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게시판

 신앙간증 내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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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u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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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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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민





추천 수 : 7 / 0

조회 수 : 3106

2010.03.04 (14:35:50)


이귀순 권사님의 신앙간증 내용


 

1918년 제 나이 열 살 되었을 때대구에 계시는 정재순 목사님께서 제가 사는 고장으로 오셔서 전도집회를 여신 적이 있었습니다그 때 저는 생전 처음 기독교 모임에 참석한 것입니다그 때 목사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살아온 저의 생활 속에서는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교회 모임을 몹시 갈망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라면 무조건 반대하신 분이었습니다그런 관계로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저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저의 어머니가 계셨기에어머니는 항상 제가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여러 방법으로 도와주셨습니다그래서 저는 아버지 몰래 예수를 믿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아버지는 늘 막내딸인 저를 사랑하면서 "저것은 여자 아이지만 머리가 명석하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언니들에게는 가르치지 않던 천자문(한문 공부의 기초 과정), 명심보감(한문 공부 단계인 인간 윤리 도덕의 수학 과정)을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저는 아버지가 두려워 지기 시작하였고아버지 앞에서는 기쁨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이와 같은 가운데서도 저의 어머니는 저를 격려해 주시면서 교회생활을 적극 지원해 주신 것입니다그 때까지는 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단순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14살 되었을 때순회하시는 미국 선교사님에게 학습을 받기 위해저는 교회에서 학습문답을 받게 되었습니다사도신경을 외우라고 해서 거침없이 외웠고또 십계명을 묻기에 잘 대답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난 소꿉 친구들은 16살이 되면서부터 하나 둘 시집을 가게 되어저에게는 새로운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17살 되었을 때저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는 저에 대한 혼인 문제로 의견 충돌이 시작되었습니다아버지는 선비부자예의 바른 사람을 찾았고어머니는 예수 믿는 사람이면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17살 때 어느 주일이었습니다순회하시는 김원휘 목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저에게 세례 문답을 하게 되었습니다그 때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영수님이 저에게 질문하기를 "아버지가 믿지 않으니 앞으로 큰 시험이 있을 것인데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그 때 저는 "죽어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준비 없이 대답한 말이지만저의 옷깃에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아버지로부터 분명히 핍박이 있을 것이다어떻게 견딜 것인가죽어도 믿겠다고 대답했지만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저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예수 믿지 않고도 착한 일하면 구원 얻을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목사님은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고 눈을 감고 계시다가 "사도행전 4장 12절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신 다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목사님의 이 말씀이 저의 심령에 확고부동하게 새겨졌습니다.

저에 대한 혼인 말은 계속 들어옵니다특별히 정초(구정)가 되니 다른 도시에 나갔던 분들이 찾아오면서 더 많은 혼인 주문이 어른들에게 전해집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순아하회란 마을에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하는데너의 외가 사람이 중매한단다지금 신랑감은 서울 가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면서 기가 막히게 좋은 혼처이다매년 쌀 200석을 수확하는 부자라고 한단다이렇게 좋은 혼처를 마다 할 수는 없지 않나잘 생각해 봐라결혼은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된단다그러니 결혼해서 남편을 믿게 하면 되지 않겠나아버지 뜻에 따르자구나?

양반이고또 부자 집 아들이고서울서 공부하는 신식 유학생이니내가 전도해서 믿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자 저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고장의 양반들의 혼인 절차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아나갔지요.

중매쟁이를 통해 말로 중매가 들어오면 처녀 집에서 동의할 경우 허혼(許婚편지를 보내고 총각 집에서 결혼 날짜를 정하여 처녀 집에 보내면 처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신부는 일정 기간 친정에서 지내다가 신랑 집으로 신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1927년 7월 28일 허혼 편지를 쓰기 위해 대서할 분이 오시기로 했었습니다그런데 하루 전날인 7월 27일 수요일 이돈만 장로님과 다른 두 분(아버지와 아들)이 소평댁(택호)에 손님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들려왔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삼일기도회에 나갔습니다시골 교회인지라 평소 삼일기도회에는 몇 사람 모이지 않았는데그날은 굉장히 많은 사람이 모여 교회당이 꽉 차 있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지요.

방문오신 낯선 청년이 찬송(오늘날의 찬송 485세월이 흘러가는데)을 인도하고또 설교도 했습니다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이돈만 장로님이 교회 다른 분들에게 말하기를 "내 평생 결혼 중매 아직 못해 봤는데이번에 꼭 성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저의 동생 수만이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저의 나이 열 아홉 살인데 친구들은 지난 1-2년 사이 모두 내 곁을 떠나가지금은 나만 남았기에이제 나도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속에 작정은 하였으나 완고한 아버지를 설득시킬 자신이 없어가까이 살고 있는 언니들까지 불러모아 오빠들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직전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친척이고 또 교회에 나가시는 명동 어른이 아버지를 찾아 오셔서교회에 온 총각을 아버지께 소개하였습니다. "아무리 찾아 다니며 구해도 그런 청년 구할 수 없소이다자기 발로 굴러 왔는데 놓쳐야 되겠습니까?" "이 청년도 같은 하회 류씨이고공부도 할만큼 했고또 인물도 좋고예수도 믿는데흠이 있다면가난하다는 것인데 돈은 벌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냥 이 청년으로 정하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목청을 높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살지얼굴만 멀쩡하다고 누가 밥 먹여 주나?, 내 딸 고생시킬 수 없다", "나는 그 청년이 가난해서 싫고또 예수쟁이기 때문에 임금의 아들이라도 싫다"고 말하자명동 어른은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앞으로의 결정은 제 혼자만이 결정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저는 생각하면서예수를 계속 믿을 수 있느냐못 믿게 되느냐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밤이 지나갔습니다새 날이 되었는데 이돈만 장로님과 함께 오신 손님들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그 분들이 아직까지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아 내게 관심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저는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 날도이웃에 사는 석순이가 저의 집에 와서 함께 삼을 삼고 있었습니다그 친구는 저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었지요내 평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인데 내가 잠자코 있을 수 없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된 저는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아버지와 담판을 내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석순이에게 "석순아지금 나에게는 말 못할 형편이 있으니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와 주겠어?" 석순이는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다시 명동 어른이 사랑방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와서 어제 나누던 말씀들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의 머리 속에는 엡6: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녀들아 너의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을 아버지께 드려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명동 어른이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시는 기척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부녀간에 말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음을 믿고, 감사 기도를 먼저 드리면서 "주님 이 소녀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 어찌해야 좋습니까?" 이렇게 기도할 때, 내 마음속에 뜨거운 무엇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저는 아버지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아버지가 딸의 혼사에 참여하시고 허락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고 딸인 저입니다. 아버지! 저는 부자 집이라는 조건만으로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목침이 방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더니 맞은 편 문살이 와르르 부서져 내립니다. "오백년 만에 이 같은 것이 우리 집에 태여 날줄 몰랐다. 저의 어미가 아무렇게나 시킨 말을 듣고 이렇게 한단 말인가?" 저는 아버지의 격노하신 모습을 생전 처음 목격했습니다. 내 입은 바위 같이 닫혀버렸고, 심장은 멎었고, 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 둘 째 오빠가 마당에서 지게를 고치다가 감정을 누르면서 아버지께 나아와 말씀을 드리기를 "아버지, 이번 혼인은 우리 형제들이 의논하여 정하겠어요.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는 것 아닙니까? 또 아무리 부자집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가기 싫은걸 어떻게 갑니까? 그리고 그 집도 가난하다는 것 외에는 똑같은 양반 집안이고, 또 인물 좋고, 우리 집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우리 집 혼사를 아버지 혼자 결정하셨는데, 이번에는 우리 형제들이 모두 장성하였으니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겠으니 그렇게 아세요, 일방적 통고나 비슷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양반이라고 다 양반이냐?"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자, 큰오빠가 옷을 정장하고 이돈만 장로님이 계시는 소평댁 집으로 가셨습니다.

혼인 문제 때문에 오신 손님들에게 인사를 드린 다음, 하루 더 유하고 가시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소란한 가운데 있으니, 충분히 의논할 시간을 필요하다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혼담이 시작되면서 구체적 절차에 들어갔지요. 상대편에서는 맛 선을 보자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랬다가 만약 혼사가 성립되지 않으면, 내 딸 혼인길이 막힌다면서 반대하셨지요. 내일 다시 교회에서 목요 특별집회를 열고 자연스럽게 집회시간에 간접 선을 보기로 합의가 된 것입니다.

나로서는 참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오늘날과 같아선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그 시절에는 부모가 정해주는 데로 자식은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에 가려니 쑥스럽고, 어머니가 분명하게 약속하시는 것임으로 아니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번민하고 있는데 마10:28절이 생각났습니다...."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리고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또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 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그리고, 오늘날의 찬송가 450장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경 말씀이 항상 내게 양식이 되었고, 시편 23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주님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복잡한 생각이 말끔하게 씻어 지듯 정리가 되었고, 또 친구 박놈이가 나를 도와 같이 목요 저녁 집회에 나가줌으로 망서리던 선 보는 자리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눈앞에 있는 두 분은 꼭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천사와 같았지요. 자유로운 신앙생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찬송할 수 있으며, 또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는 가정은 분명 지상의 천국 같으리라.

세상 부귀가 내게 무엇에 유익하랴?. 어머니의 지혜와 오빠들의 노력으로 아버지로서는 본의 아닌 결정이지만 어렵게 허락을 받아낸 것입니다.

이제 모든 폭풍은 지나갔습니다. 금요일 약혼 반지를 받게 되었고, 저쪽으로부터 필적을 보여 달라는 요구가 왔기에, 저는 다음과 같이 내용의 편지를 정성 드려 써서 보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말씀은, 그대는 모든 것이 겸전하신 분으로서 부족한 저에게 약혼 반지까지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한      이귀순 올림

꿈같이 나타난 두 부자는 토요일 아침 기약 없이 떠나갔습니다.

1927년 12월 5일 드디어 혼례 예배를 드려 새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저에게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을 걱정해야만 하는 고달픈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가난한 가정으로 출가하였기에 이웃으로부터 받게 되는 조소도 두려웠고, 또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존심도 있었고, 아버지 입에서 "그래, 네가 아버지 말 듣지 않은 결과가 어떤지 알겠지?" 이와 같은 말도 듣기 싫어 친정 출입을 십 년 동안 가지 못했습니다.


(필자 주: 다음 내용은 상당 시일이 지난 후의 일을 간증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1950년 한국 동란이 일어날 때 저는 강원도 영월에 살고 있었습니다. 동란을 피하여 가까운 시골로 피난하였는데, 인민군이 찾아와 "예수 믿느냐?"고 묻기에, 저는 옹기종기 앉아 있는 어린 자식들을 둘러보면서 "주님 저 아이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속으로 이렇게 기도한 후 "나는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하였더니, 인민군은 수첩을 꺼내 무엇인가 적고 있었습니다. 나의 심정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 앞에서 거짓 말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 함께 해 주시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심을 지나간 저의 생애를 통하여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기록할 말 태산 같으나 이만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립니다. 이 수기를 읽으시는 분은 마19:29절을 꼭 찾아 읽어보십시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잃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1981년 나의 생일을 전후하여 이 간증 문을 쓰기 시작, 11월 5일 11시 35분에 끝맺음


 (필자 주: 간증자가 다시 추가한 사항입니다)

1987년 저희들 결혼 60주년이 되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자식들이 열겠다는 회혼잔치 비용을 육적인 잔치에 쓰지 말고, 영적인 천국 잔치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자, 자식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그 제안을 수용하여, 전 교인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당시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내 평생 소원을 이루어 주신 주님께 감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가정을 이룬 그분(유위길 장로님)과 1989년까지 함께 살면서 7남 1여의 자녀를 주안에서 낳아, 기르고, 공부 시켜, 주를 경외하는 자식들로 모두 길렀고 친손자 외손자 그리고 그의 후손들까지 여러 명 보았습니다.

사는 동안 많은 눈물과 괴로운 일들이 있었지만 신앙을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넘겨주게 된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여깁니다. 항상 고난이 닥칠 때는 주님께서 곁에서 해결해 주셨음을 감사 드립니다.


*** 필자 후기 ***

권사님은 필자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계시는 분으로 항상 저를 아껴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권사님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1981년 음력 10월부터 11월까지 사이 이 신앙 간증문을 손수 작성하여 보관하고 계시다가 1998년 추가할 사항을 기록하신 다음 복사본 여러 장을 만들어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권사님께서 작성하신 원문은 옛 한글체로 작성되었고 또 어려운 한자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문맥들이 많이 섞여 있기에 필자가 쉬운 현대어로 바꾸어 작성한 것입니다.

그 후 권사님은 2001년 2월 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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