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보낸 영월의 추억



필자 주 : 이 시는 어린 시절 영월에 살 때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나서  그때 다니던 영월교회 홈피에 올린 시입니다.


  


영월의 입지적 환경


봉래산의 둥근봉과 삼각산은 세모진봉


계족산은 닭발같아 서로조화 이뤘도다


동강물의 맑은물은 쉬지않고 흘러가니


아름다운 산천속에 자리잡은 영월이라


      


영월의 자연적 환경


봄철에는 진달래꽃 여름에는 개똥벌래


가을철엔 고운단풍 겨울이면 백설천지


계절마다 다른경치 삼한사온 뚜렸한곳


자연환경 아름답고 살기좋은 영월이라


강물퍼서 지고가면 먹는물로 사용하고


논두렁과 풀숲에는 메뚜기와 개구리뱀


공중에는 박쥐날고 개똥벌래 빛나는불


장마철에 맹꽁소리 자연환경 좋았었네


동테굴러 골목길을 달려가며 놀았었고


정초에는 동리어른 찾아가서 세배했네


명절되면 수수떡을 집집마다 나눠먹고


보리털어 방아밟아 꼽찌어서 밥해먹다


거둔모밀 멧돌돌려 가루내어 묵써먹고


방아디뎌 아픈다리 떡먹으며 모두잊네


멍석깔고 마당에서 모기에게 물리면서


어둠속에 먹던콩죽 그렇게도 맛있었네


   


공식적 지역 명칭


영흥리는 영월거리 중심지를 자리잡고


하송리와 덕포리는 중심근처 있는동리


삼옥리와 거운문산 멀지마는 아름답고


방절리를 거쳐야만 청령포로 갈수있네


   


비공식적 지역 명칭


능말에는 장릉있고 속골갈땐 오무개를


방절리엔 학당골이 덕포넘어 대내골짝


정양길가 옹기점말 옛날이름 많았는데


생각하고 생각해도 기억없어 쓰지못해


   


어릴 때 다닌 학교


니시끼는 우리학교 아사히는 일인학교


아이들도 차별하니 일본학정 알겠도다


광복되자 영월錦은 錦자떼고 영월국교


일인학교 영월旭은 봉래국교 되었도다



주 : "영월초등학교"가 일제시대에는 "영월금국민학교"라고 했는데, 광복 후 "금"자를 떼었다. 이 "금"자는 일본 발음으로 "니시끼"라고 한다. 그리고 일본 사람 전용국민학교는 "욱"자를 부쳤는데, 일본 발음으로 "아사히"이다. 일본이 패망한 후 잠시 비어 있다가 덕포로 이전하면서 "봉래국민학교"로 바뀌졌다.


국민학교 육년동안 우여곡절 많았도다


유도하던 일본선생 학우에게 골정상을


나이어린 어떤친구 병이들어 먼저갔고


지린내가 코를찌른 오줌싸개 친구생각


천여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서 함께놀때


한국피를 나눠받은 천진난만 학생였지


그렇지만 모든학생 일본말로 대화한건


그들에게 쇠뇌되어 아무것도 몰랐다네


나라잃고 살면서도 도우면서 공부했죠


돌아보며 생각하니 칠십년이 흘렀도다


우정어린 학창시절 위로하며 도왔다네


영원영원 지나도록 길이길이 간직하리


   


고적지 영월


노산군이 청령포서 눈물속에 승하하니


엄흥도가 메고가서 장릉에다 모셨다네


관풍헌엔 자규루가 금강정엔 낙화암이


영월향교 보덕금몽 고적지로 이름났네


   


어린시절(일제) 생활


옥수수와 감자쩌서 그것으로 끼니떼고


밀기울과 양대섞어 떡만들어 배채웠네


콩깨묵밥 먹고난후 설사한건 변질된탓


썩은감자 울궈내어 떡만든건 고급음식


목화길러 실만들어 베틀거쳐 옷이되고


미루나무 토막내어 다듬으면 신발됐네


화로가서 옷을벗어 이를잡아 불에넣고


머리속에 생긴이는 참빗으로 소탕했네



주 :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신발이 거이 없었다. 집신 아니면 나무로 만든 일본말로 "게다'라는 신발을 많이 신었다.


보리농사 지었지만 일본지주 뺏어가니


허기에찬 배채우려 칡뿌리를 캐어왔네


일제강요 굴복당해 양귀비를 재배하니


아편모두 거둬가서 마약전쟁 무기됐네


신작로의 보수유지 주민들의 부역으로


집집마다 밤시간에 방공호를 만들었네


풀을지고 학교가서 학교거름 만들었고


솔뿌리와 광솔캐기 이런것도 학교수업


청년들은 징병으로 장년들은 징용으로


처녀들은 정신대로 불쌍하다 식민백성


어린학생 기만하여 항공병을 만든후에


가미가제 특공대로 자폭하게 만들었네



주 :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은 징병, 징용, 정신대, 소년항공대라는 명목으로 우리 민족을 끌고 갔다. 여기에서 "가미가제"라는 용어는 일본 발음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일본이 섬기는 "천조대신"이라는 신의 명령에 따라 일본 항공대원들이 비행기를 몰고 미국과 영국 군함의 굴둑으로 자폭해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주로 식민지 출신 항공대원들이 이와 같은 죽음을 강요 당한 사건이다.


광복을 맞이한 후


일구사오 팔월십오 쇠사슬이 풀렸도다


전국으로 울려퍼진 대한독립 만세소리


태극기의 물결속에 환희기쁨 넘쳐나고


할렐루야 왜치면서 자유롭게 예배드려


파란눈의 노랑머리 미국군인 들어왔네


그의입서 나오는말 할로오케 알수없자


삼삼오오 모여앉아 영어공부 시작하니


일본말은 간곳없고 영어세상 되었도다


예배당의 종소리는 천당천당 울려퍼져


누더기인 찬송가는 새것으로 바뀌었네


금지곡인 금주가도 마음놓고 불러보니


모든것이 주님주신 은혜인줄 알았도다



주 : 1. 일본 식민치하에 있던 우리나라 교회는 많은 찬송가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어떤 찬송가는 아예 찢어 없이하였고, 어떤 찬송가는 가사에 먹칠하여 보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2. 금주가에 대한 가사를 참고로 여기에 적고자 한다.


                           금    주   가


                                                                   임배세 작사 작곡


1. 금수강산 내동포여 술을입에 대지말라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될까 늘두렵다


 후렴 아마시지 마라그술 아보지도 마라그술


        우리나라 복받기는 금주함에 있나니라
2. 패가망신 될독주는 빗도내서 마시면서


    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한푼 안쓰려네


3. 전국술값 다합하여 곳곳마다 학교세워


    자녀수양 늘시키면 동서문명 잘빛내리


4. 천부주신 네재능과 부모님께 받은귀체


    술의독기 받지말고 국가위해 일할지라


   


중등학교 시절


관풍헌와 자규루가 우리학교 교실이고


남녀학생 칠십여명 우리들은 동창이라


일주일에 몇시간씩 학교부지 정지작업


고달펐던 학창시절 그렇지만 행복했네


자습하는 시간되면 장기발표 하였는데


유행가를 모르던나 금주가를 불렀다네


동창들이 나의별명 유목사라 지었던게


별병대로 목사되어 주의복음 전하였네


   


한국전쟁 일어날 때


중학과정 오년일때 한국전쟁 일어났네


밤세우며 공부하다 팔괴땅에 피난갔네


칠월사일 교회들려 기도하고 돌아갈때


원수군인 말을타고 영월땅에 들어왔네


허둥지둥 피난지로 달려간지 몇분후에


많은원수 영월입성 청년학도 잡는다며


피난처를 수색하니 부모두고 떠난것이


칠년간의 해군생활 마친후에 돌아왔네


영월을 떠난 후


결혼하고 직장생활 만학의길 걷다보니


영월생각 잊고살기 육심년이 지났다네


늦었지만 그리워서 영월홈피 들렸더니


낯모르는 형제들이 나를찾아 반겨주네


믿음으로 한몸이룬 부모형제 자매들이


오늘날도 주를위해 수고하고 애를쓰네


살기좋은 미국땅에 비록내가 살지만은


영월교회 잊지못해 이글써서 올립니다   끝