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부제 : 살인마 고재봉 사건 

  

    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301병기 대대장인 이 모(某) 중령(36세)의 가족 5명이 인제군 남면 어논리(於論里) 자택에서 희대의 살인마 고재봉(高在奉=당시 27세)의 도끼에 무참히 참살 당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인간의 탈을 쓴 사람이라면 감히 이런 생각을 꿈에도 가질 수 없으련만 고재봉은 그 일을 유유히 저지른 다음 자취를 감췄으나, 결국 1963년 11월 12일 수사 당국에 체포되어,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다. 수감되어 있는 흉악범 고재봉은 안국선 집사(당시 서리집사= 그 후 칼빈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 예장 한서노회 소속 한길교회에서 시무하다가 현재는 은퇴한 목사님)의 끈질긴 기도와 설득과 노력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드디어 회심한 그도 옥중 전도자가 되어, 같은 형무소에 복역하는 죄수 1800명으로 하여금 주님을 영접하게 만든 다음, 그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웃음을 짖는 얼굴을 보이는 가운데, 사형 집행 사격수의 총탄을 맞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50 여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먼저 사건의 전말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간증 내용을 쉽게 그리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간증문에 앞서 사건의 전말을 먼저 기록한 것이다. 

1. 사건의 전말

 

  가. 사건 현장을 처음 목격한 운전병

    이 중령의 운전병은 평상시처럼 이 대대장의 출근을 위해 지프차를 운전하고서는 이 중령의 집을 찾아갔다. 물론 그 곳은 최 전방 산골 마을인데다 주위에는 7, 8호의 민가가 흩어져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허술한 시골집이었다. 평소 그 집에는 이 중령과 그의 부인(32세), 2남(6세)과 장녀(3세), 그리고 가정부(16세) 등 다섯 식구가 이웃 주민들이 부러워 할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그전 같으면 짚차가 도착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꼬마들이 뛰어나와 맞아주었는데, 그날 따라 너무나 조용했다. 많은 부하를 호령하는 대대장이 살고 있는 집이기에 이렇게까지 조용할 이유가 없음으로, 한편 이상한 예감을 느끼면서 허술한 시골집 대문을 열고 운전병은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병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음에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중령님.”을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기에, 다시 “얘들아”. 역시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 운전병은 방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여는 순간 운전병은 “악!” 소리를 지르면서 놀라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가족이 둔기로 무참히 살해된 시체가 양쪽 방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병은 이것이 꿈인가 싶었다. 도저히 눈앞에 벌어진 일들이 언젠가 만화책에서 보았던 전쟁에 관한 이야기 같았기에, 몽롱한 환각 속에 빠진 것과 같은 착각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앞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었다. 몽롱한 꿈이거나 머나먼 옛날의 전설도 아니었다. 눈앞에 전개된 그대로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나. 비보를 접한 가족 

    이 비보를 접한 부대도 비상이 걸렸고, 밤늦게 연락을 받은 서울에 있는 이 중령의 어머니도 너무나 놀라 졸도까지 하였다. 그리고 큰아버지 댁에서 학교에 다니던 이 중령의 장남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이 속속 지방 신문을 통하여 보도되자, 온 국민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하면서 사실이 아닌 거짓이기를 바랄 정도였다.

 

  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급보를 접한 현지 제10헌병대와 강원도 경찰청은 육군본부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 수사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이 처참한 살인사건이 단순한 살인 강도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전개하면서도, 원한에 의한 살인인지 여부도 병행하여 수사를 진행하였다. 우선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끼가 윗방 캐비넷 속에서 발견 됨에 따라, 범인의 지문 채취와 사건 발생 전후의 동정을 중심으로 면밀하고 다각적인 수사를 전개해 나갔다. 이 중령과 그의 부인은 큰방에서 나란히 엎어진 채, 애들과 가정부는 옆방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어 있었다. 부인은 도끼에 세 번, 가정부는 두 번, 나머지는 한 번씩 사정없이 머리를 찍혀 즉사한 것으로 보였고, 집안에 있는 일부 가구들은 범인이 부쉰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날 낮 11시 어논리 현장에는 군경 합동 수사 본부가 설치되어 제1차 현장 검증을 실시한 결과

     1) 범인은 옆문으로 들어와 전화선을 끊었고,

     2) 윗방에서 잠자는 이 중령과 그의 부인부터 먼저 도끼로 찍어 참살한 다음,

     3) 아랫방으로 건너가 애들과 가정부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고,

     4)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손잡이 자루 길이가 30cm 정도 되는 도끼 하나가 윗방 캐비넷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5)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도끼만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따라 원한이 겹친 살인 강도 사건이라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면서, 전국적인 군경 합동 비상망을 좁혀나갔다.

 

  라. 범행의 윤곽이 점점 드러나다

    사건 당일 이른 아침, 다른 부대에 소속된 오00 병장이 연대장의 심부름으로 아침 일찍 인제 읍내로 가는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도 신병들처럼 궂은일이나 해야 했기에, 불평도 하게 되었고, 또 멀지 않아 제대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 등의 걱정에 빠져 있었다. 그럴 때 트럭이 정차하더니 깨끗한 군복 차림의 병장 하나가 짐칸의 포장을 들추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병장은 그를 향해 “어디가시유?”, “아. 지금 휴가를 가는 중이오”

오병장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자기 생각 속으로 빠질 찰나였다. 갑자기 방금 올라탄 병장이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조금 이상한 점이 감지되었다. 금관이라는 이름의 흔한 담배인데, 담배 개피들이 모두 담배갑 보다 더 높이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오병장은 “혹시 양담배요?” 하고 물었다. “아니 양담배라니 그냥 보통 담배요” “거 참 이상하네!, 어째든 나도 한 개피 얻읍시다”, 오병장은 그로부터 받아든 담배를 보니 보통의 길이였고 다른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현역 육군 중령 가족이 도끼로 살육 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오병장은 수사본부로 나아가 제보하기를, 사건이 나던 날 자신이 타고 가던 트럭에 웬 사병이 매우 수상쩍어 보였다면서, 행동하는 것도 이상했다면서, 자신이야 일이 있어서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휴가 간다는 사람이 그렇게 아침 일찍 나온다는 것이 수상했다고 진술했다. 더구나 그가 소지하고 있었던 담배 갑은 특이했는데, 담배 개피들이 일제히 갑보다 높이 올라와 있었고, 아무래도 그 아래에 무언가를 감추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더라는 제보였다. 그래서 군수사기관에선 없어진 물건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평소 워낙 검소하게 살던 이 중령이라 값나가는 폐물이나 물건들에 대해선 관심없이 수사를 해왔었는데, 그 제보를 받고 조사 해보니 금목걸이 하나와 다이아 반지 한 개가 없어진 것으로 드러났고, 또 군복도 없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수사기관에서는 이 중령의 운전병부터 소환하여 조사해보니, 원한을 살만한 일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 때 운전병은 자신이 수사관들로부터 받는 의심의 눈초리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추측하고 있는 것까지 모두 진술하였는데, 그 중에는 고재봉의 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 내용의 골자는 고재봉이 전에 있던 대대장 박 중령에 의하여 도둑 누명을 쓰고 감방엘 가게 되었고, 그 동안 고재봉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던 관계로 박 중령이 다른 곳으로 승진 전보해 간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제보였다.

 

  마. 용의선상에 오른 고재봉

    사건 발생 3일 만인 22일, 고재봉은 수사 대상자로 올랐다. 박 중령 집에서 무엇인가를 훔친 것으로 인하여, 7개월간 복역한 사실이 있는 고재봉은 사건 전날 현장 근처를 배회한 사실이 있었고, 또 이 중령 집에서 없어진 다이아 반지가 고재봉의 손을 거쳐 홍천읍의 금은방에 팔린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범인을 고재봉으로 단정한 수사본부는 그의 체포를 위해 어마어마한 추격전을 벌였다. 현상금 5만원에 연인원 수천 명의 수사요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수사기관은 고재봉을 찾지 못하고 계속 수사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었다. 

 

    고재봉의 행방이 오리무중에 빠져 있는 1963년 11월 12일, 청계천 5가에서 장사하는 땅콩 장수 앞에 이상한 빵모자를 눌러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배포된 수배자 전단에 올라 있는 사진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라는 표어를 생각하면서 주의 깊게 재확인 하였더니, 분명 간첩은 아니지만 현상금이 붙어 있는 살인범이라는 의심이 있어, 곧바로 수사당국에 신고했던 것이다. 그간 고재봉은 압축되어 오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점과, 또 도피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 2의 범죄꺼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잠임 했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바. 체포된 후 밝혀진 범행

    고재봉은 박 중령이 대대장으로 있을 때, 대대장 사택에서 가사를 돌봐주는 당번으로 뽑혀, 사택에서 이런 저런 궂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을 끝내고 내무반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올 때, 어떤 물건을 훔쳐 들고 나오다가 가정부에게 들켰다. 그것이 누룽지였다는 말도 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는 말도 있으며, 또 애인 만나는데 군화가 낡아 대대장의 군화를 대신 신었다는 말도 있다. 하여간 뭔가를 들고 나오다가 고재봉은 가정부에게 걸렸는데, 이를 본 가정부가 심하게 도둑으로 몰아붙이자, 고재봉은 옆에 있는 도끼를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것 때문에, 박 중령의 지시에 따라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박 중령 집에서 발생한 모든 도난 사건이 모두 고재봉의 소행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됨으로써, 그는 억울한 범죄자가 되어 7개월 동안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창에 살면서 이를 악문 악마가 되어, 출감하면 자신에게 이와 같은 억울한 누명을 씌운 대대장 가족을 모두 다 죽여버리겠다고 벼르면서 형기를 마쳤다는 것이다.

 

    그는 출감한 뒤인 1963년 가을, 원한을 품고 있던 대대장 집 근처에 있는 짚단 속에서 이틀 밤을 새우는 독기를 발휘하며 살인을 준비했다. 1963년 10월19일 새벽 2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 마을로 몰래 들어갔다. 지금까지 이를 갈고 기다렸던 살인을 여기서 멈춘다면 자신은 뭐가 될까? 지난 8개월을 나는 어떻게 보냈는가? 자신의 인생의 최악의 8개월이었다. 난 정말 훔치지 않았지만, 대대장이란 그는 중령이란 계급만 높이 달았지, 조금도 존경할 가치가 없는 놈이기 때문에, 나는 남한산성(육군 형무소)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죄수 신분의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다. 도둑놈의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었으니, 엄청난 폭행과 기합을 감수해야 하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살았다. 난 이제 그곳에서 받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보상 받아야 한다. 내가 행하려는 살인이 정당성이 있든 없든 난 살인을 멈출 수 없다.

 

    초가을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마을 뒤쪽에 있는 군부대 사택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잠시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밤 하늘을 가르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이 중령과 그의 아내, 자녀 둘과 가정부 등 모두 5명이 범인의 도끼에 찍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살인을 끝낸 고쟁봉은 집안 곳곳을 뒤졌다. 뜻밖에도 값나가는 물건은 없었고 검소한 생활이 집안 곳곳에서 느껴졌다. 겨우 장롱을 열어 금목걸이 하나와 반지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을 담배 갑을 열고 담배를 뺀 다음 그 안에 넣고 그 위에 다시 담배개피를 꼽아넣었다. 그런 다음 고재봉은 몸을 씻고 옷을 벗고는 연대장에 집에 있던 군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 이른 시간에 그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 억을하게 희생된 이 중령 가족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 7개월 사이에 대대장이 바뀌었던 것이다. 즉 고재봉이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고재봉이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때 죽은 대대장 이득주 중령과 그 의 아내는 또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6.25 때 한국군이 인민군에 밀려 지리멸렬 후퇴할 때였다. 동부전선에서는 선전했지만 서부전선이 붕괴되면서 후퇴한 6사단 7연대 2대대는 충북 음성 근처로 밀렸을 때, 헐래벌덕 숨이 턱에 닿는 모습으로 달려온 여교사의 신고를 받게 되었다. "이북 군인들이 동락국민학교 교정에 모여 있어요" 인민군들이 동락국민학교에 진을 치는 것을 보고 수 킬로미터의 산길을 달려왔다는 신고였다. 2대대는 모든 화력을 집중해서 동락국민학교에 집결해 있던 인민군을 기습공격 하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가운데 기습공격 당한 인민군은 꼼짝없이 완패 되었다. 이 전투는 그간 패전만 거듭하던 국군의 첫 대승리였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을 내리게 되었고, 이 사연을  소재로 한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도 만들어졌으며, 신고한 여교사에게는 상금과 위로 여행이 내려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 전투를 지휘한 소대장 한 사람은 용감한 여교사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고재봉의 도끼의 희생된 이득주 중령 부부였다.

    (주님을 영접한 후의 변화된 고재봉의 모습들이 아래 간증문에 많이 수록되어 있음으로, 여기에서는 그 부분의 기록들은 생략하였음을 알립니다).

2. 고재봉 사건과 관련 있는 간증

 

    이 간증 수기는 “내가 본 고재봉의 수기”라는 제목으로 안국선 목사님(한길교회)이 기록한 내용 중에서 퍼온 글임.

 

    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서 이덕주 중령 일가족 6명(사건 내용을 살펴보면 5명이 정당한 듯)을 도끼로 몰살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 바 고재봉 사건이다. 각 신문들은 대문짝만한 기사를 냈고, 이 충격적 보도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나는 교회 서리집사로서 대한성서공회의 권서(성경을 전하는 전도인) 일을 하고 있었다. 신문의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옆에 달린 강도를 보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순간 나도 모르게, “주님! 저에게도 힘을 주시옵소서. 세상이 모두 깜짝 놀라는 이 엄청난 강도를 구원하는데 저를 사용해 주소서”. 그 후부터 나는 새벽 기도 때마다 입버릇처럼 기도했다.

 

    “주여! 그 강도를 저에게 맡기시고, 구원 받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되뇌면서 고재봉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살인마 고재봉을 전도하는 일이 꼭 나에게 주어진 사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토록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그도 필시 인간일진대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을 망정 한 자락의 양심 정도는 살아 있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그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길을 알아 보았다. 그러는 중에 서울 구치소의 담당 검찰관의 배려로 그를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집에서부터 구치소로 가는 동안 줄곧 고재봉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으나, 도무지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구치소에 도착한 후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5000"이란 수인번호를 단 죄수가 여덟 명의 간수에게 호위 되어 따라 들어 왔다. “새벽마다 너를 위해 기도해 준 분이시다. 좋은 말씀 많이 듣고 깨닫는 바 있기 바란다”라고 말하면서 검찰관은 나를 고재봉에게 소개했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갑자기 소름이 끼쳤으며, 눈에는 살기가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그도 나의 손을 붙잡았다.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피 묻은 손, 살기가 감도는 차가운 손으로만 알았는데, 그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기 때문이다. 처음 해 보는 교도소 전도였기 때문에 약간 당황한 감을 느끼면서도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기로 마음 먹고 가방에서 성경을 꺼냈다. 

 

    “자, 요한복음 3장 16절을 폅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21절까지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인가 이 말씀에 대한 설교를 해야 할 텐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가 나도 모르게 “형제여!” 하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형제여!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게 됩니다” 하고 외쳤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무슨 말인가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정말 주님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토록 나오지 않던 말들이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불쌍한 죄인을 위하여 나의 입을 사용하신 것이다. 설교를 마치고 불쌍한 죄인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자 고재봉은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가 갑자기 얼굴을 쳐드는 바람에 주위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긴장되었다. 흉악무도한 살인마가 수갑을 푼 채로 나왔으니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 때 제일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구치소장이었다. 구치소장과 고재봉과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구치소장이 고재봉이 수감되어 있는 방을 들여다 보았는데, 살인마 고재봉이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바람에 구치소장의 안경이 깨지면서 질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재봉의 손가락에 의해 안경이 깨지는 순간, 구치소장은 눈알이 달아 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던 다음부터 고재봉의 방 앞으로는 아무도 지나 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간에서 고재봉을 가리켜 "눈깔 파먹는 지옥의 염라대왕" 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장된 얼굴로 “뭐냐?” 라고 묻는 검찰관의 물음에 고재봉은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내려뜨리면서, “검찰관님, 이제 모든 것을 자백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체포된 이후로 고재봉은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였고, 그로 인하여 수사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고재봉이 스스로 이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진술에 의하면, 고재봉은 부대에서 부대장인 박중령의 사택에 자주 사역을 갔다고 한다. 주로 물을 긷거나 장작을 패는 일, 또는 청소를 하는 일과 이것 저것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날도 고재봉은 박중령의 사택으로 가서 청소와 장작을 패는 일 등을 끝내고, 박중령의 서재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시발은 작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견물생심이라고나 할까? 고재봉은 서재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집어 가지고 나왔다. 그 때 이것을 가정부가 본 것이다. 가정부는 길길이 뛰면서 야단을 쳤다. 저번에 박중령 군화도 훔쳐 간 도둑놈이라고 외치며, 고재봉을 몰아붙였다. 졸지에 고재봉은 박중령 집안의 모든 도난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다. 화가 난 고재봉은 순간 옆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까불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재봉은 살인 미수로 7개월 간 육군형무소에 복역하면서, 박중령에 대해 이를 갈았다. 7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고재봉은 원수 박중령을 죽이겠다고 결심을 하고, 예전에 박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 갔다. 그러나 그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박중령이 다른 곳으로 전속을 가고, 그 사택에는 이덕주 중령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와 같은 끔찍한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오로지 박중령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에 사로 잡힌 고재봉은 무작정 박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 가서 도끼를 휘둘렀던 것이다. 이 바람에 어이없게도 박중령이 아닌 이덕주 중령이 가족들과 함께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고재봉은 이러한 전말을 털어 놓으면서,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그 동안 그처럼 묵비권을 행사해 온 것은 수사가 지연되는 동안에 기회를 보아 탈출하여 기어이 박중령을 살해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관이 묻는 모든 질문에 모두 답변하였다. 나는 이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불쌍한 종을 회개하게 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다. 그 후부터 나는 굽히지 않고 고재봉에 대해서 기도하고, 틈만 있으면 면회를 갔다.

 

    사형을 언도 받은 고재봉은 공소를 포기했다. 왜 공소를 포기하였느냐는 질문에, “또 다시 공판장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시 공판장에 선다는 것은 한 마디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공소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왜 그라고 해서 삶에 대한 애착심이 없을까 마는 그가 공소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같은 놈은 빨리 죽어야 합니다. 제가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저에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매일 제가 받아 먹는 4등급의 급식도 제 마음 같아서는 저 담 밖에서 배를 곯고 있는 거지들에게 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이 공기 한 줌마저도 저 같은 쓰레기에게는 차마 아까운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후에도 나는 자주 면회를 갔다. 하루는 일찍 면회를 갔으나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하루 종일 떨고 있어야만 했다. 연말이 가까운 겨울이라고 날씨는 혹독할 정도로 추웠다. 면회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에야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재봉!”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대답했다. “고재봉 씨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이렇게 시작하는 간수의 질문은 상당히 번거롭게 계속되었다. 고향은 어디이며, 나이는 몇이며, 부대에서 함께 있었냐는 등등, 아마 내가 혹시 공범이라도 되지 않나 하고 심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꾹 참고 끝까지 간수의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을 하였다. 질문이 다 끝나니 간수는 “면회 거절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항의 하였다. 그러자 간수는 고재봉이 면회를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다음에 오기로 하고 준비해 간 포켓용 신약전서 한 권을 간수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좀 전해 주십시오” 간수는 성경을 받더니, “여기에 아무 것도 안 씌어 있지요?” 하면서 이리 저리 뒤적거려 보았다. 나는 태연하게 간수를 보면서 아무 것도 안 썼으니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신약전서는 곧 고재봉의 손에 전해졌다. 독방에 홀로 있던 고재봉은 심심하면 성경책을 할 일 없이 뒤적거리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까지 읽던 고재봉이 생각했다. “아니, 이 구절은 요전에 왔던 어떤 목사님이 읽어 준 말이 아니냐!” 고재봉은 약간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계속 읽어 내려 갔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까지 읽고 나서 또 생각했다. "맞다. 그때 그 목사가 나에게 읽어 준 바로 그 말씀이다. 그 때 그 목사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너도 나도 모두 죄인이고, 세상 사람 다 죄인이고, 예수 십자가 한쪽 편 강도 … 너도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정말이긴 정말인 모양이구나 …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는 그 때부터 신약전서를 읽기 시작했다. 성경의 글씨들이 차츰 살아 있는 말씀으로 고재봉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은 결과, 그는 거절했던 면담을 청했고, 내가 근무하는 대한성서공회로 연락이 왔다. 나는 기대를 안고 다시 구치소로 향했다. 일반 면회와는 달리 시간 제한이 없이 자유스럽게 만난다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고재봉은 나를 보자 대뜸 “지난 번에 면회를 거절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며 우물 쭈물 하고 있다가 “저 지난번에 책을 드렸는데 받아 보았습니까?” 하고 서두를 꺼냈다. “예! 이것 말씀이시지요? 잘 받았습니다” 고재봉은 바지 주머니에서 성경을 꺼내었다. 나는 반색을 하면서 물었다. “그 책 몇 장이나 읽어 보셨나요?” 그러자 고재봉은 우물 쭈물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한 다섯 번 쯤...” 나는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짧은 동안에 다섯 번이나 읽었다니. 이것이야 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저 이것 말고 큰 책 있지요?” “이거 말이오? 지난 번에 드린 것은 신약전서이고, 이 큰 책은 신약과 구약을 합본한 성경전서이지요. 내가 다시 사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성경과 찬송가를 사서 고재봉에게 건네 주었다. 고재봉은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 하였다. 

 

    고재봉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읽었다. 시간이 이처럼 아까운 것인지를 새삼 느낀 것이다. 급식을 갖다 주어도, 고재봉은 성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읽던 곳을 끝까지 읽은 연후에 밥을 바라 보았고, 밥 먹는 것보다도 성경을 더 좋아했다고 하니, 고재봉의 바뀐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내가 면회를 갈 때마다 고재봉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 성경이 얼마나 귀한 책인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진작 이 책을 보았더라면 아마 제 인생도 변했을 것입니다” 하고 감격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새벽이면 단정히 일어나 앉아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호로 하여 찬송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고재봉의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도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나에게 예수를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 아니냐! 교회가, 교회가…” 고재봉은 안타까운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자기 자신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큰 힘에 이끌려서 무어라고 씨부렁거리듯 한참을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체험을 하게 된 고재봉은 깜짝 놀랐다. 일본 말도 아니요 중국 말도 아닌, 그렇다고 미국 말이나 우리 한국 말은 더 더욱 아닌 이상한 말들이 자기의 입을 통하여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한 동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퍽 포근하고, 기쁨이 몸 전체를 감싸는 것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또 이런 체험도 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며 마치 고압선에 감전된 것처럼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 몸이 마비된 듯 이성을 잃을 뻔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힘이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을 운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자기 자신의 생각까지도 모두 누군가가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온 몸이 부들 부들 떨렸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차츰 어떤 새로운 힘이 자신 속에 파고 드는 것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새로운 힘이 그의 내부에서 솟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그 목사님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거다” 순간 고재봉의 얼굴에는 끝없는 행복감과 기쁨이 넘쳐 흘렀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고재봉은 이렇게 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나기 시작했다. 고재봉은 자기의 심경 변화와 전도의 목적을 교무과에 알렸다. 구치소의 배려로 고재봉은 드디어 다른 방으로 이감된 것이다. 감방마다 자상실장, 감방장 같은 계급이 있고, 신입생에게는 신고식을 갖게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법적일 수가 없으며, 죄수들의 비밀리에 그렇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 놓은 것이다. 신입생의 신고식은 옷을 벗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발가 벗겨진 채로 거꾸로 매달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했다. 그 때 만약 신입생이 반항을 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벌칙이 주어지거나, 즉석 심판이 행해져서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신입생 신고식에서 또 한 가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 신입생의 보호자를 통하여 사식과 간식을 들여 보내게 하여 한 동안 포식을 하는 일이다. 

    고재봉이 들어 왔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도 신고할 기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자상은 드디어 호통을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랬더니 "5000"번을 달고 있는 살인강도 고재봉이가 아닌가? 자상은 슬그머니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고재봉의 행동을 살펴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묵상을 하고 있던 고재봉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성경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자세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피로를 느낄 지경이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고재봉이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고재봉은 찬송이 끝나갈 무렵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 보고만 있었다. 저렇게 맑은 눈빛은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을까? 고재봉이 오면서부터 이 방 안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시끄러움이란 찾아 볼 수 없었다. 새벽녘이 되면 으레히 모두 일어나 교회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신호로 찬송을 불렀다. 찬송이 끝나면 고재봉은 성경을 펼쳐 들고 큰 소리로 읽곤 하였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가 이 방안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으며, 돌아 가면서 성경 퀴즈도 하게 되었다.

 

    고재봉의 성경 봉독과 전도의 여파는 철창을 타고 옆 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에는 교도소 안이 온통 찬송가 소리에 묻히게 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이 곳 서울 구치소에 강하게 역사하신 것이다. 서울 구치소 측은 고재봉을 마치 무슨 전도사처럼 생각하였다. 고재봉은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고재봉은 틈만 있으면 기도를 하였다. 그의 눈물의 기도는 확실히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예수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고재봉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차츰 성경에 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으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 나기 시작했다. 

    그의 사형 일자가 가까워 옴에 따라, 더욱 자주 면회를 갔다. 하루는 고재봉이 이런 말을 했다. “전도사님! 나 어제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재봉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소리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어디선가 '재봉아' 이 밧줄을 받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위를 보니 밧줄은 보이지 않고 웬 거미줄 같은 것이 한 가닥 있었는데 그 거미줄을 꽉 잡으니 끊어지지 않고 동동 매달려서 올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올라 갈수록 깜깜한 암흑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이상한 아우성이 들리고 해골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것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옆의 아저씨에게 물으니 그는 여기에 온지가 꼭 3년째 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못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밥을 못 먹으니 죽어야 할 텐데 아무리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바로 아주머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교회 종소리가 나면 늘 교회에 가면서도 자기한테는 한 번도 교회에 가자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어떤 때는 가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그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병이 들어 이제나마 교회에 가려고 했으나, 그 아주머니가 텃세를 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을 때 오지 않고 있다가 늙고 병든 후에야 왜 오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염치로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느냐고 하면서, 우리 교회가 무슨 송장 치워 주는 곳 인줄 아느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억지로라도 갔더라면 이 곳으로 온 것 만큼은 면했을 텐데, 결국 용기가 없어서 교회에 가지 못하여 여기에 오게 된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눈이 부시고 화려한 가운데 공기가 상쾌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아름답게 흘러 내리는 생명수 물가에는 과일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고, 황금 길 저 멀리 열두 진주대문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옆에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지금도 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못 박혔던 못자국을 어루만지며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주위에는 천군 천사들이 같이 화답하고, 꽃들이 사방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 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 좀 해몽해 주세요”, 나는 고재봉에게 그것은 참으로 성령이 임하사 형제에게 천당과 지옥이 있음을 증거해 준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거미 줄 같은 밧줄은 주님께서 내려 주신 생명 줄이니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얼마 후 면회를 갔다. 그 날이 마지막 면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약간 착잡했다. 다음 날이 주일이요, 월요일에는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 고재봉은 평소와 다름 없는 표정이었다. 그 날 새벽에 그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재봉아! 너는 56일이면 죽는다”. 준엄하게 들려 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었다는 것이었다. “전도사님, 성경에는 날짜를 어떻게 풀이합니까?” 고재봉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제여! 그것은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직 아버지만 그 날과 기한을 아신다고 하셨는데, 어찌 내가 성경의 날짜를 풀이합니까?” 그랬더니 고재봉은 약간 누그러지는 기색을 보이며, “안전도사님을 만난지도 56일이 지났고, 성령의 체험을 받은 날도 지났고, 세례 받은 날도 지났으니, 이제부터 56일도 아닐 것이요, 이제부터 내 집행 날짜가 길면 100일 정도일 것이요 짧으면 2, 3일 밖에 안될 텐데...” 하며 힘없이 55, 56일 하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혹시 56시간?” 이 말을 들은 나와 간수는 깜짝 놀랐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요” 간수가 나직하게 위로해 주었다. 나는 그를 위하여 무엇인가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도 미련이 많습니까? 그 문제에서 아직도 헤어 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늘 죽는다, 죽는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죽고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있는 것인데 왜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 합니까?” 고재봉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듣고 있었다. “형제여! 내가 예전에 한 말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대답해 주시오” 고재봉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서 멍하니 나를 쳐다 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박중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나요?” “전도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됐어요. 이제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은 없겠지요?” 고재봉은 나의 팔을 꽉 잡았다. “오늘은 시간도 많이 갔고 하니, 이만하지요” 간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간수는 사형 집행일이 언제인지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드디어 붙잡은 손을 놓고 떨어졌다. 한 발짝, 두 발짝 물러 서며 자꾸만 서로를 쳐다 보았다. 이윽고 고재봉은 문 앞까지 갔다. 그리고 문을 막 나서려다가 갑자기 획 돌아 섰다. “전도사님!” 힘 있는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전도사님, 용기를 내세요! 천당에 가서 다시 만나요!” 그가 오히려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 이후로 나는 고재봉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가 없었다. 

    집행 날이 되었다. 물론 고재봉은 그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다. 평상 시와 다름없이 고재봉은 새벽에 일어 나서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 평상 시와 마찬가지로 방안의 모든 사람들을 차례로 붙잡고 위로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격려의 말을 건넬 때마다 같은 방의 일동은 한결같이 고재봉에게 감사의 뜻을 말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앉아서 성경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고재봉! 전방” 전방이란 방은 옮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고재봉은 이미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고재봉은 마치 면회 온 사람을 만나러 갈 때와 똑 같은 표정으로 뚜벅 뚜벅 복도를 걸어갔다. 철장 안에서 “고형!”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고재봉은 철장 앞에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 가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격려를 해 주었다. “예수 잘 믿어! 나가서 교회 꼭 다니고...” “고형. 잘 가요”. 구치소 안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평소에 가끔 재판정이나 검찰청에 갈 때 타고 갔던 차와는 다른 군대 병원차가 고재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몇 간수도 같이 탔지만, 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어디로 달리는지 고재봉을 실은 차는 상당히 흔들리면서 자꾸만 달리고 있었다. 고재봉의 머릿속에는 아마 주님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가 생각났을 것이다.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한참 동안 달리던 차가 멈추었다. 어느 군부대 뒷산이었다. 많은 간수들과 군목, 검찰관, 그리고 총을 가진 9명의 헌병들이 미리 와서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간수 두 사람이 고재봉을 양 옆에서 부축하고 가서 말뚝에 기대게 하고 밧줄로 가볍게 묶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고재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고재봉의 목소리는 한적한 주위 공간을 울렸다. “또 할 말 있는가?” “검찰관님! 제가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겨 주세요” 고재봉은 침착했다. 그리고는 소리를 높여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차마 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총을 겨눈 헌병들에게 죽어 가는 순간까지 "예수"를 전하던 그가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을 부를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으로… 그리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살인마 고재봉은 갔다. 이 세상의 온갖 근심을 다 털어 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뭉쳐진 영혼의 알맹이 만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고재봉이 주님을 영접한 후에 구치소에 전도한 숫자는 무려 1,800명이 넘는다. 그의 죽음을 현장에서 지켜 본 간수들과 헌병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재봉의 마지막 광경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천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고재봉이 남긴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내가 일찍이 예수를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이 말은 아직도 내 가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주님의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1) 하나님이 세상 사람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죄의 심판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필자 주 : 1. 어떤 기록에는 고재봉이 형 집행 직전에 부른 찬송가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또 어떤 기록에는 사형장으로 가기 위해 불려 나갈 때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를 불렀고, 형틀에 묶여 형이 집행되기 직전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를 불렀다고 하니, 사형수 고재봉은 두 번에 걸쳐 두 곡의 찬송가를 불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3. 맺는 말

 

    마가복음 10장 31절을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눅13:30, 마19:30, 마20:16 비슷한 말씀 참조)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먼저 믿기 시작한 자라도 주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지 않으면 뒤질 것이고, 나중에 믿기 시작한 자라도 주의 계명을 지키면서 충성하면 먼저 믿기 시작한 자 보다 앞설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로서 자신의 신앙생활 연수가 얼마 되었다는 것만 앞세우고 열심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믿기 시작한 자 보다 뒤질 것은 물론, 그 정도에 따라서는 주님께 버림 받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마음 속에 새기고, 끊임 없이 열심을 다하여 주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모두 되시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