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게시판

구하면 주시고, 부르짖으면 도와주시는 주님

Author
Han You
Date
2020-02-02 17:37
Views
82

  • 구하면 주시고, 부르짖으면 도와주시는 주님


(부제 : 암과의 전쟁 중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


- 성경 말씀 -

  1.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2.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3.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필자는 1933년 2월 하순에 출생 하였으니 이 달 하순이 되면, 만 87세가 된다. 몇 달 전에는 Garden Grove에 계시는 80세 되시는 명00 목사님께서 소천 하셨고, 또 그 보다 조금 뒤에는 Irvine에 계시는 78세의 장00 장로님께서 소천 하셨으며, 또 최근 한국 보도를 통해 알게 된 바에 의하면 84세인 남붜원이라는 유명 코미디 배우가 폐렴으로 인하여 별세했다는 사실과, 한 때 한국 재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태광실업 창업주인 박연차 회장이 폐암으로 75세에 별세했다는 보도도 들었다. 그럼으로 87세가 된 저로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날이 더욱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간 필자가 걸어온 인생 일생을 돌이켜 본다면 순경의 날이 있었는가 하면 역경의 날도 있었고, 기쁘고 즐거웠던 날이 있었는가 하면 힘들고 고달팠던 날도 많이 있었다. 철 모르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마냥 즐겁기만 한 가운데서 살아가다가, 13세의 소년이 되었을 때는, 중학생인 어린 것이 일본 압제로부터 막 해방된 혼란한 서울로 올라가 새벽 잠을 설치면서 고학 하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또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필자가 살던 영월 땅이 북한군에게 점령 당하였고, 점령한 북한군이 병력 보충을 위해 남한 청년과 학생들을 잡으려고 나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머님께서 “잠시 피하라”고 권유하심에 따라 단신 피난 길에 오르게 된 것이, 7년 동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어, 3년 동안은 전쟁터에서, 4년 동안은 휴전선 근해에서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의 주인공이 되어 외롭게 산적도 있었다.

1984년 미국 땅으로 이민 온 이후에는 일반적으론 평온한 가운데서 살았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사람들이 두렵다고 말하는 암과의 전쟁을 두 차례나 치른 바 있으니, 실로 인생의 일생에는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도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필자의 일생 가운데서 어려웠던 문제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어려움애 처했을 때, 어떻게 함으로써 살아났는지를 밝히려고 한다.

1.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가. 17세의 소년이 단신으로 떠난 피난의 길

1950년 7월 4일 오후 2시, 북한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어머님을 작별하고 홀로 피난 길에 오른 필자는 남쪽으로 가는 어두운 밤길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늦은 밤 단양군 가곡(佳谷)면 한 농촌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곳 주민들이 "인민군의 입성을 환영하기 위한 잔치를 준비한다"면서 소를 잡는 것을 보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7월 5일 해 뜰 무렵 죽령(竹嶺)역에 이르렀다. 다시 북한군에게 쫓기고 쫓기면서 남으로 내려가다가, 드디어 피난 정부가 와 있는 임시 수도 부산(釜山)을 거쳐, 정부 시책에 따라, 다시 거제(巨濟)섬 동부면에 있는 한 농가로 옮겨져 농가의 머슴처럼 살던 기막힌 시절도 있었다.

갑작스레 피난 길에 오른 17세의 소년인지라, 호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었다. 거제 섬에서는 전세(戰勢)를 전혀 알 수 없어, 부산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농가에서 나와 성포(城浦)항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돈 없는 아이를 누가 부산이나 육지로 그냥 배에 태워 주겠는가? 진퇴양난의 처지에 이르게 되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성포(城浦) 부두 가에 가마니를 깔고 노숙을 하면서, 문전걸식으로 허기를 채워야 하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경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고난의 생활이 시작된 필자는 피난 길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온 성경 찬송을 꺼내 들었다. 외등이 없는 바닷가의 어두운 밤인지라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주님의 산상보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라는 말씀을 암송한 다음,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 하소서”(당시 찬송가 421장)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주님의 손길이 임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한 다음, 부모님을 그리면서 눈물을 흘리다가 어두운 밤을 뜬눈으로 지세기를 몇 며칠 계속 하였다. 부산으로 가야 되겠다는 간절한 욕망에 따라, 다시 장승포(長承浦)항으로 옮겨가 부두 가까운 곳 한가한 길가에서 다시 노숙을 시작했다.

1950년 7월 하순이 가까워 진 때였다. 허기에 지친 가운데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부두 가에 깔아 놓은 가마니 위에 누워 있는데, 학생 모자를 쓴 학생 하나가 오더니, “어디에서 오신 누구입니까?” 하고 묻기에 “강원도 영월에서 피난 내려온 학생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예수를 믿는 학생입니까?” 하고 묻기에, “네 영월교회 교인입니다”라고 대답 하자, “나는 장승포교회 기독학생회 회장인데, 오늘부터 당신의 숙식 문제는 우리 기독학생회 회원들이 맡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필자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솟구쳐 오르면서, “주여 감사 하나이다, 구하면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소리치면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매어 달리면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주님을 찾는 자를 버리시지 않고 도와주시는 분인 것을 확실히 깨달게 되던 순간이었다.

     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참전자의 길

1950년 7월 30일이 막 지났을 무렵이다. 장승포교회 기독학생회의 도움을 받고 있는 피난민들이 모인 곳에 경찰관과 해군 군인 두 사람이 찾아와서, “나라가 위기에 빠져 있으니, 여러분과 같은 청년 학생들이 나라를 구해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필자를 비롯한 청년 학생들 모두가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모병관이 나누어 주는 입대지원서를 받아, 소정란을 모두 기록한 다음 지장을 찍어 제출했다. 드디어 모병관이 징발한 선편에 올라타 진해로 옮겨간 후, 1950년 8월 15일 1000여명의 전우들과 함께 해군 17기생으로 정규군의 한 사람이 되었다.

군 당국에서는 계획되어 있는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단축된 기본 훈련을 모두 가르친 다음, 필자와 함께 입대한 많은 전우들을 해병대로 데리고 가서, 여수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원산상륙작전의 최선봉에서 상륙케 함으로써, 채 피어나지도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 날아오는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 일회용 군인이 되었던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다.

그 때 필자는 해군 함정 요원으로 배정되었다. 4푼(12.12mm)짜리 얇은 철판으로 만든 물 위에 떠다니는 상자에 인생의 귀중한 생명을 의지 하고서는, 원산(元山) 흥남(興南) 단천(端川) 성진(城津) 거진(巨津) 간성(杆城)과 백령도(白翎島)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에 대처하는 작전 수행으로 6년 10개월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전쟁은 잔인하고 무자비 하게 수행되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을 먼저 발견해서 공격해야 자신이 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살벌한 가운데서 수행되곤 했다. 그러기에 북한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함정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바다에는 많은 기뢰를 방류하였고, 또 북한 해안 곳곳에 해안포를 설치하여 우리 군함을 향해 발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위험한 환경 속에서 수행하는 전투라,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수행하곤 했다.

          (1) 진해 모항에서 작전 해역으로 떠날 때

그런 환경 속에서의 수행하는 전투임으로, 필자가 탄 군함이 작전 해역으로 가기 위해 진해 모항을 떠날 때, 처음에는 필자의 믿음이 약한 탓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꼭 산다고 기도하지 않고, “내가 오늘 이 항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와 같이 반신반의 속에서 소망 없는 기도만 한 후, 진해를 떠나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다음부터는 “주여 다시 돌아와서 이 항구를 볼 수 있도록 지켜 주옵소서, 그래야 소식 모르는 부모 형제와 다시 만날 수 있나이다”라고 주님께서 확실히 지켜 주신다는 믿음 안에서, 기도하면서 두려움 없이 떠나곤 했다. 그랬더니 6년 10개월이라는 긴 동안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수행한 다음, 무사히 모항으로 귀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2) 작전 해역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작전 해역에서 전투를 수행할 때는.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로 가야 함을 깨달았기에 항상 주님께 생사를 맡기고 의지하는 가운데서 살았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절약하여 성경 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또 위급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저도 모르게 “주여 지켜 주옵소서”라는 기도부터 먼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찬송을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저 먼 바다 파도 위에 배 젓는 선부는“(당시 찬송가 372장)라는 찬송을 수도 없이 부르면서, 하나님께 매어 달린 가운데서 작전을 수행했다.

그 해역은 우리 해군 함정 704함이 기뢰에 접촉하여 승무원 전원이 전사한 곳이고, 또 많은 미국 함정들도 기뢰로 인해 피해를 당한 위험한 북한 원산항 인근 해역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분명 주님을 찾는 자를 지켜주시는 분이시기에, 그 때 소년이던 그 아이가 자라나, 현재 87세의 노구(老軀)가 되어, 부요한 나라 미국에서,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와 같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어찌 감사하지 않습니까?

     다. 필자의 육신을 공격해 온 암과의 전쟁

          (1) 제 1차로 수행한 암과의 전쟁

이민 초기 뿌리를 박고 살자니, 영어도 배워야 하고 또 생활비도 벌어야만 하는 어려움 때문에, 몸이 조금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99년부터 밤 취침 시간이 되면 소변을 자주 보느라 잠을 설치게 되어,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더니, PSA에 대한 혈액 검사를 실시하더니, 그 수치가 처음에는 4.62, 그 다음에는 5.58, 5.64, 8.93. 11.3 검사할 때마다 자꾸 올라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을 본 주치의는 전립선 비대증이 아니면 전립선암일 가능성이 높음으로, 빨리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가서 초음파 검사를 실시한 결과 전립선암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A)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의 무지로, 그 때까지 몇 년 동안 Medicare를 신청하지 않고 지냈었다. 그런 관계로 병원에 갈 때마다 적게는 100여불, 많게는 6-700불의 돈을 준비해 가야 하는데, 수술이나 치료를 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 분명할 것임으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감당하랴? 또 필자의 생각 속에서는 “그래도 암인데, 치료하면 꼭 살게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버릴 수 있겠는지?”라는 생각 뿐이었다.

아내는 수술비로 쓰기 위해 살고 있는 집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나 하나 살기 위해 가족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 주택을 팔고 싶지 않았다. 나 하나 살린 다음 온 가족이 빚더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허덕이게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 하나 죽고 없어지면 될 것인데” 제가 이와 같은 고집을 계속하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의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현금으로 지불하면 수술비 금액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1만 4-5천불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B)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겠다는 각오

암이라는 선고를 의사로부터 처음 받았을 때의 저의 심경은 매우 착잡했다. "잠시 동안 내가 이 세상에 더 살려면 적어도 1만 5천불 이상의 돈을 내버려야 하는데, 과연 내가 잠시 이 세상에 더 사는 것이 1만 5천불 이상의 가치가 있을까?, 아니야, 몸도 허약하고 일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하루를 더 살면 가족들에게 더 짐만 지우게 되고 폐만 끼칠 것이 아니겠나?, 없는 돈을 억지로 마련해 가면서 살겠다고 한다면 누가 봐도 나의 욕심이 과한 가운데서 생겨난 억지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고민하면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자꾸만 날자는 흘러가고 있었다.

               (C) 아내에게 고생을 너무 많이 시킨 죄책감

"이제 나에게는 인생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크게 잘못되게 살았거나, 부끄럽게 산 것은 없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68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세월을 고생만 싫건 하다가 떠나게 되는구나, 아니야, 내가 고생한 것은 내가 너무나 무능한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아내는 이 못난 사람을 만난 탓에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살았고, 또 강원도의 무서운 엄동설한을 속내의도 입지 못한 채 떨면서 살았지, 또 밑바닥까지 떨어진 우리 가정 경제를 살리기 위해, 축산업이라는 무거운 짐을 여자의 몸으로 혼자 졌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밑바닥 인생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등, 지난날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아내에게 고마움을 또 다른 한편에선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100년을 서로 도우면서 같이 살자고 약속해 놓고, 먼저 혼자 떠나가게 되었으니, 연약한 아내는 어찌하란 말인가?, 낯설고 언어가 다른 미국 땅에 데려와서는, 남들이 잠자는 한 밤 중에 크나 큰 빌딩에서 밤 청소를 하게 하였던 이민 초기의 일, 또 세탁소의 뜨거운 불판 앞에서 옷을 데려야만 했던 지난날의 걸어온 많은 일들이 계속 나의 머리를 찾아와 괴롭히고 있었다".

               (D) 내가 죽더라도 가정 일이 원만하게 처리 되도록

미국 땅에 들어 온지 10여년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아내에게 공과금 지불에 대한 심적 부담이 없도록 하기 위해, Check 발행은 항상 나 혼자서 발행해 왔다. 이제 막상 내가 죽은 후, 아내가 그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니 그 처리 요령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고, 또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재산인 집이 원활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서 유언장도 만들었고 Living Trust도 만들었다.

               (E) 아내의 고집이 찾아낸 좋은 열매

나는 인생의 종말을 대비하면서 하나하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달랐다. 나의 몸이 고달픔을 염려한 아내는 혼자 버스를 타고 나가, 전립선암이 어떤 암인지? 전립선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전립선암을 치유하기 위한 수술의 권위자는 어느 병원 어느 의사인지? 그리고 암을 치유하기 위한 자금 확보 방법 등을 알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과 같이. 아내는 최선의 방법을 알아냈다. 전립선암은 순한 암이니 조기에 수술하면 100%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UCI Medical Center에 가면 암을 전담하는 Cancer Center가 있는데, Prostate Cancer의 권위자인 Ahelering 의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용하는 자동차와 집이 있다 하드라도 저소득자일 경우에는 정부에 지원 신청을 하면 수술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또 저의 무지로 그 때까지 Medicare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F)  나는 고집을 꺾고 수술을 받기로

정부의 보조를 받고 암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가 입수 되었음에 따라, 2000년 5월 7일자로 시무하던 목회 사역에서 사임한 후, 주정부에 의료 지원을 신청하였더니 승인을 받게 되었고, 또 UCI Medical Center에 있는 Ahelering 전문의에게 수술 받기로 신청했다. 처음 만난 전문의는 장장 2시간에 걸친 서류 검토와 촉진과 대화를 통하여 믿음과 마음의 안정을 주면서, 몇 가지 추가적인 검사를 실시한 후, 수술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할 환자가 너무 많이 밀려 있음으로, 수술 일자는 한 달도 훨씬 뒤가 되겠다고 한다. 10월 초순,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전문의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약된 환자 하나가 사정이 있어 에약을 취소하였으니, 10월 25일 수술 받을 수 있겠느냐”는 문의 전화가 왔다. 쾌히 승낙함으로써 2000년 10월 25일로 수술할 날이 확정되었다.

               (G) 아내가 흘린 눈물

2000년 10월 중순 어느 주일예배 헌금 시간에 저희 부부가 특송을 하게 되었다. 특송을 위해 앞으로 나간 저는 "오늘 저희들은 찬송가 359장(당시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이 찬송은 저희가 결혼한 다음 날인 1957년 3월 10일 오상교회에서 주일예배 때 신혼부부의 입장에서 불렀던 찬송입니다. 저는 오는 10월 25일 암수술을 받기로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 수술 후 제가 마취에서 깨어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저희 부부가 다시 공식 예배 석상에서 함께 이 찬송을 부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죽음이 오나 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찬송을 부르다가 아내를 보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것을 저는 보았다.

               (H) 수술대에 올라 주님께 드린 기도

2000년 10월 25일 수술 받는 날 새벽 4시 집에서 출발하여 병원으로 간 후, 조금 기다리다가 수술대에 올랐다. 잠시 후 마취 전문의가 오더니 마취약을 주입하려고 할 때, 저의 심정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심정이 솟구쳐 올랐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기도하신 것처럼 저는 기도하기를 "주여 이 암이 저에게서 피해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저의 의식은 마취약으로 인하여 꿈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로 놀라웠다. 오후 1시쯤 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저의 의식이 돌아왔다. 배꼽 아래 약 32cm 정도를 갈라, 전립선과 좌우 양쪽에 붙어 있는 임파선을 모두 떼어낸 다음, 봉합한 대수술이었다. “사랑의 하나님께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이미 죄 많은 저의 심령을 살려 주셨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암으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치닫고 있던 저의 육신의 생명까지 살려 주셨으니, 참으로 크고 놀라운 은혜의 보너스였던 것”이다.

          (2) 제 2차로 치르게 된 암과의 전쟁

               (A)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 증상

2019년 8월 1일이었다. 자동차의 고장 난 부분을 고치려고 Garden Grove 아리랑 마켙 건너편에 있는 자동차 수리 공장으로 갔다. 자동차를 맡긴 다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몸이 나른하고 힘이 하나도 없어서, 햇볕에 쪼이기 위해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큰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큰 건물(아리랑 마켙) 하나가 보이는데, 무슨 건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차량 수리업체 주인에게 “저게 무슨 건물이냐?”고 물었더니 “아리랑 마켙”이라고 한다. 또 자동차 수리 공장이 접해 있는 큰 길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으니, 저의 기억 속에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하여 짧은 시간 동안에 이처럼 많은 기억들이 사라졌을까?,

자동차 수리가 끝났기에 차를 인수하여 고속도로를 거쳐 집까지 무사히 돌아와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아내에게 말하고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병원에 가야 한다고만 밝힌 후, 또 다시 모든 것을 잊어버린 관계로 며칠을 그냥 보내고 말았다. 8월 6일 다른 건으로 인하여 주치의와 만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아내가 8월 1일, 저에게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말하자, 주치의는 뇌졸증의 가능성이 깊으니 오늘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서 검진해야 한다고 했다.

               (B) 육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임파선암

2019년 8월 6일 오후 Irvine Sand Canyon에 있는 Hoag Hospital 응급실로 가서 주치의가 작성하신 검사요청서를 제시한 후 검사가 시작되었다. 병원 측은 몇 가지 검사를 마친 다음 병원을 옮긴다면서 저를 앰뷸런스에 태우더니 Newport Beach에 있는 Hoag Hospital로 옮겨간 것이다. 3일 동안 그곳에 입원 시킨 가운데, 많은 검사를 시행하더니 머리에 크고 작은 8개의 암이 있고, 또 골반을 비롯한 복부에도 여러 개의 암 세포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검진 결과가 나왔다. 암의 종류는 임파선암으로 이 암은 전의도 빠르고, 치유도 빠르며, 또 치유 후의 재발도 빠른 특징이 있는 암으로 현재 4기 정도로 발전한 상태이니, 빨리 항암치료를 실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암전문의와 뇌 전문의 소견이었다.

               (C) 암이라는 소견을 들었을 때의 저의 심경

암은 사람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무서운 병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때는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그 때에도 하나님이 저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그리고 약 20년 전에도 전립선암과의 전쟁을 수행할 때 하나님을 믿고 매어 달렸더니,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생각나면서, 두려움이란 전혀 없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 뿐이었다. 만약 하나님이 저를 불러 가신다면 화려한 천국으로 가니 좋고, 이 세상에 더 살게 하신다면 가족들과 계속 더 살면서 작은 힘이지만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히브리 9장 27절 말씀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죽는다는 것은 인생이 꼭 가야할 공도이기에 두려울 것이 없고, 그 후에 있을 심판에 대비하는 것이 슬기로운 인생임으로, 남아 있는 인생의 삶을 주님의 뜻에 합하게 살아 심판에 대비하는 인생이 꼭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만이 생각났다.

               (D)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

항암치료란, 이상하게 변하면서 번져가는 세포를 죽이기 위해, 독한 약인 항암제를 몸속에 투입하여,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 방법이다. 그럼으로 이 항암치료를 주입하면 암세포만이 죽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세포까지 이로 인하여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항암치료는 한번 투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6회 정도 시행해야 된다는데, 저와 같은 경우에는 머리에 있는 암을 없애기 위한 항암치료 6회, 그리고 복부 등 몸에 있는 항암치료로 6회, 도합 12회의 항암치료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항암 치료를 하면 입맛이 떨어지고, 소화 불량 증상, 구토 설사, 백혈구가 줄어드는 현상, 탈모현상, 그리고 장기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 등을 유발하여 새로운 질병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뇌 가까이 있는 암을 치료하다가는 간혹 뇌 기능을 죽이는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입원 시킨 가운데서 시행 한다고 한다.

그리고 독한 항암제를 투입하는 도중 환자의 부주의로 주사 바늘이 빠지는 일로 일어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새로운 Power Port(또는 Port of Cath)를 어깨 가까운 곳 오른쪽 가슴에 새로 만들어, 그곳을 통하여 혈액의 채취도 하고, 또 여러 가지 주사제와 항암제를 안전하게 투입하는 길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고 한다.

                    (가) 혈관과 복부 등에 있는 암을 없애기 위한 항암치료

저에 대한 항암치료는 혈관에 대한 항앙치료와 두뇌에 대한 항암치료를 번갈아 가면서 시행하였다.

혈관과 복부에 있는 항암치료를 시행할 때는 항상 아침 8시경 병원에 들어가서, 항암제를 주입하기 전에 치료를 견딜 수 있는 체질이 조성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한 후, 항암제를 투입하곤 했다. 오후 4시경 그날의 모든 치료가 끝나게 됨으로써 병원에서 나오곤 했다.

그리고 치료 후 항암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Prednisone(20mg)이라는 약을 5일 동안, 2알씩 하루 2번 먹으라고 처방해 주는데, 이 약을 먹으면 거이 잠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 5일 동안이 큰 고통이었다. 또 항암치료 후 며칠 동안은 자주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사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지는를 검사한 후, 만약 부작용이 있을 경우에는 그것을 치료하곤 했다.

                    (나) 머리에 있는 암을 없애기 위한 항암치료

사람의 머리에는 중요한 부문이 많이 있다. 암을 죽이기 위한 독약을 주입 시키는 것임으로, 만약 두뇌 기능에 문제가 일어나면 중대한 사건이 되기 때문에, 두뇌에 대한 항암치료는 5일 동안 입원한 가운데서 치료했다. 그런 관계로 환자의 입장에선 치료하는 동안에는 밤낮 할 것 없이 많은 검사와 확인을 받아야 함으로 넉넉한 휴식을 이룰 수 없고, 또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서기만 하면 바로 알람이 울기 때문에, 감옥 생활과 다름없는 5일 동안을 보내야만 한다.

그리고 병원측에서는 그 때 그 때 발생하는 문제를 즉석에서 해결하기 위해 여러 주사제를 Power Port를 통하여 바로 주입하기 때문에, 치료는 거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병원에서 공급하는 식사는 80년 이상 먹던 음식과 전혀 다른 음식임으로 입에 맞지 않는데다가, 항암치료로 입맛이 떨어진 상태에서 먹으려고 하니, 그 고통이 너무나 심하여 하루가 천년 같은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고난의 5일을 여러 차례 보내곤 했다.

               (E) 항암치료 성과를 확인한 결과

12월 중순까지 혈관 등에 대한 항암치료 다섯 번, 그리고 머리에 대한 항암치료 네 번을 실시하였다. 암 전문의는 그 동안 시행한 항암치료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12월 24일 CT 검사(병원 용어: PED CT 검사)를 실시하라고 처방했다. CT 검사를 받은 다음 며칠이 지난 후, 그 검사 결과를 통보 받았는데, 머리에 있던 암 8개와 복부 등에 있던 암들이 모두 사라져 그 모습이 CT 화면상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임파선암은 치료도 빠르지만 재발도 빠르고, 또 그 암의 크기가 아주 작을 경우에는 CT 화면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음으로, 두뇌와 복부 등 각기 기본적인 항암치료 회수 여섯 번씩을 모두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문의의 소견에 따라, 앞으로 두뇌에 대한 항암치료 2회, 그리고 혈관에 대한 항암치료 1회를 더 시행하여 완벽한 항암치료를 기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암전문의의 뜻이었다.

               (F) CT 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의 심경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면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해 주셨고, 또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 잔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두 번째 암에 걸린 죄인인 저를 사랑으로 감싸시면서 깨끗하게 고쳐 주셨으니, 무엇으로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있을지,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2. 암과의 전쟁 중에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

사람이 사는데는 많은 사람들과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게 된다. 가깝게는 배우자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그리고 이웃 직장 교회 등 많은 유형의 관계 속에서 살게 된다. 특히 저는 이번 암과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다음에 기술코자 한다.

     가. 아내와 자녀 손들로부터 받은 사랑

아내는 심히 연약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기 어려운 가운데 있다. 그렇지만 제가 항암치료로 인하여 어려운 가운데 처해 있다는 것과, 또 입맛을 크게 잃은 자이기에 식성이 아주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와 같은 환자의 음식을 계속 만들어 주는 기간이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계속 성의를 다하여 불평 없이 만들어 줌에 대하여 한편 죄송하게 생각하고, 또 다른 한편에선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제가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설사를 한 다음, 항문이 심히 쓰리고 아파하는 것을 알게 된 한 자녀는,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면서, 엄마용까지 2대를 함께 설치하였고, 또 한 자녀는 아버지가 더럽혀 벗어 놓은 세탁물을 신속하고 깨끗하게 빨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능이 저하된 구형 세탁기를 버리고 신형 세탁기로 대체하였으며, 암 환자가 특별히 추위를 많이 탄다 하여, 저의 방과 엄마의 방을 훈훈하게 만드는 공기 순환식 난로(2대)를 설치한 자녀들도 있었다.

또 저의 암치료가 시작된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제가 병원에 간 것이 약 100회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많은 교통편의와 갈 때 마다 통역 업무 등을 자녀 손(孫)들 모두가 잘 처리해 주었다. 간혹 병원까지 저를 태우고 갈 사람이 없을 때는 어떤 자녀 손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자녀는 일하는 북가주에서 400여마일의 먼 길을 6시간 동안 운전하여 달려와서, 저를 병원에 입원 시킨 다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자녀도 있었다.

입맛이 떨어진 저를 위해 많은 음식물과 반찬거리를 구입해 집안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자녀 손도 있었고, 머리에 대한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동안에는, 제가 자는 옆에 간이 침대를 놓고 누워 허술한 잠을 자면서 저를 돌보는 등, 자녀 손들의 지극한 사랑들이 넘쳐 났음을 고맙게 생각하는 바이다.

     나. 혈육을 나눈 형제자매들과 그의 후손들로부터 받은 사랑

저는 8남매 중의 둘째이고, 아내는 6남매 중의 둘째이다. 우리 부부의 형제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에 살고 있는 남매들과 그의 후손들도 상당수 있다. 많은 형제들과 조카들이 저의 쾌차를 기도하면서 방문해 와서 위로 격려하면서 힘을 돋워 주곤 했다. 그중 한 형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큰 돈을 주면서 “형님 마음대로 좋은 것 많이 잡수시고 빨리 쾌차 하십시오”하는 것이었다. 저는 그것을 받으면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가운데서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다. 믿음의 형제자매들로부터 받은 사랑

이번 암과의 전쟁 중에는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많은 은혜의 사랑을 받았다. 교회에서의 공집회, 다락방 모입, 주일예배 후의 식사 모임 등, 모입이 있을 때마다 저를 위하여 특별 기도를 해 주셨고, 또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제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찾아오신 분과 또 누추한 저의 집으로 찾아 오셔서 기도해 주시면서 귀한 선물들을 주셨음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또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저와 만났을 때, 또는 전화를 통하여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으며, 또 음식이나 과일, 여러 종류의 물질이나 현금 등으로 저를 도와주시는 등, 많은 분이 크신 사랑으로 도와주셨음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① 특히 감동스럽기는 한국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따님 댁으로 잠시 방문오신 권사님은 음식을 손수 만들어 저의 집을 찾아 오셔서 기도해 주신 감격함도 있었고, ② 또 베델교회에 다니는 장00 집사님(미국병원 간호사)은 누추한 저의 집을 찾아 오셔서 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해 주시면서, ③ 손수 사 오신 고영양제를 보이면서 중환자들이 병을 극복하고 회생함에 절대 필요한 것임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또 ④ 또 Saddleback Church(미국교회)에 다니는 이웃에 사는 미국인이 제가 암과의 전쟁을 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암과 전쟁할 때는 잘 먹어야 한다"면서 음식을 가지고 찾아와, "당신을 위하여 기도 하겠다"고 말하면서 위로  격려하였다. ⑤ 그리고 베델교회 00셀 모임을 인도하시는 목사님은 저의 여식과 장00 집사님의 건의를 받아들여, 셀 모임 떼마다 저를 위하여 합심 기도를 해 주시는 등, 사랑이 넘치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처럼 많은 믿음의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기에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쁨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음을 저는 믿고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주 : 장00 집사님은 처음 미국 이민 왔을 때인 30 여 년 전 잠시 동안 같은 세탁소에서 일하시던 분이시다.

3. 하나님께 대한 감사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당부하는 글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남은 항암 치료까지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어 모든 것이 성공적인 치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는 절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매어달리면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심을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매어 달리면 당면 문제의 해결 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몰라서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도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공급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욱 열심을 다하여 주님께 충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    (2020년 2월 2일, 유한민 목사 쓴 글)
Total 0

Total 422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Notice
갤러리 및 게시판 사진 포스팅 방법
관리자 | 2019.03.04 | Votes 0 | Views 1757
관리자 2019.03.04 0 1757
421
코로나19,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김영란 | 2020.03.29 | Votes 1 | Views 35
김영란 2020.03.29 1 35
420
CHASE(체이스뱅크) Zelle 이체방법
김남걸 | 2020.03.28 | Votes 0 | Views 34
김남걸 2020.03.28 0 34
419
BOA(뱅크오브아메리카) Zelle 이체방법
김남걸 | 2020.03.28 | Votes 0 | Views 34
김남걸 2020.03.28 0 34
418
사실의 충실성과 인간의 마음
김영란 | 2020.03.15 | Votes 0 | Views 57
김영란 2020.03.15 0 57
417
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
김영란 | 2020.03.10 | Votes 0 | Views 57
김영란 2020.03.10 0 57
416
쉼표도 중요하다
김영란 | 2020.02.10 | Votes 1 | Views 107
김영란 2020.02.10 1 107
415
구하면 주시고, 부르짖으면 도와주시는 주님
Han You | 2020.02.02 | Votes 2 | Views 82
Han You 2020.02.02 2 82
414
여보 비가 와요 / 신달자
김영란 | 2020.01.30 | Votes 0 | Views 83
김영란 2020.01.30 0 83
413
마음을 찍는 사진기
김영란 | 2020.01.17 | Votes 1 | Views 103
김영란 2020.01.17 1 103
412
만나
김영란 | 2020.01.09 | Votes 0 | Views 155
김영란 2020.01.09 0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