 앞에 가게 될 때, 주님께서는 "착하고 실신한 종아, 잘 하였도다"라고 칭찬 하시면서, 천성 문을 활짝 열고 받아 주실 것이니, 그 날까지 인내 하면서 복 되고 참된 삶을 지속하여 유종의 미를 꼭 거두어야 할 것이다.


 


   복음성가 "순례자의 노래"


  




  1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라
     
2 아득한 나의 갈 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 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 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G. 우리 각자의 생애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가. 세상 통계면에서 찾아 보면


    UN이 2008년도에 발표한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상에 기록되어 있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살펴 보았더니, 다음 표와 같다. 그러므로 필자의 현재 나이는 세계 모든 나라 남자들의 평균수명을 이미 넘은 상태인 것이 확인 되었다. 그래서 다시 우리 가정의 족보를 열어보았더니, 필자의 많은 선조들 가운데서 오직 세 분만이 필자의 현재 나이 보다 약간 오래 사셨는데, 세 분 모두 필자의 현재 나이와 근접한 상태(제8대: 85세, 제21대: 84세, 졔27대: 83세)인 것이 확인되었으니, 필자의 종말의 때도 아주 가까이 이르렀음이 분명한 것이다.


 



 

순위


  나         라 남녀 종합 남 자 여 자
      세계 평균 치 67.6 65.4 69.8
  1   일본 82.7 79.0 86.2
  2   홍콩 82.2 79.4 85.1
  26 영국 79.4 77.2 81.6
  27 대한민국 79.4 75.9 82.5
  28 미국 79.2 76.9 81.4
  194 잠비아 45.2 44.6 45.6
  195 짐바브웨 44.1 43.4 44.3
  196 아프가니스탄 43.8 43.9 43.8

  


    나. 성경 말씀을 통해 찾아 보면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시편 90절 9-10절을 보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수명은 70 이고 강건할 경우는 80 이라고 말씀하고서는, 주님의 분노를 일으키게 하면 인간의 평생이 짧아진다는 말씀이니, 인간의 수명 단축은 인간의 범죄와 상관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세월의 흐름은 날아가는 것처럼 신속하게 지나간다고 말씀하고 있으니, 세월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창세기 5장 25-27절 말씀을 보면, 상고 시대에 산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 어떻게 그는 오래 오래 살앗을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처음 상태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였다(창세기 1장). 그런데 사람이 번성 함에 따라 죄가 팽창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이 만들어 내는 공해에 오염 되는 것이 가속화 되어(창세기 3장 17절 참조), 인간의 수명이 점점 단축되어 졌으니, 고대에 산 사람과 오늘 날 사는 사람과는 수명의 길이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전혀 고려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이상 여러 가지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성경적인 면에서도, 필자의 남은 생애는 얼마 남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다. 젊은 이들은 남은 생애가 많다고 방심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이 이 세상에 올 때는 순서에 따라 왔을지라도 갈 때는 그 순서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창세가 5장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는 성경 인물들의 역사를 살펴 보면, 사람의 수명이 모두 다르다. 아비 보다 자식이 먼저 죽은 자도 있고, 또 쌍둥이들이 올 때는 같은 날 왔지만 가는 날은 같지 않다는 것도 보게 된다. 그와 같은 결과가 일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 그와 같은 변수가 필자에게 적용 될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사항이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 밤 나에게 그와 같은 변수가 임하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는 전혀 알 수 없는 사항이다. 그러므로 젊다고 결코 방심 해서도 아니 될 것이고, 그렇다 하여 늙었다고 더 많이 걱정할 사항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라. 그러므로 인생은 누구나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


    누가복음 13장 6-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비유의 말씀이 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하루는 와서 열매를 찾아 보았으나, 열매가 없음으로, 주인은 과수원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 과수원 관리인은 "주인이여 금년 한 해만 유예합시다. 내가 땅을 파고 거름을 줄 터이니, 내년에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 버립시다"라고 건의 하여, 당장 찍어 버림 받게 됨을 면하게 되었다는 비유가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무화과나무처럼 주님으로부터 버려짐을 잠시 동안 유예 받은 인간들임으로, " 나 자신에게는 오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밤에 주님께서 부르신다 하더라도 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또 누가복음 12장 16-21절 말씀을 보면, 거기에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가 기록되어 있다. 풍년이 들어 많은 곡식을 거두어 들인 부자가 "내가 잘 해서 이와 같이 많은 수확을 얻었으니, 더 큰 창고를 짓고 거기에 추수한 곡식을 쌓아두고, 마음껏 즐기자"고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야! 어리석은 인간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내가 도로 찾으면, 그 많은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는 비유의 말씀이 있다. 과연 그렇다. 우리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뜻에 달려 있는 것임으로, 나의 종말이 오늘 밤이 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 심판 때 주님 앞에 어엿이 설 수 있도록, 이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가는 순간까지 쉬지 말고,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이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3, 인생 길에는 역경도 있고 순경도 있다


 


  A. 여행 중에 탄 기차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번 여행 중 필자는, Skagway에서 처음으로 타고 떠난 기차는 Whitepass-Yukon 철도가 있었는데, 이 기차는 험한 언덕 길을 힘들게 올라간 기차였다. 그리고 또 Fairbanks에서 금광으로 들어 갈 때와 나올 때 탄 기차는, 옛날 광산에서 쓰던 작업용 기차로, 이 기차는 창문도 없고, 속도도 제대로 낼 수 없었으며, 또 깨끗하지도 않은 오래 된 기차였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에는 Denali에서 Anchorige를 향해 가는, Mckinley Explorer라는 유리 기차를 탔다. 그런데 이 기차는 깨끗하고, 창문으로 내다 보는 풍경도 아주 좋았고, 또 서비스도 너무나 좋았기에 다시 타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좋은 기차였다. 필자의 일생에도 이와 같이 역경일 때도 있었는가 하면, 순경일 때도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B. 필자가 겪었던 역경 속에서 보낸 날


    필자의 인생 길도 예외 없이 역경의 시기를 많이 거쳤었다. 그리나 지금은 순경의 기차를 타고 즐기면서 평지를 달려가고 있다. 필자가 거친 역경의 시기를 꼽으라면 무엇 보다 일제 강점기 때라고 말하겠다. 필자는 그 때 10대 초반의 소년이었으니, 조부모님이나 부모님들처럼 심한 고통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통 속에서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임석한 일본 고등경찰의 감시 하에 예배를 드렸고,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은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모두 빼앗아 갔으니 먹을 것이 너무나 부족했었다. 그리고 배우기 위해 학교는 나갔으나 공부하는 시간 보다 근로 작업에 참여하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 그리고 해방 직후인 1946년, 그 때는 13살의 어린 소년이 매일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허리가 휘도록 신문을 어깨에 메고, 서울 종로구 적선동 일대 7개 동의 새벽 거리를 뛰어 다니면서 배달을 하고 나서야, 학교에 나가 공부할 수 있었으니 당시 많은 고학생들이 가야 하던 어려운 길을 필자도 달렸던 것이다. 


 


    그리고 6 25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17살의 소년으로 조국 수호를 위해 해군의 일원이 되어, 원산 흥남 성진 북청 단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간성 등지 해역을 돌아다니면서 보낸 세월이 무려 7년이었다. 전쟁 와중에는 불행하게도, 적진을 향한 함포사격 하다가, 함포에서 나오는 굉음에 고막이 파열되는 어려움을 당하였고, 또 아군 함정이 북한이 방류한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 함으로, 56명의 전우 전원이 함정과 함께 수장 된 바로 그 해역을 필자도 무서운 기뢰를 헤치면서 돌아 다녔으니, 이것이 필자가 겪었던 역경 속을 지나온 역경 속의 길이었다.


    


  C. 소년 필자에게 임했던 역경은 너무나 가혹했다


    필자의 소년 시절 나그네 길도, Skagway를 출발한 Whitepass-Yukon 철도가, 급경사진 언덕 길을 올라가기 위해, 꼬불꼬불 산허리를 돌아가면서 힘겹게 올라가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이 닥쳐오는 역경의 풍파를 뚫고 나가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 한다면, 강릉에서 영주를 향해 가는 열차가 느릅령(楡嶺)을 넘기 위해, 지그재그를 그리면서 올라가다가, 마지막 단계인 통리(桶里)와 심포리(深浦里) 구간에 이르러서는 1.1 km의 가파를 언덕 길을 넘을 수 없어, 모든 승객을 내려 놓자, 급 경사 언덕을 뛰어 넘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어려운 길이었다. 


 


    전쟁을 수행할 때는 "언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음으로, 잠도 자지 못하고 거센 풍랑을 헤치면서 물 위를 떠돌아야 하는 철부지 소년이었다. 칠흑 같은 암흑의 해상에서 오직 불빛이라고는 희미하게 비춰오는 달빛 뿐이었다. "지금 부모님도 저 달을 쳐다보고 계시겠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고향 생각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지금 저 달은 부모님이 계시는 영월 땅을 보고 있겠지?, 부모님의 사정을 알고 있는대로 나에게 좀 알려 주렴", 그리고 "그간 그 땅은 몇 차례 적지가 되었다가, 우리 땅이 되기를 거듭했었지?", "그런 가운데서 부모님 형제들은 모두 무사할까?", 이와 같은 향수 속으로 깊이 빠지기도 했다. 


 


    너무나 향수에 빠지다 보니, 작전 명령을 받고 전선으로 가기 위해 진해 항구를 떠날 때는, "내가 다시 살아서 진해 군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진해를 떠난 것이 거듭되고 또 거듭되어, 쌓이고 쌓은 나날이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쌓았던 것이다.


     


  D. 역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작전 해상이라 군함은 등화 관제를 하였기에 함정 안과 밖은 모두 캄캄하였다. 오직 전선 상공에 떠 있는 달 빛만이 우리들과 적 해안을 비춰 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함교(艦橋=Bridge)에서 견시(見視) 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 2등수병 한 사람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달빛에 비추어지고 있는 것을 필자는 목격하였다. 그것을 본 철부지 필자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필자의 생각 속을 파고 들어온 두려움과 처량함, 그리고 외로움 .........,.. 그러자 필자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머리 속에 떠 오르는 노래 가사가 있었으니, 그 노래는 바로 "꿈에 본 내 고향"이라는 노래였다. 


   "꿈에 본 내 고향"이라는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2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던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이 차마 못 잊어

  주 : 이 노래는 6 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한 악극단에서 악극의 주제가로 북한에서 월남한 송달협이라는 가수에 의하여 처음으로 불러진 노래라고 한다. 1951년 전쟁이 일어나자 한정무라는 가수가 다시 부산에서 부르면서 힛트를 치게 되었고, 1954년 도레미 레코드사에서 음반에 담아 냄으로써 북한에서 넘어온 많은 실향민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애창하던 노래이다.  


    필자의 머리 속에 이 노래가 지나가고 있을 때, 성령이 찾아와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말씀이 고막을 때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필자는 흐트러진 정신을 차리면서, "아! 내 맘이 왜 이렇게까지 약해졌나?"를 깨닫는 순간, 학생 시절 많이 부르다가 해군에 입대한 후, 최전선 해상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 마음 속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부르게 된 찬송가, "저 먼 바다 파도 위에", 이 찬송가가 머리 속으로 찾아오면서, 외로웠던 소년에게 위로와 안위를 선물해 주곤 했다. 


    그 때 위로를 주었던 찬송가는 해방 후에 발행된 찬송가 372장으로, 곡은 독일 민요 "로렐라이(Lorelei)" 와 같은 곡이다. 오늘 날 찬송가에는 없는 찬송이다.  


 


[저 먼바다 파도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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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먼 바다 파도 위에 배 젓는 선부는 


그 사나운 바람 불 때 늘 혼자 당하나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2.


저 캄캄함 금광 속에 금 캐는 광부는 


그 말할 수 없는 운명 제 뒤를 따르나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3.


저 참담한 전쟁 중에 나아가는 용사들 


그 비참한 죽음 앞에 맘 서늘하여도



주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4.


저 바다에 행선 할 때 땅 속에 금 캘 때 


저 전쟁에 싸울 때에도 늘 안심 될 것은



 


주 하나님 섬기는 사람 이 세상 지낼 때 


주 저들의 친구 되시니 늘 외롬 없도다



  E. 현재 순경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필자


    소년 시절 역경 속에서 헤매던 필자가 노년에 이르러서는 살기 좋은 부강한 나라 미국에 와서, 신앙 생활하는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믿음 생활 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노년에 이르러 노인성 질병으로 고생들 하고 있지만 필자 부부는 건강하게 지나고 있으며, 그리고 시간을 짜내어 유람선을 타고 휴식을 취하면서 좋은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또 때론 하와이로, 알래스카로, 캐나다 등지를 돌아 다니면서, 낭만적인 알래스카 철도까지 타고 구경 다닐 수 있으니, 이것은 순경에 처한 자 만이 맛 볼 수 있는 행복한 순간 순간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옛말 사자성어(四字成語)에 고진감래(苦盡甘來) 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참고 견디어 내면, 반드시 즐거운 때가 이른다는 말로, 그와 같은 은혜를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특별히 내려주신 선물이니,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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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 역경이든 순경이든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인간 만사 새옹지마(人間 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오래 동안 장문의 글을 읽느라 지루할 것 같아, 우시게 소리 한 마디를 하고 넘어 가겠다. 어떤 청춘남녀 커플이 중국 집에 식사하기 위해 들어가서 벽을 걸려 있는 액자를 보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한문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가씨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뭐라고 써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오빠, 저기 뭐라고 써 있는지 알아? 앞에 두 글자는 모르겠네" 하고 물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두 글자는 흔히 쓰지 않는 글자다 보니 남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자존심도 있고 해서, 무엇이라고 대답할까를 생각하다가, 이 집은 중국 식당이니........., "아 그것, 첫 번째 글자는  짜이고, 두 번째 글자는 짜야", "허? 그러면, 남기지마?, 에이 오빠두, 음식 남기지 말라구?, 그 것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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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이야기는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한 늙은 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늙은 이는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하기를,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늙은 이는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하기를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늙은 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늙은 이는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하기를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땅에 많은 오랑캐가 처 들어와서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하고 말았다. 그러나 늙은 이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졌을 때, 절름발이가 되었기에 전쟁에 나가지를 않음으로 무사했다고 한다. 


   


    인간의 생사화복에 관한 것은 우연에 의하여 닥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무엘 상서 2장 6-8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를 의지하고 나아가면 "고진감래"의 은혜를 주시기 좋아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분명히 역경을 거두시고 순경을 허락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4. 감사합니다 


    부족한 사람이 쓴 보잘 것 없는 글을 끝까지 애독하여 주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