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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망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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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u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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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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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 (Seize the day, 오늘을 즐겨라)


오래전 Robin Williams가  교사 ‘Keating’으로 열연한


‘몸’이 바뀌지 않고는 ‘정신’이 변화될 수 없다는 인식에 기초한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라는 영화에서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신과 행동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메세지를 전하려했다


“환자와 같은 우리 인생에게 진실의 억압이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려하였다



‘몸’에 대한 관념에 과감히 다가설 필요가 있어


며칠 전에는


(소망  SOCIETY)라고 하는 한 자선단체의 SEMINAR에 다녀왔다



아버님 돌아가시는 날을


마치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바로 그날 오전에 아내가 들르게 되었던 곳이라 인연이 있었다



죽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할 수 있는


또는 해놓는 것의 바람직한 것들에 대하여 강의와 간증을 하는 자리이다



아직 나와는 거리가 먼 것만 같아


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죽음이라는 사실이 현실이라는 것이 받아드려지는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그 내용들에 실감있게 다가 설 수 있었다



내 육신에 대한 처리에 대해서


미리 자발적으로 뜻을 남김으로서


배우자나 자녀들의 결정을 수월하게


또 그들로 불필요한 갈등이나 죄책감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것이다



예배이어야 할 자리가


어쩌면 인간적인 형식이 될런지도 모를 장례의 여러 절차들


매장, 화장 그리고 시신기증에 대한 선택


의식불명으로 회복 불가능으로 판단될 경우에 인공호흡기를 요구할  것인가 ….등등…


여러 사항들을 미리 결정을 해놓아 자녀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위한 계몽의 모임이기도 하다



화장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다른 사항들


특히 장기기증외에 시신기증에 대해서는 사실 심각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난번 아버님의 장례를 치루면서


절차를 논의하는중에


자식으로서의 선택 사항이 참으로 많음에 좀 당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인생간의 이별에 참으로 필요되는 것들인지


그간의 부족함이나 죄의식에 의한 선택이거나


거의 대분분 형식적인 것들이 아닌지에 대한 주저함이 적지 않았다



아버님을 화장해드리기로 마음을 정하고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 재를 뿌려드리면서


돌아오는 뱃길 발길에도 추억으로 연한 아버님과의 줄은 여전히 끈끈하였다


물 위로 저 먼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서


어디론가 가시는 아버님과 무언가에 시선을 같이 한다는 자유로움이 있었고


갖히었다는 답답하고 억압된 감정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었다



시신기증에 대한 간증을 들으면서


육체를 창조주가 주신 선물로 진실히 여긴다면


시신기증은 그를 통해서


다른 인류를 구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자리로


그 분의 땅에 대한 축냄이 없이


보답으로 창조주의 자리로 되돌려 주게되는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육체에 대한 지금까지의 나의 관념에 대한 결정일 것이다



‘의사는 죽음을 모른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거부하기 싫은 충격이었다


죽음을 실패로 보게되는 그들의 직업적 책임의식은


호흡의 연장을 통한 오직 사는 것만이 주된 관심이고


따라서 그들과는 죽음을 나눌 수가 없을지도 모르며


병원은 삶에 대한’ 이해’가 아닐 수가 있다는 것…



‘병을 고치기 보다는 환자를 고치라’는 말은


병과 환자의 경계선에 서있는 우리들을 한없이 무력한 존재로 남긴다


치료할 수 없는 마지막 2년의 단계에서


한 국가전체 의료비용의 80%가 소진이 되어야하는 현실은


우리들 판단능력에 대한 한계성의 노출인가.. 아니면


사랑을 향한 끝없는 집념의 표시인가..


또는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최대의 노력인가….하는


고민과 갈등들을 지니고야 만다


‘치료할 수 없는 2년’이라는 판단도 결국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차피 생명의 ‘연장’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연장의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지않을까…


오히려 삶은


‘계속’이어야  하지않을까….


‘연장’이라는 말에는 ‘끝’이 함축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쨋든


그  선택과 책임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로 시작하는 그 자리의 주된 Message는 이렇다:



“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잊지 말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삶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란 단순히 육체의 무너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죽음에 봉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왜 그럴까?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  채 죽음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게 파헤쳐보는 것이 우리의 삶과 운명을 이해하는 시작이 되리라



  자연의 섭리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죽음과 화해하여야 하리라


  그리하면 살아있는 시간들이 더욱 의미있는 삶으로 채워지리라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하지않는다


  - 톨스토이 -



  어떤 일에 앞서 고민에 싸인다면 그날 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라


  그 고민은 즉각  해결될 것이다  – 소포클레스 -



  오늘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뒤로 미루지 말라


  왜냐하면 죽음은 인정을 베풀줄 모르며 그 어떤 것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 미상 -



  Ars Moriendi (아름다운 죽음)


  아름다운 끝맺음은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격언 – “



‘끝맺음’이란


‘아쉬움’이라는 요소때문에


‘아름답다’기 보다는


‘선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인간적 고뇌가 남는 실체적인 것으로 들릴 것 같다



100세까지 살다 간 자연주의자 Scott Nearing이 남긴 바램은 새겨볼 만하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라며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하니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워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툭 트인 곳에 있고 싶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통제나 마취제도 필요없다.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히 가고 싶다.


  회환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으니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과 위엄, 이해와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함께 나눠 주기를 바란다.



  죽음은 무한한 경험의 세계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삶의 다른 일들처럼 어떤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밖의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


  이 일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평범한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가


  만일 아내가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나무 아래 뿌려 주기를 바란다.”



HOSPICE 전문 간호사에게는


오히려 죽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삶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생명에 대한 그녀 설명은 매우 진지하였다


그녀는 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고 대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말할 때에


우리는 오히려 죽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삶이 선물임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Body라는 하나의 물질인 육체를 통하여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는 정신이라는


영혼의 가치는 그렇게 해서야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죽음은 ‘옮겨감’이고 ‘깨어남’이 될 것이다



어디로 옮기어지고


어디에서 깨어날 것인가 하는 것만이


믿음의 문제로 남는다



산모의 고통의 시간은 3분간격이다


우리들에게 고통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면


우리 육신은 shock으로 인해서 죽는다


우리들 육신의 고통은 바로 ’하나님의 간격’이다



우리는 그 ‘간격’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가끔 Mammoth Lakes이 사이를 파고들곤 한다


나는 어느 겨울


싸늘히 몰아치는Ski장 最頂上에서


Goggle을 벗어 재치고 내려다 보던


그 넓은 雪原의 침묵을 잊지 못한다


또한 나는 어느 봄녘


그 Twin Lakes 바로 옆 별장의 Lobby에서


벽난로 옆에 하고 화폭되어 준 자그마한 창문밖으로 내다 보이던


몇 몇 꽃들의 미소들을 잊지 못한다


어느 여름날


그 계곡들 사이로 어딘가를 향하여 끊임없이 흐르던


힘찬 물줄기들의 긴 旅程을 잊지 못한다


나는 어느 가을날


자신들의 색을 즐비하게 늘어뜨리며 나를 가르치던


그 잎새들의 나약한 부르짖음을 또한 잊지 못한다



오늘은 보다


큰 자연을 만나고 싶다….



삶을 배우기 위하여…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the pledge of a good conscience toward God -” (벧전 3:21)

'탄생'의 의미가 새삼스러워지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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