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게시판

나의 언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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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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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물(毒物)”



1636년 병자년 12월


인조는 청의 공격을 받자


파천하고 수구문을 지나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얼마전


자전거로 돌며 노는


김 훈을 따라 나섰던


그  <남한산성>을 떠 올린다



“밖으로 싸우기 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城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言)들이 창궐해서 주린 城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城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城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밖의 적들과 싸우기 보다는


내면의 나와 싸우는 하루이다


그 안에서 나는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고통은


나  스스가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은


바닥과 함께 지냈다



너즈레 흩어진 머리카락들을


쓸고 치우느라


화장실 바닥과 지냈고


내 몸 하나 잘 간직하며 살려하던


生食을 그만 쏟아 부어


부엌 온 바닥을 닦고 훔치어야 했다



‘먹을 때에는


 모여서 먹어도


 똥은 각자 내지르는 것’



그것은 손대기가 어려운 독물이며


내가 내어 지른 것이라


그래서


내가 줏어 담을 것들이었다



“백성의 초가 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가마니) 깔개를 빼앗아


 (그 가마니로) 주린 말(馬)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죽은 말(馬)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이 ‘순환의 고리’ 속에


나도 내 삶의 의미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이


그저 그 삶의 한 자리만을 차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젠 부쩍


그 한 자리에서


‘나이 먹음’과 관계하는


나의 구석진 한 곳을 짚어 보게 된다



‘노욕(老慾)’


‘노탐(老貪)’이라던가…



공자의 “君子三戒”가 말한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여색을 조심해야 한다.


  장성해서는 혈기가 굳세지니 싸움을 조심해야 한다.


  늙어서는 혈기가 쇠약해졌으니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



어느 프랑스 풍자작가도 말한다


 “젊은 시절 쾌락을 좇고


  장년기에 야심을 좇는 것과 마찬가지로


  늙어서는 욕심에 빠져 있는 것이다.”



동과 서양의 말이 동일하다



앞의 두 때에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나이 들자 더욱 더 생겨나는 탐욕은


늙음과 어우려지는 醜함으로


곧 부끄러움이 되고 만다



‘저울’이라는 임 강빈의 시가 나를 진단한다:


  “한번은 약국에 가서


   약 대신


   나를 달아보기로 했다


    욕심을 달아본다


    어지간히 버렸다 했는데


    노욕이 남아있어


    저울판이 크게 기운다


    양심은 어떨까 하다가


    살그머니 그만 내려놓았다


    두려움 때문이다


    저울판이 요동친다


    평형이 잡힐 때까지의


    긴 침묵


    외로운 시간이다.”



외로이 시간을 불러 보았다


다행히


불려와


서두름 없는 시간이 고마왔다



그 시간은


“흘러서 사라지지 않고


 다가 오는 새 시간 속에서


 다시 맑게 피어나는 듯 했다


 모든 시간은


 새볔이어서


 더렵혀질 수 없고


 또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이 시간이라는


‘광장’에서


역사를 만드는 ‘진보’의 한 면을 보고


또한


역사를 지키는 ‘보수’의 다른 면도 만난다



우리들의 삶은


‘광장’이라는 ‘시간 속 만남’의 자리같다



어쩜


자신을 버려야하고 또


떠나야만


돌아올 수 있는 자리..



‘옳음’ 이나


‘그름’은


그 자체가 열매일 수가 없었다



아내의 핀잔에


내가 도무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노트에 적어 가면서 이틀동안을 분석하여 본다



그녀 스스로 판단에 이르고


그것으로


또 스스로가 노여움에 이르러 있지 않나….집어 본다



내 육체적 늙음의 현상으로 보고


그 결과는 아내로서의 자신의 관용이라는 이름 아래


무시와 방관으로 남겨 두는 눈치같기도 했다



어찌 하였던


나타난 결과는


그녀가 怒해 있다는 점이다



나는 단지


‘옳음’ 또는 ‘그름’과


그녀의 ‘노함’의 사이에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옳음’도


‘그름’도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미안해”



이틀만에


고통스럽지만


온 힘을 짜서 내린 결론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되는 그 신비가


그곳에 있었다



‘밀운불우( 密雲不雨)’



나는


구름은 몰았으나


비를 내리게 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作雨’



짜여져 새어 나온


그  “미안해” 한 마디는


비를 만들어냈다:



(시 85)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긍휼 (헤쎄드: 인자, 인애)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근원이요 원천이고


그로부터 복음인 진리 (에메트)가 나옴으로서 그 분의 신실함과 충성됨을 나타낸다


그 복음으로 인간을 값없이 의롭게 하시며 그 義 (체테크)로 부터


화평 (솰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이 이루시는 행사들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이다



‘같이 만나고’


‘입맞추었으며’로


완벽한 조화와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총체적이고도 전인격적인 사역임을 본다



열매는


‘만남’과


‘입맞춤’


그것이었다



모두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었다



‘作雨’..


비를 만든 것은 결코


내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에 머문다;


감히 모든 곳에서


나로 주인을 삼으면서도


하물며


우리 각 사회는 절제를 익히고 제자리 지키기를 잊어 오지를 않았나…



“권력자의 장악에서 벗어난 검찰은 스스로가 절제와 균형을 잃고,


 독재자의 재갈에서 풀린 언론은 스스로 경기장에 뛰어들었으며


 자신들의 입장과 목표를 관철시키려 갈등과  편 가르기를 부추겼다.


 사회 곳곳에서는 절제와 균형을 벗어난 매도와


 기득권의 방어 또는 확대를 추구하는 소리만이 높아져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 모두는 ‘주인을 잃은 자’들이 되고 말았다



“경영진의 성격도 바뀌었다


 자동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도


 자본,자산관리만 잘하면 천문학적인 보수와 함께


 유능한 경영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만드는 사람, 타는 사람, 투자한 사람,


 모두가 이동과 운반이라는 자동차의 근본적인 기능과는 유리된 채


 각각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제사보다는 잿밥에만 더 관심을 두었다


 그것도


 같이 먹는 것이 아니라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마르크스는 이것을 가리켜


인간적인 요소가 파괴된 ‘소외(Alienation)현상’이라 이름하였다



그것은 분명


신에 대한 ‘오만’이다



남의 삶에 함부로 나의 점수를 매기고


그것으로


인간 마음의 신성함(sanctity of human heart)을 짓밟는…



<룻기>를 맺는 예수님의 족보는


‘신앙의 기득권자’에 대한 유념사항을 일러 말하는 듯 하다



<룻기>를 그래서


<사사기>와 <사무엘상>의 사이에 두었을 것이다



(룻 4: 13-22)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 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이방 여인을


일곱 아들 보다 귀하다 했고


그 아들의 이름을


‘오벳’이라 ..


자식의 이름을


‘slave’, ‘servant’라 하다니…



그러나


그로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라 일컬었고..



그로부터 난


‘이새’는 ‘도움’을


그 아들


‘다윗’은 ‘beloved’라…



우리는


한 spot


한 time frame안에 존재하며


그 역할에 맞는 이름을 받는다



허나 하나님의 눈으로는


한 인생은
그의 정해진 전(全) 삶을 통해서


인간은
인류라는 총체로만 해석되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매 순간


이원론적인 가치관들에 묶여 지내며


내 편의 반댓말은 공산당이 되고마는 환경 속에서


부딛기며


온 힘을 다하여


버틴다



‘결사(決死)’…



특히 무엇을 반대 할 때에


잘 쓰는


‘죽음을 이미 정(定)함’이다



‘생명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 던지는’


이 ‘生의 不調理’를 서슴치 않는다



우리는 내 삶을


나의 전(全) 생애에 보다는


너무 순간적인 가치에만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앙에 있어
“시간”이라는 요소를 잊을 때에


창조자가 허락하신


삶의 가치마저도 우리에 의하여 전도되고 있는 것같다



현금의 삶 속에


‘가치가 전도되는’ 현상들만을 보아도 그렇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대상은 대중인데


이제는 대중이 객이 되어 연예인을 주인으로 모시며 그들을 즐겁게 하여 주고 있다



기실 운동이 필요한 이들은 관중 자신들임에도 그들은 보는 것으로 뱃살을 찌우고


오히려 운동이 필요 없는 이들은 땅위에서 뛰고 있으며


또 관중은 오히려 경기자들을 즐겁게 하기에 여념이 없다



예배의 대상은 분명 하나님임에도 하나님은 간 곳 없고 ‘나’가 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출, 12: 27)



‘여호와의’에서 ‘의’라는 전치사는 ‘for’, ‘toward’로서, 예배의 실체는 분명 하나님이신 것이며


그 자리는 그 분의pass-over하신 것을 생각하는 곳이다



어느 비가 멈춘 날


여인을 도와 업고 강을 건넌 큰 스님을 보고


작은 스님들이 강을 건넌 후에 어떻게 스님이 여자를 업을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묻는다


“너희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그 여인이 남아있느냐?”



삶을 전(全) 생애(生涯)로 보았기에


그는


한 frame안에서


한 spot을 지켰으며



인식의 기득권조차도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 교회, 사회..


어느 곳에서이든


리더쉽은 섬김의 결과였는데


이젠 부지불식간에 목적이 되고 말았다



‘섬김’의 근본은


분명 ‘종됨’이었으며


예수님은 그리로부터 우리에게로 다가오셨다



“말(言)과 독물(毒物)”이라는 이 제목이


좀 거칠게 보이지만


이제는


내가 내어지른 독물들과


내 삶의 주린 城 안에 넘친 말(言)들을


거둘 때인 것 같아서이다



모두


내 몸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나를 가둔 그 城을 돌아 볼 뿐이다



“적군의 왕이 오면 성은 밟혀 죽고


 적군의 왕이 오지 않으면 성은 말라죽는다


 그러나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었다”



그 길은


밖으로부터 비추이는
주님의 불꽃을 인식하며


내가 태우는
작은 불꽃 하나에 달려 있었다



부활절의 무덤 속에서 세마포가 벗겨지고


부활하신 이가 아침의 찬란한 빛 가운데로 성큼 나타나는 힘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


씨름하게 하고


기다리게 하며


부딪치게 하는 가운데


믿도록 만들어


다시 피어나게 하는


우리 속의 불꽃의 힘과 만난다



‘길’은 지나 갈 때에
‘길’이되고


지나가지 않으면


그저 ‘땅’으로만 남을 것이다



내가 남기는


‘상실’과 ‘소외’의 부산물이


결코


주님께서 이미 기뻐하신


내 옆의 또 한 ‘삶’일 수는 없지 않을까…



삶의 핵심은 분명 열매이다


‘사랑’이라는…



(요 3;16)과 (요일 3:16)이 함께 하는


 “사랑의 이중계명”



하나님과


이웃의 사이…



나는 과연


그 사이에 있는 것일까…?



중도(中道)는


좌(左)와 우(右)


'나'와 '너'의 가운데가 아니다



“저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알지 못합니다”고
그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며


저들의 용서를 빌었던


예수님의 중도적 호소는


하나님의 포용력이었다



서울과 부산의 중도가


대전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이듯이


한반도는


서울과 부산을 포용하고 있다



나와 너 사이가


중도가 아니라


중도 안에


나와 너가 있다



나와 너 사이에


하나님이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나와 너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포용력이며


곧 그 분의


사랑이다



아내와 나는


분명


그 분의 사랑 안에


작은 두 지점으로
이미 있어왔다



그래서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몸소 이루시어 가며


나에게 일르신


절대명령이지 않을까…



이번 여행은
내 언어 안에
갖혀
주린
성(城)을 벗어나


그분의 사랑을 만끽한 귀한 자리였다



무지개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무지개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자기가 언제 무지개 속에 들어와 있게 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지금 무지개 속에 있어?” 라고 계속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래 그래” 친구들은 대답하였다


“너는 알 수 없겠지만, 우리는 보고 있어”라고…



Irvine이라는
여리고 성(城)을 품는
얼...사...


 "....................
城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城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한 분
한 분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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