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뿌리는 쇠뿔(牛角) 뽑듯이



    제 아내는 1973년부터 약 10년 동안  송파에서, 모자라는 가계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집안에서 젖소를 사육했다. 처음에는 젖소 한 마리에 송아지 몇 마리를 부쳐 소규모로 시작한 부업이, 하나님의 축복하심에 따라, 나중에는 성우만 치더라도 20두 가까운 목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목동을 두고, 매일 우유를 짜서 대일유업에 납품하였다. 그쯤 되었을 때는 매월 한 두 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났고, 우유 대금까지 합하면 짭짤한 고정 수입의 길이 열림으로 자녀들의 학비 조달에 어려움이 없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뿔이 없다. 송아지가 태어나 몇 달이 지나면 뿔이 돋아난다. 소가 뿔을 갖게 되면 사나워지기 때문에, 태어난지 1주일 내지 10일 정도가 되었을 때, 아예 뿔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제각(除角) 작업을 시행했다.


화독에 담은 연탄불을 우사로 가져온 후, 활활 타는 19공탄 연탄 구멍에 쇠 볼트를 꼽으면 순식간에 빨간 쇳덩어리로 변한다. 밧줄로 어린 송아지의 4지를 결박해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다음, 뿔이 올라올 자리 두 곳을 찾아, 뜨거운 볼트로 그곳을 지진다. 그런 다음 구리세린을 발라준 후 송아지를 풀어준다.


    뜨거운 쇳덩어리를 송아지 머리에 대면 처음에는 죽는다고 발버둥과 함께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털과 고기 타는 냄새는 우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후각에 심한 자극을 준다. 처음에는 송아지가 죽는다고 저항하지만 곧 잠잠해 지는 것이었다. 제각 작업을 당한 송아지는 2-3일 동안 우유도 먹지 못하면서 아파하는 것을 저는 자주 보았었다. 약 10일 정도가 지나면 불로 태운 그 자리는 완전히 아물고, 그 송아지는 영원히 뿔이 없는 온순한 소가 되어, 사람을 잘 따르게 된다. 그런 작업이 시행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 젓소는 뿔이 없는 소"라고 말하는 것을 저는 종종 보았었다.



    저는 그와 같은 과정이 시행되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점을 깨달은 바 있었다.


    1. 죄는 처음부터 발 부치지 못하도록 그 뿌리를 제거해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젓소로 태어난 송아지는 어릴 때 제각 작업을 시행했기 때문에, 온순한 소가 된 것 처럼, 사람도 어릴 때에, 죄의 침범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인격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2절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원천적인 봉쇄로 죄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고,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으니, 작은 죄가 자라나면 큰 죄가 되어 죽음에 이른다고 했다. 그리고 시편 1편 1절에서는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아주 사소한 죄라 하드라도 절대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죄는 절대 묵인해서도 아니 되고, 간과하지도 말 것이고, 또 동조하거나 협조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쇠뿔을 빼듯이 아예 원천적으로 뽑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저는 깨닫게 되었다.



    2. 사람이 죄 짓는 것을 거듭하면 양심이 무디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송아지가 뜨겁고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발버둥치다가도 나중에는 가만히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신경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4장 2절에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으니, 양심이 화인 맞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되어, 점점 죄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드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럼으로 "이번 한 번만 하고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무서운 재앙을 초래하는 시발이 되는 것임으로, 원천적인 봉쇄를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3. 우리들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로 양육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고" 또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라는 속담이 있지요. 성경 말씀을 통해 볼 때 사무엘은 어릴 때 제사장 밑에서 바르게 자라났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고, 모세는 어릴 때 유모로 가장한 친어머니에게 바로 양육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거짓이 없는 믿음을 받아드림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사랑 받는 목사로 세움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명기 6장 4절-9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자녀 교육에 관한 헌장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 죄의 근원을 돌여낼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 점이다. 


    "제각 과정에서 송아지가 당하는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송아지의 제각 작업을 시행할 때의 잔인성에 대하여는 인정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친 소는 사람의 손을 통하여 항상 좋은 꼴을 공급 받고, 영양가 있는 사료를 먹고 자라날 수 있으며, 또 온순해 짐으로 사람에게 매도 맞지 않고, 코가 뚜러지지 않고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적기에 새끼도 생산하면서 사랑 받으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제거할 때는 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죄가 성행하는 배후에는 육신이 즐기는 향락이 있고, 물질적인 부가 있으며,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느끼는 세상적인 향락들이 숨어 있기 때문에 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송아지가 잠시 동안의 아픔을 견디어 냈기 때문에 10 여일이 지난 다음부터는 고통 없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잠시의 고통을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으면서, 브리서 11장 25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인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고 모세가 고백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왜 제가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되었는가? 제가 살던 청장년 시절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는 말이 진리인 것 처럼 유행하던 세상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고, 또 생활하였기 때문에, 영적 감각이 무디어진 가운데서 죄를 바로 보지 못한 가운데서 살았던 것이다. 황혼기에 들어선 지금 돌이켜 보니, 위에 기록한 깨달은 바를 실행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고, 또 간과하거나 부지 중에 실행하지 못한 점도 많이 있었던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지나간 후에 "껄 껄" 해봤자, 뒤 늦은 후회로 만시지탄에 불과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와 같은 만시지탄이 없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 쓰게 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