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게시판

여보 비가 와요 / 신달자

Author
김영란
Date
2020-01-30 23:33
Views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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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

오늘 아침 남편과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
"저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고 했던
맹세는 중단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말,
하지 않아도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때 했던
그 맹세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약속을 매일 지키며 살고 있으니까요.
주례 앞에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한
그 약속을 하루에 하루를 더하는 삶으로 이행하고 있으니까요.
그 약속을 지킬 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신달자 시인은 그 힘이 애프터셰이브처럼
강렬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확 불타올랐다가 바로 죽는다면 또 모를까,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70년쯤 함께 살려면
사랑도 마라톤 선수 스타일로 해야 하니까요.
그 약속을 지키는 방법이 이 시에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비가 올 때,
"여보, 비가 와요"라고 말하면서 살면 됩니다.
눈이 올 때 "얘들아, 나와라. 눈 왔다"라고
부부가 함께 아이들을 마루로 불러내면 됩니다.
그러면서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양
호들갑 떨고 수다 떨고 서로 맞장구쳐주면 됩니다.
원래 사랑하는 사이엔 좀 유치해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간단한 실천법을 외면하고
비가 와도 무덤덤하고 눈이 와도
각자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 화면이나 본다면
처음에 한 약속, 지키기 어렵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이 작품을 자신의 체험에서 퍼 올렸습니다.
시인은 오랜 시간 남편의 병 수발을 했습니다.
1977년 쓰러진 남편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3년간 간병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이의 투병이 내겐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떠나니 외롭더군요.
살았을 땐 원수인 줄 알았는데…."
그러니 함께 사는 동안 이런저런
수다 좀 많이 떨어두어야겠습니다.
너무 시시해서 직장 동료나 거래처 사람과는 하지 않는
사소한 대화가 바로 가족 간에 해야 할 말입니다.
그렇게 나눈 대화를 돌다리 삼아 우리는 인생의 강을 건너갑니다.
처음 만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던졌던
한 마디 멋진 말이 사라지고 나면
그 다음엔 밥 먹고 놀러 가고 애 키우며 함께 한
그 모든 시간을 채운 사소한 말들이
우리가 사랑하며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겠지요.

이현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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